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에서 수입으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20대 초중반 또래 친구들을 보면, 그들 수입의 대부분은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용돈이다. 용돈은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아도 부모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자동 발생하는 수익이다. 살아 숨쉬기만 해도 발생하는 기본 소득 개념이 바로 용돈이다. 혹자는 번식 욕구 충족에 대한 책임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20대는 신체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대개) 성숙한 '어른'이다. 부모가 언제까지나 자식의 뒷바라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동력을 포함한 가치생산이 없는 상태에서 자동으로 발생하는 수익은 우리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적어도 나는 절대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다. 용돈의 가치는 수혜자에게 있어서 길거리에서 주운 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별다른 노력 없이, 그저 용돈을 줄 여력이 되는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러니까 순전히 운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어떻게 임금, 사업소득 및 투자수익의 가치와 동등하게 바라볼 수 있겠는가?
가치 생산이 부재함에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수익은 사람을 게을리 만든다.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통장에 돈이 꽂힌다면 세상에 몇 명이나 무거운 몸을 일으켜 일터로 향하겠는가. 공원의 비둘기는 애써 돌 틈을 쑤셔가며 벌레를 잡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인간들이 먹이를 주거나 그들의 음식을 흘리기 때문이다. 인류가 갑자기 증발해버린다면 비둘기의 상당수는 곧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라고 다르랴. 내게 용돈을 주는 부모님이 언제 어떻게 사라져 버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생계의 90% 이상이 부모의 용돈으로 충당되는 사람이라면, 부모의 부재 이후 그의 삶은 어떻게 될까? 안 봐도 뻔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익숙한 존재들은 당연히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고는 한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낸 계획들은 필드에서 먹히지 않는다. 사냥 경험이 전무한 초보 사냥꾼이 책상에 앉아서 백날 사슴 잡을 궁리를 해도 매일 사냥을 나가는 베테랑 사냥꾼이 즉각 떠올린 계획보다 성공 확률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사람은 본디 움직이고 실천하면서 경험치를 쌓고, 그것을 바탕으로 계획을 짜든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는 건 결핍과 당장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다.
용돈을 끊어보아라.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서 어떤 알바든 뛰게 될 것이고, 취직을 위해 미친 듯이 집중하여 공부하게 될 것이다. 용돈을 끊어보아라. 아이처럼 찡찡되거나 금방 포기해버리는 짓거리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무거운 책임감과 강단, 지구력이 생긴다. 용돈을 끊어보아라. 살기 위해서라도 미뤄놓았던 계획들을 실천할 수밖에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