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일에 대하여
올해에도 어김없이 남편의 생일이 돌아왔다. 연애할 때는 주로 선물을 나눴고 작년 생일에는 유명하고 근사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나이가 들수록 또 함께 살아온 날이 많아질수록 기념일에 대한 설렘이나 자각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에는 '생일'이 특별했다. 초등학교 때는 이 날이 돌아오면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선물을 받고 엄마가 차려준 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조촐한 파티를 즐겼는데 그게 참 좋았다. 아직도 부모님 집의 오래된 앨범에는 도란도란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던 빛바랜 사진들이 남아있다.
그런 나도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고 많이 변했다. 사람 만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는 생일에도 남편, 가족과 조용히 보내며 지냈다. 남편의 생일에도 요란하게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좋아하는 케이크를 하나 사서 편지를 쓰고 같이 식사를 하며 보냈다. 올해에도 늘 하던 대로 차분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생일을 기념할 수 있었지만 어쩐지 그런 요리를 집에서 직접 해보고 싶어졌다. 무언가 더 특별하고 기억에 남을 요란하지 않은 선물을 건네주듯이.
처음으로 '캐비아'를 구입했다. 흔한 식재료보다는 오래도록 기억에 각인될 수 있는 재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읽고 있던 요리책에 캐비아를 활용한 음식들이 꽤 있었으므로 고민 없이 남편과 장을 봤다. 캐비아에도 등급이 있었고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남편은 '벨루가'가 가장 좋은 등급이고 그다음이 '오세트라'인데 그 아래 등급의 캐비아는 상태가 좋지 않아서 구입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충고하였다.
나는 오세트라 캐비아를 구입했고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꽤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었다. 캐비아를 사용할 때는 몇 가지 팁이 있었는데 1) 쇠로 된 수저나 젓가락을 사용하면 산화를 빨리 일으키므로 피하고 2) 뚜껑을 오픈한 후에는 되도록 빨리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생일 그리고 다음날까지 네가지의 방식으로 캐비아를 응용해서 먹었다. 요리 중간중간에는 남편에게 잔심부름을 시켰는데 그럴 때면 남편은 이런 음식 안 먹고 떡볶이만 먹어도 좋은데 괜히 일을 만든다면서 잠시 투덜거렸다. 하지만 막상 요리가 완성되었을 때는 어찌나 맛있게 단숨에 먹던지. 금세 투덜거린 기억을 잊은 듯 보였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괜히 놀려도 보고 약 올려도 보면서 우리는 즐겁게 웃으며 식사를 했다.
'음식'이라는 건 '음악'과 마찬가지로 창조되면서 사라진다. 오래도록 남아있는 선물과도 다르고 그래서 특별하다. 같은 레시피를 보고 요리해도 형태와 맛이 매번 달라진다. 늘 단 한번의 특별한 요리와 음식이 있을 뿐이다. 캐비아의 감칠맛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처음에는 별맛 아니라고 느꼈지만 입안에서 강렬하게 터진 후 잔잔히 남아있는 맛의 파장이 길었다. 생일축하 선물로 '캐비아'라는 식재료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사진으로만 남은 생일요리.
때로는 사라짐으로 더욱 오래 기억되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