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무용하고
적당히 유용하게

by 한여름

나를 찾지 마라. 찾아도 난 없다, 고 다짐했다. 진짜 찾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일부러 식구들에게 카톡도 보내지 않았다. 이틀 동안 단골 브랜드에서 카톡 메세지만 간간이 올 뿐, 스팸 전화조차 한 통도 없다. "무용하게 살고 싶은 나, 정말 나는 무용한 인간인가?" 아이러니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금요일에 주문진에 가서 일요일 오전에 집에 들어가니 그제야 아들이 묻는다.

“어디 갔다 왔어?”


개인적인 소득이나 성취감을 위해 일을 함에도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부류로 구분한다. 얼마 전까지 나도 그 부류에 속했다. 오래만에 광화문에 있는 D 타워 식당가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왠지 중요한 이야기일 것 같았다. 전 직장 후배가 사는 점심을 먹으며 내가 너무 부럽다는 말을 듣고 오는 길에 한편으로 사회적으로 무용한 인간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그러고 보니 “사회적인 유용성”은 항상 나의 첫번째 고민이었다. 인문학은 사회의 산소 같은 학문이라는 교수님과는 말과는 정반대로, 인문학의 사회적인 유용성을 인정하는 곳은 거의 없었고, 특히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은 취업 전선에서 마이너스 점수를 받는다. 내가 사회적으로 유용한 인간임을 증빙하는 것은 일반적인 기업에 정상적으로 취직하는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무용한 조건만 있는 나를 인턴으로 뽑았던 사장님과 나는 열 살 차이다. 원래 개인적인 목표는 나의 첫 상사였던 사장님이 일하신 나이까지 나도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사장님이 2년 전에 일을 관두고 내가 1년 정도 되었으니 나보다 9년 더 일을 한 셈이다. 그분이 마케팅 매니저 박 차장이던 시절, 매일 오후 두시경 자리 전화가 울린다.

“정국아! 엄마 일하지. 할머니한테 간식 달라 하고, 학원 갔다 와.”

멀리서 나지막이 들려오던 목소리가 십오 년 후 정확하게 나의 대사였다. 회사부터 가족들까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찾을 시기, 사회적인 효용가치가 최고인 때다. 동시에 도대체 나는 왜 이러고 사나, 하는 회의 또한 극에 달하기는 시기이기도 하다. 다 그만두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지만, 떠날 준비를 하자는 이유로 적당한 시기는 자꾸 미루어진다. 무용하게 사는 것도 쉽지는 않다.


사장님은 만날 때마다 요즘 본인이 사회적으로 너무 무용하다는 생각에 우울해한다. 지금까지 충분히 유용하게 살아왔으니 취미생활하면서 재미나게 사시라 해도 그닥 위로가 되지 않는 듯하다. 책임감 강한 워킹우먼이 은퇴 이후, 자식들이 성장하고 더 이상 책임질 과제가 없어지면 자신의 유용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사장님에게 우리는 이제부터 적극적인 소비자로 살자고 하니 크게 웃는다. 경제 활동에 기여하는 사람은 출근하는 직장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업이 대상으로 하는 소비자가 있다. 소비란 사회적으로 상당히 유용한 일이다. 예상치 못한 자부심도 생긴다.


지난 달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충분히 놀아서 더 이상 하고싶은 것이 없을 만큼 심심하기도 하고, 동시에 집에서 놀기만 한다는 남편의 비난에 사회적으로 유용한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 같기도 하고, 우리집 알바 할머니 비용도 벌 수 있다.


언니가 다니는 회사에서 일주일에 평일 하루 주말 하루. 영수증과 점표를 정리하고, 매출 매입 일반 전표를 구분해서 정리한다. 짬이 나면 화분에 물도 주고 서류 파쇄도 한다. 무겁게 머리를 쓸 일도 없고, 그냥 숫자들이 맞는지 확인하는 난이도 하에 가까운 업무라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업무다. 부담스러운 알바의 스펙에 직원들은 물론 사장님까지 자꾸 업무 확장을 원하는 눈치지만, 난 그냥 딱 요만큼의 알바가 적당하다.


적당히 무용하고 적당히 유용한 그런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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