알버트 넘버 6 모텔의 시간

모텔리어는 손님을 엿본다

by 리엘리

알버트 넘버 6 모텔 2층의 우리 집에서 메인 도로 쪽으로 나 있는 창문 밖을 본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우리 모텔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이쪽저쪽 들여다보고 있다. 이내 빛을 머금은 바다색을 닮은, 밝은 파란색의 페인트가 칠해진 우리 모텔 앞에 선다. 건물 옆의 키 큰 야자나무 또는 탐스러운 빨간 히비스커스 꽃이 잘 나오게 포즈를 잡더니 파란 벽을 배경으로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다. 흔한 일이지만 볼 때마다 흐뭇해,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흘끗흘끗 훔쳐본다.


우리 모텔 직원 켈리의 말에 따르면, 알버트 넘버 6 모텔이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빛나는 파란색 옷을 입은 것은 10년이 넘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멋진 파란색 건물이지만, 처음에 파란색 페인트를 모텔에 칠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고 한다. 주변 경관과 비교하면 너무 튀어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지역 카운실에서 허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의 모텔 오너가 주변 이웃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파란색을 칠해도 된다는 동의 서명을 받아 제출하고 나서야 겨우 지역 카운실의 허가를 얻었다고 한다. 당시의 모텔 오너가 상당히 용감했거나 파란색에 확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파란색의 외관 이외에, 알버트 넘버 6 모텔의 큰 변화는 우리가 오기 바로 전에 오너로 일했던 샘과 제시카 커플이 일할 때이다. 그들은 젊은 키위* 커플로, 호주 멜버른에 살다가 고향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뉴질랜드보다는 모던하고 세련된 호주의 도시 감각을 넣었을까? 저렴이 백패커스 분위기의 우리 모텔 실내를 정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한다. 객실을 2인용, 3인용, 4인용 방으로 각각 구분 짓고 그에 맞춰 침구와 리넨을 전부 하얀색으로 교체했다. 침대 위에 올려두는 쿠션을 블랙 앤 화이트로 맞춘 뒤, 파스텔톤 장식용 담요 색상에 맞춰 사이드 테이블 램프 색깔도 파스텔 톤으로 맞췄다. 객실의 컵과 그릇도 하얀색으로 맞춰 비치했다. 객실이 밝고 화사해진 것은 물론이고, 손님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모텔을 운영해보니, 기존에 있던 것에 변화를 주어 좋은 평을 얻어내고, 새로운 느낌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끊임없는 애정과 집요한 관심, 그리고 창의성이 요구되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모텔에 머무는 사람들은 모텔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무엇을 원할까? 답을 얻기 위해 모텔에 온 손님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가만히 들여다본다.


키위들은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편이다. 여름에 날씨가 좋은 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바닷가에 가서 수영을 하고 온다. 바닷물이 찰 법도 한데,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수영복에 비치타월 한 장 챙겨 들고 바닷가에 다녀오는 모습을 흔히 본다. 바닷가가 모텔에서 지척이긴 하지만, 바닷가에 도착하기까지 맨발에 수영복만 입고 걸어도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나만, 속으로 ‘발바닥 아플 텐데 슬리퍼라도 신지.’ 하는 마음이다. 아침 수영을 하고 나서는 방에서 토스터에 식빵을 구워 우유를 넣은 홍차 한 잔으로 아침을 먹거나 동네 카페로 나간다. 많은 경우, 모텔에서 나가 있는 시간에는 산책이나 하이킹을 다녀오는 것으로 보인다. 낚시나 골프를 나가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도 흔한 활동이다.


오후가 되면 돌아와 모텔 마당 한 편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손에 든 것은, 한 권의 책과 한 잔의 와인 정도이다. 젊은이들은 시원한 맥주와 보드게임, 카드 게임을 가지고 나온다. 그늘 아래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면 몇 시간이고 책을 보고 게임을 한다. 오후의 해가 기울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바쁜 일은 하나도 없다. 느긋하게 설렁설렁 하루를 보낸다. 커피 한잔 올려 두고 구름 흘러가는 모습만 바라보며 무념무상 멍 때리는 모습도 많다.


저녁이 되면, 모텔 건너편 피시 앤 칩스 가게에 사람들이 줄을 선다. 여러 겹의 갱지에 둘둘 만 갓 튀긴 뜨거운 생선과 감자를 사서 돌아온다. 테이블에 펼쳐놓고 산처럼 쌓인 감자튀김을 먹는다. 키위들의 평범한 저녁 식탁이다. 그리고는 늦은 시간까지 놀기보다는, 일찍 잠을 청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집과는 다른 공간에서 매일 하던 업무와 루틴에서 벗어나 시계는 보지 않아도 되는 하루만으로 충분해 보인다. 패들보드 위에 올라타고 바다에 동동 떠 부유하며, 초록 들판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만으로도 행복해 보인다. 시간을 쫓아 아등바등 바쁘게 움직이지 않고, 해와 구름이 자신의 일과를 따라오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그런 손님들을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할 일을 미루는 법이 없는 사리씨는 예약과 질문, 손님의 요청에 빠르고 친절하게 응한다. 우리 직원 켈리가 행동이 재고 빠릿빠릿한 사리씨를 보고 다른 사장님들이 3년 걸려 할 일을 한 해 만에 다 해버린 것 같다고 평할 정도이다. 다정하고 따뜻한 사리씨는 도움이 필요한 손님을 지나치지 못한다. 특히, 연세 드신 분들이 오면 어디 하나라도 불편할까 살펴주느라 더 바쁘다. 적극적이고 용감한 사리씨는 동네 카페와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며, 우리 모텔 손님들에게 할인 쿠폰을 제공해도 되는지 협조를 요청해서 총 여섯 군데의 업소에서 협력을 받았다. 코로만델 해안 보트 투어 업체 두 군데 역시 할인 코드를 제공받는 제휴 업체가 되었다. 객실이 편안하고 쉬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만날 요리조리 궁리하고 바꾸느라 쉴 틈이 없다. 천생 모텔리어인가 보다.


* 뉴질랜드에는 3가지 키위가 존재한다.

1. 뉴질랜드에서만 사는 날지 못하는 새, 키위 새

2. 키위 새와 꼭 닮은 색에 털이 보송보송한 껍질의 새콤달콤 맛있는 과일 키위

3. 스스로를 키위라고 칭하는 뉴질랜드 사람들 키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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