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수를 벗어났지만 또 다시 원하고, 반복하고
백수에서 직장인으로 타이틀이 바뀐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세상 빠르기도 해라. 아니지, 또 그 3개월 동안은 한 시간이 엄청 느리다고 투덜투덜 댔었더라.
나의 나름 규칙적인 백수의 삶 껍데기는 건강했었다. 오전 10시 기상. 1시 취침.
"노느라 살 쪘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하루 두끼만 먹었다. 코르셋 이런 것을 넘어 그냥 살 쪘다는 이야기는 세상에서 제일 싫고 살 빠졌단 이야기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걸 어쩌나. 모순적으로 먹을 것은 너무 좋고. 그러나 껍데기라 강조했듯 속마음은 건강하지 않았다. '나 어떡해. 나 어떡해'
오전 6시 30분 경.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소리가 들리면 그렇게 죄스러울 수가 없었다.
60세가 다 된 나이에도 규칙적으로 아버지는 출근하시는데 그 나이의 반절도 안되는 이 녀석은 쿨쿨 잠이나 자고 있다니.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 일을 하게 됐다.
"나 더 쉬고 싶었는데~"라는 진심은 아니지만 좀 진심이었던 말을 주변에 하고 허둥지둥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전에 했던 일이라 조금은 익숙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1년이라는 공백기와 나의 부족함에 부딪혀 아직도 길을 헤매고는 있지만 따뜻하고 좋은 선배들을 만나 신년 운세를 말해주었던 화담 아저씨의 말처럼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쁘게 살다 보니 '나'를 잊었던 것 같다.
쉬고 있을 때는 그렇게 '나'에 대해 질리도록 생각하고 주변에 대해서도 생각했는데, '나' 하나 조차 챙길, 아니 생각할 시간이 없더라. 그러다 보니 나의 감정에 대해 잊고, 쉽게 지치는 것 같았다.
아쉬웠다. 백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아찔하지만 밤에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맘대로 보고, 술이 마시고 싶으면 맘껏 마실 수 있는데. 주체가 내가 될 수 있는데 요즘은 '나'보다는 여러가지 내일에 대해 계산하게 되는 것 같다. 아. 어른이 되는 것은 이런 것인가. 스무살이 된지 한참 지났고 스무살이 기억도 나지 않지만 진정한 어른이 되는 단계가 진짜 시작되는 것 같아 무섭다.
누군가 그랬다. 20대는 실수도 할 수 있고 내 감정 대로 살 수 있지만 30대 부터는 그게 아니라고. 정말 그런 것일까 의문도 생기고 그런 것 같아 그 씁쓸함이 스며오는 것 같다.
하지만 아주 싫지만은 않다. 점점 '나다움'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 같다. 어린이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맘대로 지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점점 둥글게를 배우며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져주는 것이 내 맘이 편하다는 것을 느낀 10대였다. 그래서 그런지 "너는 참 사납게 생겼는데 말하면 오히려 아닌 것 같아!"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20대 때 일을 시작하며 오히려 바보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 굉장히 괴로웠다. 일을 시작하며 괜히 당하는 것이 많은 것 같아.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피해의식도 많았다.(물론 지금도 약간은 있지만)
그래서 괜히 센척도 해보고, 허세도 부려봤다. 그런데 더 웃기기만 하더라. 내가 느끼기에 웃기더라고.
지금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 한다. 누가 바보 같이 느끼던, 어쩌던 그냥 이게 나인걸.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게 내 색대로 하는게 정답인 것 같다. 어쩌면 정답이 없는 세상인데 그냥 내가 행복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싶고. 오랜 백수 시간을 거치며 누구의 말처럼 '이번 생은 망했는데' 완벽한 인생이 아닐 바에 행복한 인생이 좋지 않나 싶다.
헤헤. 행복해져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