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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 살로메 Nov 11. 2021

일의 기쁨과 슬픔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Gerhard Richter - Reader


몇 주전 공모전 '우수상'에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공모전 같은 것에 글을 잘 응모하지 않는 나이지만 그날은 어쩐지 꼭 쓰고 싶었다. 그것도 마감 당일 2-3시간 전에.


소식을 전해 듣고 기뻤던 이유는 어떤 결과물에 대한 보상보다는 그동안 살아온 인생에 대해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인듯하다. 비록 내가 쓴 글이 엄청난 문학 작품은 아니지만 그냥 내 길을 잘 걸어왔고 잘 걸어가고 있다는 단단한 '위로' 같은 것. 그것을 단지 '상'을 통해 받았다는 생각. 내일로 다가가기 위한 '양식' 같은 것을 받았다고 말이다.


작년에는 친구의 권유로 한 문예지에 짧은 글을 2편 보냈는데 '입선'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곳에서 1년 간 매달 책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오늘 집으로 마지막 12월 호 책이 도착했다. 책 속 엽서에는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정기구독이 끝난다는 안내 멘트가 적혀있었다. 그 문구를 읽는데 괜히 울컥하며 눈물이 맺혔다. 1년 동안 나는 그 책을 통해 삶을 배웠다.




'벌써 이렇게 1년이 흘렀구나.'


어린 시절에는 신춘문예 같은 공모전이 아니면 쳐다도 보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는 문학성 없는 작품은 시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일까. 어떤 글이든지 글을 쓰고 읽는다는 건 누구에게 평가받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이든지 단 한 명이라도 나의 글을 읽는다면 계속 계속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완결성이나 작품성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매일 숨을 쉬듯이 자연스럽게 쓰다 보면 언젠가 어느 곳에 닿아있을 것이라고 위로하면서 말이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할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어떤 글이든지 일단 써보자. 쓰다 보면 방향도, 길도, 색채도 생겨날 거야.'


글은 우리의 삶과 같아서 모두 밝을 수만도 어두울 수만도 없다. 그 안에는 힘듦과 슬픔, 우울과 방황, 고뇌와 좌절, 환희와 기쁨, 행복과 희망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나는 음악을 들으며 자주 생각하곤 한다. 위대한 작곡도 듣는 이가 없다면 완전할 수 없다고. 글 또한 마찬가지라고. 누군가 쓴 글을 또 다른 누군가 읽을 때 문장에는 생명력과 힘이 생겨난다. 글을 통해 우리는 '교감'할 수 있다.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이 있다.


'내 글을 쓰고 싶다.'


회사에서 컨펌받고 수정하고 삭제되는 글이 아닌 진짜 내 글을 쓰고 싶다. 아직은 그 여정 속에 있는 것 같다. 밥벌이를 위해 글을 쓰는 시간이 있을 테고 자투리 시간에 진짜 내 글을 쓰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온전히 내 글을 쓰는데 모든 시간을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 시간을 넓혀가고 싶다.


나의 글을 쓴다고 늘 기쁨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기쁨과 슬픔은 빛과 어둠과 같아서 늘 서로의 곁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픔은 언제나 기쁨의 뒤에 있다. 기쁨은 슬픔을 잘 다독이면서 끌어안고 덮어주며 함께 나아갈 것이다.


우리의 하루처럼, 일처럼, 만남처럼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슬픔은 언제나 기쁨의 뒤에 있다.


* 읽은 책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넘기지 못한 페이지



* 제목: 일의 기쁨과 슬픔 ㅣ 알랭 드 보통


p.134 직업 상담

내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때때로 우리는 인간의 여러 기능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지적으로만 이해하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몇 가지 소박한 요구가 남아 있으며, 그 가운데는 지원과 사랑에 대한 꾸준하고 강렬한 갈망도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시먼스의 동기부여 훈련이 호소력을 가졌던 것도 우리 인격의 아주 오래된 측면, 즉 웅변도 복잡한 논리도 원치 않고, 필요한 만큼 우리를 구원해줄 만큼의 희망만 담겨 있으면 볼품없는 문장 같은 것을 얼마든지 용서하는 측면에 부응을 했기 때문이다.





* 제목: 일의 기쁨과 슬픔 ㅣ 장류진


p.63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아홉 시가 되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이 또 있었다. 몇 달 전 예매해두었던 조성진 홍콩 리사이틀이 벌써 다음 달이었다. 공휴일과 주말, 그리고 아껴둔 연차를 하루 붙여서 삼박 사일을 놀고 공연도 볼 것이다. 항공권 예매 사이트에 접속한 다음, 홍콩행 왕복 티켓을 결제했다. 조금 비싼가 싶었지만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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