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와 수양은 한 통속
누군가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몇 가지 고만고만한 음식, 이를테면 갈치구이, 깻잎지, 김치 삼겹살 같은 음식을 떠올리고 고민하다가 끝내 한 가지만 고를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내추럴 본, 입 짧은 이라, 음식에 큰 의의를 두고 살지 않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에게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즉각적으로 답할 수 있다.
“카레입니다. 저는 카레를 싫어합니다.”
카레의 맛이 싫어서가 아니다. 카레의 성분인 강황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도 들어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는 카레를 종종 해 먹기도, 사 먹기도 했다. 카레가 싫어진 것은 모텔을 운영하고 나서부터이다.
금요일 다소 늦은 밤에, 마지막 예약 손님이 도착했다. 금요일 오후 퇴근을 하고, 오클랜드나 다른 도시에서 출발하면 늦게 체크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금요일 손님들의 특징이다. 예약 인원은 성인 두 명에 아이 하나였다. 그러나 리셉션 출입문 너머로 보이는, 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호기심과 장난기 가득한 눈망울들만 봐도 아이가 한 명은 아니다. 이내 아버지로 보이는 성인 남자가 리셉션으로 들어와 체크인 문의를 한다.
“예약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프라납(가명)입니다.”
“네, 성인 둘에 아이 한 명 예약하신 것 맞으시지요?”
“성인 셋에 아이 하나예요.”
“예약하실 때는 성인 둘에 아이 하나로 하셨네요.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만 엑스트라 침대를 넣어드릴까요?
“저는 처음부터 맞게 예약했어요. 당신들 예약 시스템 문제입니다. 추가 비용은 지불할 수 없습니다.”
손님은 도착부터, 연신 눈을 굴리며 우리 눈치를 살피는 듯했지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는 않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손님은, 계속 대화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프라납 씨가 예약한 객실은 성인 셋에 아이 하나를 예약할 수 없도록 시스템에서 설정해 놓은 방이다. 그러니 그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간도 늦었던 터라, 사리씨는 엑스트라 침대를 넣어 주지 않고, 인원에 따른 추가 비용 역시 부가하지 않기로 타협했다. 처음부터 솔직히 말했더라면, 객실을 옮겨주거나 추가 비용 없이 엑스트라 베드쯤은 넣어주는 것이 내가 아는 사리씨의 성품이다. 손님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이 너그러운 주인장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방 안내를 했다. 차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보니, 프라납 씨의 어머니로 보이는 노년의 부인과 열 살이 채 안 된 것으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둘에, 프라납 씨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이 두 살 정도 되는 아이를 안고 나온다.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아이가 둘 더 있었던 것이다. 안고 있는 아이까지야 눈감아준다고 해도, 꼬마 아이 하나를 체크인할 때 말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추가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뻔뻔한 거짓말과 태도에 더 화가 난다. 사리씨는 성인군자의 마음으로 화를 눌러 담고 집으로 왔다.
잠시 후,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간이다. 콩콩콩콩콩, 쾅쾅쾅쾅쾅, 후다다다닥, 하하하, 히히히. 아이들이 모텔 1층에서 2층 사이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2층의 복도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신나게 질주하는 소리가 들린다. 몇 번 반복되자, 사리씨가 나가 볼 수밖에 없다. 조금 전에 도착한 프라납 씨의 아이들이었다. 객실로 가서 시간이 늦었으니 아이들을 조용히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은 원래 가만히 있지 않아요. 내가 말해봤자 소용없어요,”라고 답한다.
결국, 사리씨가 아이들을 불러 방으로 들여보냈지만, 그로부터 아이들은 30분은 더 떠들며 모텔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프라납 씨 부부는 아이들은 원래 그렇지 않느냐며, 오히려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붙인다.
첫날밤에는 그렇게 아이들이 모텔을 뛰어다니더니 남은 이틀 동안에는 별로 움직임이 없다. 아이들은 모텔 마당에 나와 여전히 뛰어다녔지만, 다른 가족들은 오후에 잠깐씩 나갔다 온 것이 전부이다. 도대체 객실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드디어 일요일, 체크아웃 시간이다. 체크아웃 시간은 오전 10시까지인데, 10시 반이 될 때까지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다. 가족에게 다가가 10시가 체크아웃 시간이라고 말을 하니, 그제야 천천히 짐을 정리한다. 가족이 떠난 것은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프라납 씨 가족이 떠난 뒤, 청소를 하러 객실에 들어갔다. 대충 눈으로 훑어봐도 청소가 쉽지 않겠다. 폭탄이라도 맞은 듯이 물건들이 사방 흩어져 있고, 객실 내 쓰레기통이 넘쳐 주변까지 쓰레기가 천지다. 이쯤 되면, 집에서 쓰레기도 가지고 와서 버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화장실에는 뜯긴 휴지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다. 대충 버린 아기 기저귀의 변이 이쪽저쪽 묻어있다. 지린내도 올라온다. 테이블과 그 주변에는 음식물의 흔적이 적나라하다. 음식물의 흔적은 이불과 침대 시트, 담요도 예외가 아니다. 벽에도 묻어 있다. 아무리 봐도 이불 위에서 먹다 흘리거나 손에 묻은 음식을 이불과 벽에 그대로 닦은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그릇과 커틀러리에 그대로 흔적이 남아 있는 음식물의 정체는 아기 변색과 다름없는 누런색이다. 카레다. 이불과 베갯잇에 남은 누런 자국이 지워질까 모르겠다. 어지간해서는 하얀 리넨에 묻은 카레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으면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쓰레기를 비우는 것부터 청소를 시작한다. 수행하는 마음이다. 바삭하게 다림질된 새하얀 침대 시트로 갈며 바란다. 저들의 카레 흔적이 누렇게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해도, 저들의 양심이 더 이상 누렇지 않기를. 화장실의 변과 테이블의 카레를 닦으며 바란다. 저들의 집은 이보다 쾌적하고 깨끗하기를. 바닥에 어질러진 물건들을 정리하며 바란다. 저들의 삶에 임기응변식 거짓보다는, 정직이 더 나은 방편임을 깨닫게 되기를. 그러나 여전히 나의 수양도 부족한가 보다. 리넨에 묻은 카레를 세탁하며, 속으로 말한다.
“에잇, 카레.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