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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 살로메 Oct 26. 2022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정함이 모든 것을 구원한다.

에브린의 상황을 말해주는 구겨진 영수증들


최근 이동진 평론가가 평점 5점 만점을 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궁금하여 남편과 관람하게 되었다.


사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포스터만 봐도 B급 영화의 스멜이 가득했고 뭔가 굉장히 독특한 정서가 있을 것 같았기에 직접 보지 않고는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영화관을 나설 때 한 젊은 커플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런 영화일 줄 몰랐어. 난 되게 잔잔하고 감동적인 영화일 줄 알았는데...'


그렇다. 남편과 나는 90년대 홍콩 영화를 자주 접하며 자란 연령대이기에 이런 영화가 굉장히 익숙하고 거부감이 들지 않지만 요즘 세대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분명히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으므로.


이 영화는 굉장히 복합적인 장르의 영화인데 특히 코믹한 부분은 마치 '주성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황당하고 또 황당하여서. 지금 보는 영화가 웃겨서 웃음이 나는 것인지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


남편 분의 연기도 일품이었다.


그렇다면 영화가 별로였느냐.. 또 그건 아니다.

이 영화는 굉장히 독창적인 영화여서


1) 어떻게 이런 황당한 영화를 만들었을까.

2) 어떻게 이런 영화를 이토록 짜임새 있게 만들었을까.

3) 어떻게 이런 영화를 이렇게 철학적으로 만들었지.


까지 더해져서 그냥 대충 독특한 영화라고 넘겨버리기엔 아까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최근 김연수 소설가의 신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주문하며 받은 Attention Book에 실린 김연수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 '에블린'의 삶을 연결해볼 수 있었다.


양자경이 연기한 '에블린'은 미국으로 이민 와서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는 여성으로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리고 있는 처지인데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고 딸은 동성애자로 에블린과 삶의 가치관이 전혀 다르다. 그로 인해 에블린은 지치고 찌들어 있는 상태라고 할까. 이런 '에블린'은 어느 날 자신이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영화의 현재 시점의 에블린은 그 수많은 멀티버스 안에서의 자신 중 가장 최악의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 의미 있다. 왜 하필 최악의 상황일까. 하물며 딸 '조이'는 알파버스에서의 과도한 실험으로 인하여 모든 차원을 섭렵하는 '조부 투파키'가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조이는 극한의 허무주의에 빠져 베이글(블랙홀) 안으로 스스로 몸을 던지려고 하였으니.


눈알을 당신에게 주노니, 부디 평안하소서.


이런 '조이(조부 투파키)'를 보면서 나의 과거를 떠올리게 되었는데 나 또한 청소년기에 극 허무주의에 빠져서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신이 왜 이렇게 타락한 인간과 세상을 소멸시키지 않고 지켜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든 건 '無'로 돌아가는 것이 '평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극 허무주의로 끝나지 않는다. 에브린은 딸 조이를 포기하지 않으며 베이글(블랙홀) 모양과 반대되는 인형 눈알을 얼굴에 붙이며 자신의 삶을 긍정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황당하고 코믹한 행동을 하면서.

다정하게 빌런들을 무력화시킨다.


결국에는 다정함이 모든 것을 구원한다.


생각해보면 어둠으로 가득하고 비참한 이 세상을 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은 언제나 이런 것들이었다. 다정함과 위트. 인생에서 아주 큰 위기들을 넘길 수 있었던 건 어떤 거창한 사건이나 개연성 있는 행동들이 아니라 이런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이었으니까.


조금 다른 맥락일  있으나 어떤 면에서는  영화와 닿아있는 김연수 소설가의 인터뷰처럼 어쩌면 에블린은  모든 (Everything) 그리고  모든 (Everywhere) 경험하였기 때문에 지금  비루한 현실을 낙관하고 수용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지나왔을 때 그 안에서 좋았던 그리고 편안했던 시간만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비참하고 남루한 날들까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건 아닐지. 이 영화가 끝났을 때 이상하게 두 뺨으로 눈물이 흘렀다.


지금 비록 비참한 현실일지라도 이것만 기억하자.

결국 다정함이 모든 것을 구원한다.





마치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는 것 같은 깊이마저..ㅎㅎ


p.32 그런 의미에서 시간 예술인데, 소설가는 이야기에 담긴 시간뿐만 아니라 그 바깥을 계속 들여다봐야 해요.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의 시간도 보고,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의 시간도 계속 따라가서 보는 거죠. 그래서 『일곱 해의 마지막』을 쓸 때 저는 백석이 죽고 난 뒤를, 그러니까 잊혔던 그의 시가 남한에서 꽃 피우는 것을 봤기 때문에 불을 보는 장면으로 소설을 끝낼 수 있었던 거죠. 시간의 바깥까지 볼 때 소설가는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어요.


p.35. 현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이야기는 바꿀 수 있어요. 현실을 어떤 이야기로 재구성하느냐는 자신에게 달린 문제죠. 좋게 재구성한다면 한없이 좋은 이야기가 되고, 나쁘게 재구성하면 한없이 나쁜 이야기가 되죠.

저는 여러 버전의 이야기를 찾다가 그중 가장 좋은 버전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선택하는 주인공들에게 관심이 가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난이 닥쳤을 때, 그 일을 이야기로 재구성한 뒤에 그 삶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저는 늘 궁금했어요.


- Attention 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ㅣ 김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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