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 살로메 Jul 08. 2022

헤어질 결심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사랑

배우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박해인'과 '탕웨이' 배우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 속 잔인함 때문인지 그동안 두 번 보고 싶은 영화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개봉한 '헤어진 결심'은 달랐다. 여운이 무척 짙었고 그의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다시 보고 싶은 영화였던 것이다.


 영화에는 '사랑'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독특한 레이어 지니고 있으며 현실적인 듯하면서도 판타지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생각하였다. 어떤 면에서는 캐릭터와 인물이 놓인 상황이 낯설고 공감이 되지 않는 면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공상 소설이나 상상  이야기만은 아닌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이  영화의 가장  매력이 아닐까 싶다. 굉장히 다른  개의 레이어 톱니바퀴처럼 굴러간다.


멜로드라마에 최적화된 두 배우의 연기


이 영화는 명백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영원히 '미결'로 완성된 사랑. 끝까지 애타고 그리워해야만 하는 사랑.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사랑. 그런 끔찍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어린 시절에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단조로웠다. 사랑을 하면 상대방과 진정으로 '하나'가 되고 그로서 내가 완전해지는 것이라는 환상 같은 것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인간의 '사랑'이란 영원히 두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없는 끝없는 '미끄러짐'이라는 것을.


'산' 같기도 하고 '바다' 같기도 한 벽지


'당신이 사랑이라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은 시작되었다.'


영화 안에서 '서래'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건 마치 두 다리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지만 엇갈리는 운명 같은 것이다.



번역은 엉망이지만 '존 버거'의 책이라서 인내심을 가지고 읽었다.




p.204. 사랑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그 사람 스스로의 행위들과 자기 본위의 측면이 점차 사라져 버리고 났을 때에도 지속되는 존재이다. 사랑은 그러한 행위가 있기 이전의 어떤 사람과, 그러한 행위가 있고 난 이후의 마찬가지인 그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다. 그것은 미덕으로 바꾸어 놓을 수 없는 가치를 이 사람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p.205. 사랑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이해된다. 그들의 윤곽선, 즉 형태는 마주치게 되는 표면이 아니라 경계를 이루는 지평선인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재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동사들에 의해 알아보게 된다. 그 또는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 또는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과는 상당히 차이를 지니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들은 그 사랑의 가치를 창조해내게 되는 것이다.


- 본다는 것의 의미 <두 콜라르 사이에서> ㅣ 존 버거 -



박찬욱 감독은 채도 낮은 '블루' 청록색' '레드' 계열을 참 잘 다루는 것 같다.


마침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볼 때쯤 존 버거의 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의 책 속에서 읽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와 이 영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나는 이 영화가 마냥 비극적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해준과 서래의 사랑은 비록 '미결'로 완성되었지만, 그건 서래의 단호한 '결단'과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니까. 해준의 말처럼 바다 깊숙한 곳으로 증거를 인멸할 수도 있었던 일들을. 기필코 다시 꺼내 상대방에게 내 보이는 서래의 용기. 그리고 스스로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바다 깊숙한 곳으로 몸을 던질 수 있는 용기. 그 용기는 해준이 아니라 '서래'에게서 흘러나온다.


하염없이 서로에게서 미끄러지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심'을 하는 것. 영원히 '미결'로 남고자 하는 '결심'을 하는 것.


사랑은 그리하여 고귀하고 기괴하며 스산하기까지 한 것일까. 이 영화가 어느 면에서는 '안개'에 빚을 지고 있는 것처럼. 나 또한 영화를 보면서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정명훈 지휘의 서울시향 '말러 교향곡 제5번'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평소 정말 좋아하는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이 중요한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정명훈 지휘의 이 곡을 정말 좋아하는데 마침 '정명훈 지휘'의 '서울시향' 버전 연주가 흘러나온 것이다. ㅠㅠ


박찬욱 감독님이 평소 클래식 애호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곡의 분위기와 영화의 연출 그리고 분위기가 너무나 조화로워서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숨이 막히고 엔딩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의 미학적 감각을 알 수 있었던 경찰서 구도와 색감 그리고 오브제들


사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답게 결말에 대한 여러 추측들과 과학적 추론 등을 해보았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하자 남편은 '그냥 영화를 영화로 봐. 그런 거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지.'라고 대꾸하였다.


그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사람이 아무리 모래 구덩이 속에 들어간다한들 (몸에 돌을 달지 않는 이상) 파도에 의해 금방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는데..


영화적 완성도로 볼 때 '서래'는 수면 위로 영원히 떠오르지 않아야 할 것이고. 해수면 전문가에게 자문을 얻은 것인지도 궁금했으며.


나는 자꾸만 어떻게든 '서래'가 수면 위로 떠올라 발견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적 추측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몇 가지를 들어볼 수 있겠지만.. 그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브로커 -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