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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 살로메 Oct 28. 2021

웃음

당신은 아직도 회사에서 억지웃음 지으시나요?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인 게 언제일까?


오래도록 프리랜서 작가로 일해온 내게 누군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억지웃음'과 '가식'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또 인정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물론 능력이겠지만 그 능력 안에는 늘 (처세술: 가식, 아부, 거짓 웃음)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웃음'에 대하여 생각하다 보면 C방송사에서 함께 일한 담당 PD S가 생각난다. 그녀는 절대 동료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학벌과 외모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상사에게 아부를 떨고는 하였다. 그녀의 아부가 얼마나 심했는지 밥을 먹다가 체할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그녀의 옆에 있자면 가식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나조차도 왠지 S의 호응에 발맞추어 상사의 말에 호응하며 웃고 반응해야 할 것 같았고 그런 자리가 늘 불편하였다.


이건 순전히 나의 추측이긴 하지만 그녀가 스펙, 외모 모든 면에서 뒤처지지 않았음에도 '아부와 웃음'을 자신의 처세술로 삼았다는 점에서 나는 몇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었다. (순전히 나만의 추측이므로 정확한 사실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무서운 상사 앞에서 그래, 억지웃음 지을 수도 있겠지..만!


1. '정규직 PD'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 (상사의 평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2. 정작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

3. 타고난 인정욕, 애정욕이 강해서

4. 선천적으로 웃음이 많아서?! (하지만 S는 혼자 있거나 동료들과 있을 때 잘 웃지 않았다.)


어쨌든 S의 옆에서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상당히 피곤하고 에너지가 무한정 소모되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S를 험담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S는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언제 어디서든지 마주칠 수 있는 보편적인 사람일 테니까. 그게 안 되는 직장인은 결국 회사를 박차고 나와 프리랜서를 선언하든지 사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웃음'의 본질적 의미가 변질되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서로가 솔직히 마주 보고 공감하면서 지어지는 웃음이 아니라 마치 헬스장에서 트레이닝을 하듯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얼굴 근육을 씰룩거리며 웃어 보이는 행위. 그런 웃음은 텅 비어있고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변명과 핑계를 대볼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살아야지 먹고살 수 있는 사회라면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회가 잘못된 것 아닐까.


그렇다면 '웃음이란 무엇일까?'


왜 '웃음' 하면 이 무서운 조커의 '웃음'이 생각나는지



웃음에는 여러 종류의 웃음이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행동이나 이야기가 웃겨서 웃는 웃음'

'누군가 신체를 간지럽혀서 웃는 웃음'

'공동체에서 소외되기 싫어서 같이 웃는 웃음'

'살아남기 위해 웃는 생존형 웃음'

'가소롭고 어이없어서 웃는 비웃음'


기타 등등등....


뭐 이런 웃음에 대한 정의를 나름대로 하다 보면

'어쩌면 웃음,

그건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때 가장 웃음다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터키에서 마주쳤던 아이의 해맑은 웃음


10여 년 전일까. 퇴근 후 한 문예지의 시 창작 강의를 들으러 다녔는데 그 강의실에는 소위 글 좀 써본다는 사람들이 무수히 모여있었다. 그들은 수업시간마다 '투 머치' 진지했고, 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우울해 보이기도 했다. 뒤풀이 장소에 가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카페 안에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당시에는 실내 금연 제한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늘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웃음'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회사에서 이런 미소를 마주한 적이 언제인지...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한 클래식 음악 강연에서 피아니스트는 음악가의 진지함을 '숭고'라는 표현으로 설명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하하' '호호' '까르르'하고 소란스러운 소리를 동반하는 '진지하지 않은 웃음'이 꼭 숭고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철학자가 아니므로 '앙리 베르그송'처럼 '웃음'에 대하여 철학적인 이야기를 펼칠 수는 없지만 일상 속에 스며든 웃음을 관찰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회사생활을 하면서 지어 보이는 '웃음'은 지나치게 '사회적'이다.

웃기지 않은 웃음에 호응하면서 재미있는 척, 즐거운 척, 좋은 척 척척척을 해야 하는 '웃음'


그래서인지 한 밤중 깊은 잠에 빠져 잠꼬대를 하며 웃어 보이는 상대방의 웃음이 오히려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그 '웃음'은 아무도 의식하지 않았기에 솔직하다.


* 읽은 책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넘기지 못한 페이지


* 제목: 웃음 ㅣ 앙리 베르그송


p.14 다만 이 지성은 다른 사람들의 지성과 접촉을 유지해야만 한다. 여기에 우리가 주의를 환기하고자 하는 세 번째 사실이 있다. 자신이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희극적인 것을 향유하지 못하리라. 웃음은 반향을 필요로 하는 듯이 보인다. 웃음소리를 잘 들어 보라. 그것은 분절되고, 분명하고, 끝이 맺어지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점점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계속되기를 원하고, 마치 산중의 천둥처럼 터져 나오는 큰 소리로 시작해서 구르는 소리로 한없이 이어져 나가는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반향이 무한히 확장하지는 않는 법이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큰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 범위는 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웃음은 언제나 한 집단의 웃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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