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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 살로메 Sep 29. 2022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안 애프터눈 티 

어느 오후의 본다이 비치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에릭 로메르의 각본집 ‘가을이야기’를 읽었다. 한국은 이제 가을일 테니까. 결혼 전에는 혼자 여행을 다녔는데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비행기 안에서 자주 울곤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감상적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그건 나에게 하나의 만남이었고 이별이었다. 꼭 사람이랑만 이별하란 법은 없으니까.


장소와의 이별, 그래서 여행이 짧든 길든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며칠 멍하고 허전한 상태로 있다가 쓸쓸해지곤 하였다. 언제나 가을이 계속될 것처럼. 서늘하고 붉고 마음속에는 낙엽이 가득 쌓여갔다. 이번에는 한국을 떠날 때 비행기 안에서 조금 울었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하였던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모든 게 감사하고 비행기를 타자 실감이 났다. 식상하지만 ‘꿈같다.’라는 말을 내뱉었던 것도 같다.


언제나 장소들은 너그럽고 자신의 모든 걸 내어준다. 묵묵하게 견디며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맞아준다. 나는 그 자리에 잠시 앉아도 보고 건물이나 식물의 표면을 만져도 보고 때론 바삐 지나치기도 하였다. 다시 오지 못할 이유들이 더 많다는 걸 알면서도 어김없이 또 오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그 길을 걸었다.


마지막 날에는 남편과 숙소 근처의 마트에서 호기심 가득한 물건들을 쇼핑하였고. 왠지 마실 때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향과 맛이 날 것 같은 ‘트와이닝 오스트레일리안 애프터눈 티’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사실 꼭 그 맛과 향이 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언제나 여행과 추억은 이 ‘오스트레일리안 애프터눈 티’처럼 모두 한 잔에 담길 수 없다는 걸 안다. 맛과 향이라는 게 그렇듯 매혹적으로 다가왔다가 이내 스르르 사라질 것이기에. 그러다가 희미한 분위기만 남게 될 것이기에.


에릭 로메르의 ‘가을이야기’ 속 와인처럼 우리는 숙성되고 무르익어가고 어쩌면 결국 혼자 있게 될 것이다. 또 그렇게 어느 날을 기다리면서 시간이 담긴 잔을 하염없이 바라볼 것이다. 언젠가 이 빈 잔이 초라한 모습으로 찬장 안에 거꾸로 놓일지라도. 나는 또 그것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고 마주 앉을 것이다.


이제 가을이다. 

봄이 또 한 번 떠나갔다.


* 읽은 책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넘기지 못한 페이지>



p.355 오스트레일리아는 이상하리만큼 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식량은 풍부하고 우라늄, 천연가스, 석탄, 그 모두가 '무진장'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이다. 보물 산을 깔고 앉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로, 좀 과장하자면 땅을 파면 반드시 뭔가 나온다. 악착같이 일할 것도 없다. 사막에서 길을 잃고 돌아다니다가 커다란 금괴가 뚝 떨어져 있어서, 그걸 주워 돌아와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종종 있다(거짓말이 아니라 실화이다), 즉 일본과는 거의 정반대인 경제 구조를 가진 나라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그런 이유로 1990년대 초기에는 지하자원 수출이 오스트레일리아 수출 총액의 절반을 점유했다.

 

  그리 길지 않은 오스트레일리아 역사 속에는 경제 상태가 궁지에 몰려서 이대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람들이 머리를 싸맨 시기가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어떤 새로운 희소광물이 미개척지(이게 아직도 잔뜩 있다)에서 발견되어 어떻게든 난국을 극복해왔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은 자기 나라를 '러키 컨트리'(다소 자조적이긴 해도) 부른다.


* 시드니! ㅣ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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