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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엘리 Feb 03. 2023

버럭 골프 입문기

못하는 것이 기본값이야. 화는 넣어둬! 넣어둬!

상상 속에서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선수들이 친 것처럼 내가 친 공도 초록의 잔디가 넓게 펼쳐진 페어웨이를 향해 핑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날아간다. 그러나 현실은 공이 제대로 맞기는커녕 공 뒤의 땅을 둔탁하게 때리며 애먼 잔디만 훅 퍼낸 뒤 골프 클럽 끝에 겨우 스치기만 한 공은 불과 몇 미터를 구르다 멈추었다. 소위 말하는 ‘뒤땅’이다. ‘나이스 샷’을 듣고 싶었는데 ‘뒤땅’이라는 짝꿍의 말이 들린다. 얄밉다. (굳이 말 안해도 나도 안다구!!! 뒤!!땅!!)


“아! 뭐지? 난 분명히 하라는 대로 했는데. 스윙은 왜 이 모냥이고 공은 또 왜 저기 있어?”

“이번에는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클럽을 급하게 막 내려치고, 상체는 들리면서 공은 끝까지 보지도 않았어.”


벌써 고만고만 비슷한 상황과 말이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공을 치지 못한 것은 나고, 제대로 치지 못한 원인을 알려주는 짝꿍의 말은 조언이고 가르침이다.


‘그립은 이렇게, 팔은 요만큼, 손목을 이렇게, 시선은 여기에, 무릎은 조금만, 힘을 오른발에서 왼발로, 허리를 돌리면서. 어쩌고 저쩌고.’  


문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반복적인 조언은 가르침이 아니라 듣기 싫은 잔소리와 꾸지람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는 데서 오는 속상한 마음을 더욱 후벼 팔 뿐이라는 뜻이다. 운전이랑 운동은 배우자에게 배우다 싸움만 난다더니 그 말이 괜히 있는 말은 아닌 듯하다. 한번 더 같은 일이 반복되면 ‘나 안 해!’를 외치고 골프채를 던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불과 첫 홀을 시작했을 뿐인데, 이미 신나는 기분은 사라지고 화가 난다. 짝꿍이 저만치 앞서 걸을 때, 뒤돌아서서 찔끔 나온 눈물을 닦는다. 따지고 보면, 눈물과 화는 짝꿍을 향해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해야 하는 대로 잘하지 못하는 나 때문에 화가 나고 눈물이 난 것이다. 연습을 하지도 않고 잘하기를 바라는 나에게 화가 난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 안 해!’를 외치고 싶었던 순간은 많다. 두 발 자전거를 배울 때, 넘어져서 무릎이 다 까진 날, 수영 배울 때, 물에 빠져 수영장물 한 사발 들이마시고 켁켁거리며 눈물 콧물 쏙 빼던 날, 운전 배울 때 기둥에 차 긁고 쓰린 마음 달래던 날. 그렇지만 결국 다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자전거도 타고 수영도 하고 운전도 한다. 잘하지 않고 그냥 하면 결국 된다. 잘 하지 못하는 나에게 화내지 않고 또 하게끔 나를 살살 달래는 것이 더 낫다.




골프를 시작한 것은 골프가 좋아서 또는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뉴질랜드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아름다운 곳에 골프장이 엄청 많은데, 나이 들어 함께 골프 여행이라는 핑계로 이쪽저쪽 다니면 좋지 않겠느냐는 설득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간 것이다. 몇 년 전, 하와이 여행 중에 만났던 절경의 카우아이 골프 코스도 좋은 근거가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를 꾀어내기에 ‘골프 여행’이라는 말보다 더 좋은 유혹이 있을까? 덧붙여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운동을 했던 짝꿍에게 모텔을 벗어나 운동할 시간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골프를 배우기로 한 이유이다. 심지어 시험 삼아 방문해 본 골프장에서 잔디밭을 걸어보니 발길에 닿는 폭신폭신한 감촉과 잘 가꾸어진 정원 같은 골프 코스를 구경하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골프를 제대로 못 쳐도 골프장을 걷는 것만으로 운동이 되고 기분 전환과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느꼈다. 뉴질랜드에서는 접근성이 좋은 저렴한 운동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막상 골프를 시작하고 보니 귀찮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해야 한다. 얼굴이 시커멓게 타는 것도 싫고 주근깨가 신경 쓰이는 나는 선크림도 이쪽저쪽 더 챙겨 발라야 하고, 평소에는 불편해 잘 쓰지 않는 모자도 쓴다. 지금까지 잘 짜여 돌아가고 있는 나의 루틴도 조정해야 한다. 부지런한 짝꿍은 내가 재능만 있다면 LPGA이라고 보내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모닝커피를 마시다가도 골프채를 들고 요령을 일러주고, 수시로 이메일로 포인트 골프 레슨 링크도 보내준다. 조용히 아침의 커피를 즐기고 싶은 나는 커피를 마시며 듣는 골프 레슨은 듣는 척만 한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 더 많다. 골프 말고도 인터넷으로 보고 싶은 것이 많은 나는 이메일로 보내주는 골프 레슨 동영상 링크는 정말 볼 게 없을 때 뒤늦게 열어본다. 골프장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골프가 항상 제일 뒷전이라 집에서는 어지간하면 골프채를 들지 않는다. 나의 골프는 골프장에만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골프를 잘 치기를 바라며, 제대로 못 치는 나에게 화가 나다니 나도 참 너무하다. 이미 많은 방법과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준 짝꿍의 말이 듣기 싫어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니 참 못났다.


부디 못한다고 내게 화내지 말자.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짝꿍의 말은 조언이라 느끼고 기분 좋게 받아들이자. 이러다가 하루에 한 번이라도 잘 맞아 멀리 날아가면 모든 화도 다 같이 날려 버리자. 중간에 특별한 사건이 없다면 앞으로 골프는 30년 계획이다. 오늘 안 되면 내일, 올해 안 되면 내년도 있다. 이번 생은 당연히 안 되고 다음 생에도 박세리되기는 어렵다. 못하는 나에게 너그러워지자. 그리고 매일 오분 만이라도 연습을 하자. 화는 넣어두고 어이없는 스윙에는 웃자. 내 봤자 그 무엇에도 도움이 안 되는 화는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또 하자. 하다 하다 안 되면 골프채 한 번 던지면 되는 거지!!!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섯 마음’은 초고 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동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애락애오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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