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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니체 Feb 25. 2021

삐뚤빼뚤 일본인 미소의 비밀

일본인의 치아 속에 담긴 이모저모

삐뚤빼뚤 일본인 미소의 비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는 나라, 바로 일본이다. 삼국시대부터 문화와 인재를 전파하며 교류했던 일본은 임진왜란과 식민지배, 그리고 다시 수교를 거듭하며 어쩔 때는 이웃으로, 또 어쩔 때는 적으로서 살과 칼을 맞대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일본을 떠올리면 당신은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누군가는 초밥이나 라멘 같은 맛있는 음식을 떠올릴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오사카의 화려한 밤거리를 떠올릴 수도 있다. 여기서 조금만 초점을 좁혀서 ‘일본인’에 맞추어 보자, 필자는 바로 ‘덧니’가 떠오른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그 생김새가 비슷한 듯하면서도 또 많이 다른 모습을 띄고 있는데, 헤어스타일 등 패션 요소를 제외하면 아마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치열일 것이다. 자, 일본인의 삐뚤빼뚤한 치열 사이에는 어떤 재밌는 사실들이 숨겨져 있을지 파헤쳐보자!

일본인들이 대체로 치열이 나쁘다는 사실은 비단 한국인들만의 편견은 아니다. 2012년 일본 치과 의료기기 회사 '얼라인 테크놀로지 재팬'이 일본 거주 외국인 1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76%가 "일본인은 치열 상태가 좋지 않다"라고 응답했다. 일본인들의 치열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자국민들 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인증받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 일본의 치의료계 종사자도 의견을 같이한다. "국제인이 되고 싶다면 영어보다 이를 닦아라"라는 책을 펴낸 미야지마 유키 박사는 "일본인 중 80%는 치아 교정이 필요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만약 한국인들이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했을까? 아마 작은 눈은 키우고, 큰 턱과 광대는 깎아버릴 정도로 외모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들의 특성상 교정기를 다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많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바른 치열을 미의 척도로 보는 것은 범지구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일본은 독특하게도 고르지 않은 치열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적으며 교정이 필요하단 생각 자체를 많이 하지 않는다. 2012년 '얼라인 테크놀로지 재팬'이 미국, 중국, 일본 성인 총 6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타국민에 비해 치아 교정에 대한 관심도가 현저히 낮게 집계되었다.


엉망인 치열을 개선하기는커녕, 그것 자체가 유행이 되는 신기한 현상도 일어났었다. 모 유명 아이돌의 덧니가 매력포인트로 각광받으면서,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덧니 성형'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많은 여성들이 30만 원가량을 지불하며 없는 덧니도 만들어 붙였는데, 아직까지 시술하는 치과가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덧니가 일본인 사이에서 "귀엽고 섹시하다"라고 인식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보도했다. 덧니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스스로를 사랑하는 나르시시즘 격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혹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것을 긍정하는 낙관주의적 관점으로 보아야 할까?. 어떤 면이든 간에 한국인의 관점에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도(?) 국제화와 더불어 덧니에 대한 독특한 인식이 한 풀 꺾이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일본에 가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일본에는 정말 치과가 많은 것 같다"라고 말하는데, 바로 이것이 덧니에 대한 인식의 개선을 대표하는 현상이다. 필자 역시 오사카와 도쿄에 각각 관광을 갈 때마다 예쁜 여성들보다 치과 간판이 더 많이 보여서 당황한 경험이 있다. 실제 수치상으로도 일본에는 치과가 많다. 2018년, 일본의 치과 병·의원 수는 약 6만 9000곳으로 동일 기간 한국 치과 병·의원 수 1만 7900여 곳보다 4배나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2배나 더 많은 일본의 인구를 감안하더라도 일본이 한국보다 인당 2배 가까이 많은 셈이다.


자신의 주변에 덧니를 가진 사람들이 많고 그것을 고치려는 사람들이 흔치 않았을 때는 굳이 치열을 교정하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겠지만, 국제화와 더불어 덧니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고른 치열이 ‘아름다움’의 척도로써 재조명받으며 치과업계 부흥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교정을 받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덧니로 인한 충치, 잇몸 질환 등의 발병률도 감소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2011년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선진국 중에서는 아직도 가장 많은 비율의 충치 환자 보유국이기는 하나, 점점 수치가 내려가는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성형외과의 범람으로 나타났듯이, 일본인들의 치열 문제는 치과의 범람을 낳은 것이다. 치과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교정치료를 받는 일본인들이 계속해서 증가한다면 근 시일 내에 ‘일본인=덧니’라는 공식은 잊힐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치의료계를 뒤흔드는 덧니는 어째서 한국인, 중국인보다 일본인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일까? 세계적인 인류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책 [총, 균, 쇠]에서 고대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간 이들이 일본을 세우고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그의 의견과 부합하게도 현대 일본인은 인류학적으로 한반도에서 도래한 야요이인과 일본 열도의 원주민인 죠몬인이 섞인 혼혈이라는 게 정설이다. 일본인들의 덧니도 이러한 기원적 특성에서 야기된 문제인데, 야요이인들의 외형은 현대 한국인들처럼 키와 턱이 컸고, 그에 맞는 커다란 치아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일본 토착민이던 죠몬인은 체구가 작고 턱도 좁고 작았으며 치아 또한 턱에 맞춰 작게 나는 인종이었다. 그런데 반도와 열도 사이의 문화적 교류가 발생하기 시작한 2400여 년 전부터 이 두 인 종이 활발하게 섞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일본인들에게는 죠몬인들의 작은 턱과 야요이인들의 큰 치아가 결합된 유전자가 생겨났고, 큰 치아를 감당할 공간이 부족하니 그것이 덧니로 발현되는 것이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그의 저서 '총, 균, 쇠'에서 "현대 일본인은 한민족(야요이계)의 후예"라며 "한반도에서 이주가 현대 일본인에게 정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라고 적었다.


이렇듯 일본인들만의 특징으로 보였던 ‘덧니’는 사실 수천 년 전부터 이루어졌던 한반도와 열도 간 활발한 교류의 상징인 것이었다. 역사상 서로 물고 뜯고 최악의 앙숙처럼 보이던 한, 일 양국이었지만 사실은 우리가 쌍둥이나 마찬가지였다는 뜻이다. 앞으로 그들의 덧니를 볼 때는 비웃음과 경멸의 눈빛이 아닌, 양국 간 사랑의 결실임을 알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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