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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 살로메 Nov 24. 2021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죽음'이 아니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말

언젠가 바다 위를 날아오르던 새


몇 주전 음악회에 가기 위하여 오랜만에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하다가 바로 앞에 있는 교보문고에 들러서 최근 나온 서적들을 훑어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책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나는 이어령 교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지만 아주 오래전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읽고 깊은 울림을 전해받았다. 이 책 또한 그랬다. 읽으면서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내 눈앞에 검은 커튼이 스르르 열리면서 아주 찬란한 빛이 온몸으로 흡수되는 것 같았다. 빛의 파동이 느껴졌다.



'우리는 죽음을 늘 잊고 산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죽음을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싶어졌다. 죽음은 생명의 반대가 아니며 어둠도 아니라는 걸 되뇌면서.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여전히 우리에게는 어렵게 다가오는 그 현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며 역으로 탄생이 있었던 태초로 돌아가는 성스러운 일임을 상기하게 되었다. 돌아온 탕자처럼. 돌아갈 길로 가는 것. 그곳에는 나를 반기는 변하지 않는 '아버지'가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다짐 같은 것을 하였다. 언제까지 이어질 삶일지 알 수 없으나 나 자신을 속이는 삶은 살지 말자고. 매번 내가 원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겠지만, 이왕 살게 된 거 내 영혼이 좋아하는 일과 내 육체가 원하는 노동을 하며 살아가자고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그 일이 '글쓰기'였으면 좋겠다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자고. 내가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사는 동안 빌려 사용했던 모든 것을 다시 내어놓으면서 하나도 아깝지 않고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정직하게 살고 싶다. 돈과 타협하지 않고 진심을 회피하거나 아부 떨지 않으면서 정직하게 삶과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이어령 교수의 책을 읽으며 감히 내가 공감하고 위로받은 부분은 나도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래도록 교회에 다녔지만 늘 신에 대하여 의문 투성이었고, 그 해결되지 않는 갈증으로 인해 전도사님과 목사님에게 가시 돋친 질문도 많이 했으니까. 어쩌면 그들에게는 내가 하나의 골칫덩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때면 신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듯 'C.S루이스' '스캇 펙' 그리고 '이어령' 같은 저자들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그 책 속에는 직접 신에게 전해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것들은 언제나 맑고 투명하고 나를 뒤흔들어 깨우는 어떤 것들이었다.



'파 뿌리의 천국'을 기억하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인지 나는 자주 이 세상에는 '완전히 선한 인간'도 '완전히 악한 인간'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어령 교수의 말처럼 어떤 악인에게서도 '파 뿌리의 천국'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붙잡으면서.



'중력을 거스르는 삶'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며 한때 좋아했던 시몬 베이유의 '중력과 은총' 그리고 바슐라르의 '공기와 꿈' 같은 책들을 떠올렸다. 끝없는 '상승'과 중력을 거스는 은총, 어떤 충만한 삶들. 죽음처럼 그것들은 멀리 사라지나 충만하고 높다.



'어디로 가야 할까?'


살아가면서 우리가 자주 하는 질문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땅의 생각임을 깨닫는다. 대지 위에서 방향을 찾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가득  육체와 정신을 비우고 새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는 것이리라.   수평선을 향해.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읽은 책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넘기지 못한 페이지


* 제목: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ㅣ 김지수


p. 291 "선생님,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미소 지으며)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촛불도 마찬가지야. 촛불이 수직으로 타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어. 항상 좌우로 흔들려.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는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당신의 인생은 촛불과 파도 사이에 있었군요. 정오의 분수가 왜 슬픈지 알겠습니다."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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