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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 살로메 Mar 07. 2022

불장난

행복해하면서 계속 글을 쓰는 일

최근에는 손보미 소설가의 소설들을 읽었다. <맨해튼의 반딧불이> <우연의 신> 그리고 최근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단편 <불장난>까지. 그리고 그녀에 대하여 관심이 생겼고 이런저런 인터뷰와 글들을 찾아 읽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있는데 그 이야기는 바로


'학교 도서관을 나서면서 ‘아, 나 내일 또 와서 소설 쓸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 그게 참 행복해요.’


라는 내용이었다. 덧붙여 그녀는 좋은 소설을 쓰겠다는 욕심보다는 더 많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였다. 이 인터뷰를 읽으며 삶에 대하여 작가란 직업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어린 시절에는 소위 문학을 하는 사람들 또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우울하고 어두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지 멋진 예술이 탄생한다고, 창작의 고통은 그런 것이라고. 그리하여 나 또한 시인이나 소설가 등이 된다면 그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일평생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상상을 하곤 하였다. 하지만 손보미 소설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행위가 고통스럽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운 가득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가끔, 아니 자주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이상하고 괴리감 있게 느껴질 때가 있다. 비효율적인 것들에 에너지를 쏟고 직장 상사의 기분을 맞추며 눈치를 보고 이 일을 왜 하는지 알지 못한 채 회사를 위해 일을 하는 나날들. 그런 시간과 노동을 보상받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월급을 쏟아 샤넬백을 사고 외제차를 구입하며 자기 위안을 삼는 현대인들. 물론 그런 소비가 무조건 잘못되거나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의 말처럼 자신이 벌어서 소비하는데 타인이 무슨 상관이랴. 또한 사람은 제각각 행복을 느끼는 대상과 요소들이 다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나에 대해서라면 (물론, 나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일 뿐인지만..)

적어도 나에 대해서라면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 가장 행복해하는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그녀(손보미 소설가)처럼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여행을 하고 정성 가득한 요리를 만들고 향긋한 차를 우리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며 책을 읽는 시간들이 더 소중한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그것들은 내게 만족감과 행복을 준다.


살아있는다는 '생동감'을 불어넣어 준다.


정말로 그렇다.


프리랜서 작가로 오랜 시간 지내오면서 불안정한 시간 속에 초초해하고 불안해할 때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불안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남편과 함께 정성일 평론가가 진행하는 '피그'GV에 다녀왔었는데 2시간의 긴긴 해설이 끝난 후 정성일 평론가는 말했다.


'성공은 반드시 잃는 게 있고, 실패는 반드시 얻는 게 있다.'


어떤 삶이 실패한 삶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프리랜서 작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잃는 것보다는 얻은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손보미 소설가의 인터뷰와 소설들을 읽으며 그 사실을 선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글을 써서 행복했고, 시간을 확보해서 기뻤으며, 싫어하는 일을 남들보다 덜 할 수 있어서 (아주 하지 못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감사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두가 힘겨웠던 2년이란 시간이 오히려 내게는 큰 자양분이 되었고 기회를 제공해주었음을 요즘은 깊이 깨닫는다.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을 공급받았다. 조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무 노력 없이 얻어진 것들도 있었다. 물론 잃는 것도 있었다. <불장난>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제 정말 쓸 때가 되었다고. 그녀처럼 행복하게 글을 쓰고 싶다고. 글을 쓸 수 있는 내일이 있어서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맺힌다.


유년시절 누구나  번쯤 해보았을 '불장난'. ‘불’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생명을 주기도 한다.


다시 꺼져버릴 불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속에 불꽃을 계속 피워나가고 싶다.


또다시 3월이 찾아왔고 삭막했던 공터에도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글을 쓸 수 있는 오늘이 있어서 감사하다.  


* 읽은 책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넘기지 못한 페이지>

p.75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때때로 삶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건, 바로 그런 착각과 기만, 허상에 기꺼이 내 몸을 내주는 일이라고. 그런 기만과 착각, 허상을 디뎌야지만 도약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존재한다고. 언젠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 보는 눈 속에서 어떤 사실들은 재배열되고 새롭게 의미를 획득한다. 불가피하게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며, 허구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 허구가 되는 그런 순간들! 그러므로 이 여정 자체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 보는 눈의 진짜 용도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내가 나중에서야 하게 될 생각이었고, 그날, 소리 내어 [불장난]을 다 읽어 낸 나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아이들을 둘러보며 선생님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선생님은 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자, 박수."


성의 없고 산만한 아이들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번에야말로 마음껏 의기양양해하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 이상문학상 작품집 ㅣ 손보미 <불장난>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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