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용한 마케팅의 문제점
평소 먹는 것을 좋아하고 음식과 식재료에 관심이 많아서일까.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저속노화' 열풍을 보고 있자면 이 풍경이 낯설고 우려스럽기도 하다. '저속노화'는 건강에 이로운 것인데 우려될 것이 무엇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저속노화 전문가의 말만을 신뢰하며 극단적으로 식습관을 바꾸는 사람들을 보자면 저토록 강박적으로 식습관을 바꾸는 게 정말 인간의 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이론에 빠져드는 게 본인의 취향과 선택이니 개입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음을 피력해 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은 편의점에 가도 '저속노화 도시락' 대기업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해도 '저속노화 식품'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모든 대기업들이 너도 나도 저속노화 교수의 얼굴을 내걸고 콜라보 식품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동네의 모든 도서관과 기관들에서는 저속노화 초청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자면 이미 '저속노화'는 하나의 상품으로 변질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왜 갑자기 이토록 '저속노화'에 관심을 보일까?
첫째, 건강, 노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 두려움의 정도가 적냐 많냐의 차이 정도이지 건강과 노화에 완전히 해탈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모든 웰빙 열풍이 그렇지만, 마치 이 식품을 먹으면 이 방식대로만 따르면 몸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며 이 식품을 먹지 않을 시 '가속노화'가 진행되어 우리의 외모와 건강은 최악의 상태로 치달을 것이라는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준다. 물론 좋은 식단을 즐겁게 즐겨 먹는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과연 그렇게 즐겁고 자연스럽게 저속노화 식단을 즐길 수 있는가이다.
둘째, 권위자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인간의 특성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평소 유튜브를 잘 보지 않는데 유일하게 한 달에 1~2번 정도 보는 영상이 있다. 그건 뇌과학자 장동선 교수님의 동영상과 건축학자인 유현준 교수님, 그리고 이동진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인데. 그 마저도 규칙적으로 보는 건 아니고 아주 가끔 생각날 때 끌리는 제목의 영상을 플레이할 뿐이다. 그러다 최근 장동선 교수님의 흥미로운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인즉
1) 우리의 뇌는 많이 노출되는 정보를 진짜라고 받아들인다.
2) 우리의 뇌는 권위자의 말을 진짜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3) 우리의 뇌는 에너지를 최대한 소비하지 않고 편안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어서 한 가지 루트에 기대려고 한다.
그러면서 장동선 교수님이 이런 말을 했는데 정말 멋졌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제 영상만 보지 말고 다양한 분(전문가)들의 영상을 함께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렇다고 저속노화 식단이 효과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뇌가 얼마나 단순화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이런 뇌의 특성 때문인지 사람들의 뇌는 지금 "건강한 삶 = 저속노화"로 세팅이 되어버린 듯하다. '저속노화 식단'만이 노화를 늦추고 건강을 지키는 진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러운 추측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다양한 매체의 다양한 전문가 의견을 수용한 후 데이터를 조합해서 결과를 추출하기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편안한 권위자를 한 명 정해서 (지금 우리 사회의 초점은 저속노화 교수) 그의 의견을 거의 신처럼 따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건 인간의 뇌가 지닌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는 '저속노화'에 대해 정희원 교수님만큼은 알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저속노화' 식단 이 또 다른 '강박'을 심어주고 있다고 느껴진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자면 '절제'와 '강박'의 차이점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게 된다. '저속노화' 식단을 따르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과연 내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절제'를 넘어서 '건강' '다이어트' '노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강박에 의하여. 왜곡된 내면의 심리때문에. 식단을 지키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 '두려움'과 '강박'을 이용한 기업들의 브랜드 마케팅에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기업들은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속노화 도시락을 만들 때 정체불명의 외국산 식재료를 사용하며 다른 편에서는 몸에 좋지 않은 식품첨가물이 범벅된 가공식품을 판매할 테니까. 그들이 과연, 이윤 없는 선행을 베풀 이유가 있을까. 음식을 공식처럼 만들고 그 음식만을 정량 섭취하는 인간의 삶은 진정 '건강'과 '노화'를 모두 잡은 삶일까. 그런 강박이 몸을 더 해롭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주변에 점점 더 '저속노화' 식품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 이미 '저속노화'는 '건강과 노화, 비만'이란 두려움을 먹고 자라는 거대한 상품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또한, 인간의 어리석음에 한탄하게 된다. 유행처럼 반짝 식단을 만들고 그 식품을 섭취하다가 금방 잊어버리고 또 다른 웰빙 트렌드가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급류를 타고 흘러가 버릴 것이기에. 인간은 지속적으로 '저속노화' 식단을 지키고 이 강박으로부터 벗어나 모두 성인병에서 해방되고 본인이 원하는 노화의 속도로 늙어갈 수 있을까. 계속해서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