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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 살로메 Apr 13. 2022

벚꽃 동산

왜 벚꽃은 매년 봐도 질리지 않는 걸까?

매년 어김없이 봄날이 찾아오면 많은 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건 역시 벚꽃이 아닐까. 피어나자마자 후드득 금방 떨어져 버리는 벚꽃. 잠시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사람들은 벚꽃을 참 좋아하고 매년 벚꽃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한다. 이런 벚꽃을 볼 때면 안톤 체홉의 '벚꽃 동산'이라는 희곡이 꼭 떠오른다. 거대한 서사나 엄청난 사건이 아니지만 안톤 체홉의 희곡들은 평범한 날들 속에서 늘 깊은 울림을 준다. 그래서인지 그의 무대는 왠지 벚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봄이면 자주 찾아가는 동네 벚꽃 길


봄의 색채는 정말 아름답다.



3월 말에는 오미크론 바이러스에 확진되어 조금 우울한 날을 보냈다. 남들은 무증상인 경우도 많다는데.. 무증상은커녕 미열과 오한, 두통, 후비루, 가래, 무기력증과 우울증 등 온갖 증상을 겪으며 7일 동안 집에 갇혀 지내다 보니 우울증이 오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하필 부작용 때문에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3차 백신 접종을 뒤늦게 했는데. 하필 접종한 지 4일 만에 코로나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몸상태는 더더욱 좋지 않았다. 그동안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코로나 백신 부작용과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으로 인한 증상 그것으로도 모자라 코로나 후유증까지 겪고 나니 온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꽃은 왜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걸까?


하지만 그런 우울한 날들 가운데에서도 벚꽃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활짝 어여쁘게 피어났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이제는 한 해 한 해 벚꽃을 바라볼 때면 이 아름다운 벚꽃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기에 이 순간들이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현충원이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다는 건 행운이다.


2년이란 시간 동안 무료하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때론 우울했다. 몸이 아플 때면 기분은 더욱 아래로 가라앉았다. 백신 부작용으로 시작된 편두통은 아직도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골치 아프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하는 나날이다. 사실 아직도 삶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다. 수없이 희망적인 이야기를 노트에 적다가도 금세 비관론자가 되어버린다. 이런 시기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극복 방법은 그저 견딤 뿐일까.


고요해서 더 좋았던 장소


우리 동네에서 봄이 가장 아름다운 아파트


인간은 정말이지 미약한 존재란 생각이 든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런 나약한 존재. 평범한 일상 속에 이런 무기력함이 찾아올 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많지 않지만 그 작은 일들을 해보는 것. 이를테면 집 밖으로 나가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해보거나 좋아하는 요리를 해 먹어 보거나 벤치에 앉아서 일광욕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예쁜 꽃이나 식물을 하나 사서 키워보거나 어느 골목에 핀 벚꽃을 한번 보거나. 


매년 봐도 질리지 않는 벚꽃들,


나의 일상 또한 벚꽃처럼 매일 매일이 질리지 않기를. 

매번 또다시 피어나기를. 이 봄날 연약하게 소망해보는 것이다. 


* 읽은 책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내년에 다시 만나자.



<넘기지 못한 페이지>


p.145 트로피모프 나를 믿어, 아냐. 나는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고, 젊어. 또 여전히 대학생이지만 이미 수많은 시련을 겪어 왔어! 나는 배고프고, 아프고, 불안하고 거지처럼 가난해. 그래도 난 운명이 날 이끄는 곳이면 어디든 떠돌아다녔지! 그래도 내 영혼은 언제나 내 것으로 남아있어. 밤이나 낮이나 늘, 형용할 수 없는 예감이 내 영혼을 가득 채우고 있어. 행복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난 예감해. 아냐, 내 눈에는 이미 행복이 보여.


아냐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달이 떠오르고 있어요.


에피호도프가 기타로 아까와 같은 구슬픈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달이 떴다. 포플러 나무 근처에서 바라가 아냐를 찾고 있다. "아냐! 어디 있니? 아냐!"


트로피모프 그래, 달이 떴군.


사이.


트로피모프 바로 저게 행복이야. 행복이 다가오고 있어. 점점 더 가까이. 내 귀에는 그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설령 우리가 끝내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문제가 아니야. 우리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찾아 줄 텐데!


- 벚꽃 동산ㅣ 안톤 체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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