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의 문화적, 경제적 양상은 항상 일본을 뒤늦게 따라가는 모습을 보인다.
유행하는 패션 스타일, 유행하는 사상, TV 프로그램, 심지어는 고령화까지도
빠짐없이 일본의 노선을 그대로 뒤따르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일본을 연구하여
한국의 미래를 미리보기도 한다. 그들은 버블경제의 붕괴, 초식남의 성행, 인구 초고령화 시대 등
일본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회현상들을 분석하고 그것이 한국에서 일어날 것을 암시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대부분은 적중했고, 이를 통해 지금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
근시일 내에 한국에서도 일어날 것이라는 추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10년 전을 답습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민족은 유구한 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건국 이후 100년도
지나지 않은 신생국 가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건국 당시 나라의 뿌리가 되는 법과 사회제도
그리고 철학은 원하든 원치 않든 근대 조선을 지배했던 일본의 것을 그대로 따왔다.
법은 일본의 헌법을 모방하여 제정되었고, 경찰은 일제 순사를 바탕으로, 학교는 황국신민 학교를 바탕으로, 대학은 제국대학을 바탕으로, 군대는 일본 육사를 바탕으로 건립되어 나라를 지탱해온 것이 사실이다.
나는 절대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그 잔재에 대한 옹호 혹은, 한국의 근간에 대한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한민국의 건국 초기 역사적 배경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약소 신생국의 여건상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일들이 이뤄졌을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렇듯 건국 초기 대부분의 사회적 인프라를 일본에서 따왔고, 그것을 운영하는 사회 지도층들 또한 일제에 협력하던 무리가 다수였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일본의 흐름을 그대로 타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세워진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현재는 어떠한가. 취업난, 세대갈등, 성별 갈등, 초고령화, 경제 불황, 계층갈등, 부패한 정치 등등 온갖 사회적 문제와 국가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로 치달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은 십수 년 전 일본에서 먼저 일어났던 것들이다.
이 중에서도 서민들에게 가장 큰 절망감을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경제적인 문제인데, 서민 소득의 창구인 직장이 나노 수준으로 좁아지고 있고, 부동산은 정부가 손을 댈 때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옛 말과 같이 당장의 생계에 영향을 받는 서민들은 이 혼란의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안정적인 자산'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돈은 대표적인 안전 자산 중 하나인 부동산으로 흘러들어 간다. 아직까지 우리 역사에서
집 값이 떨어진 일은 전래가 없다. 그렇기에 그 관성으로 계속해서 오를 것이라고 보는 것은
어찌 보면 합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와 똑같은 생각으로 부동산에 투자했던 십수 년 전의 일본인들을 보자. 과연 그들은 지금 오른 집값과 함께 부자가 되어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수도인 도쿄 중심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부동산 가격이 처참하게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에 해당하는 도쿄 주변부의 20평대 아파트는 2000만 원대에 거래가 된다. 이마저도 사는 사람이 없어서 아파트에서도 공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부동산은 90년대만 하더라도 엄청난 명성을 떨치던 황금시장이었다. 오죽하면 도쿄의 땅을 다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도 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떠돌았을까. 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지방 부동산보다도 그 가치가 떨어져 있는 아이러니한 실정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1. 고령화
제일 큰 원인 중 하나는 고령화 문제이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령화 사회이다. 2019년 기준으로 일본의 노인인구수는 2018년보다 약 32만 명 증가하여 총인구의 28.4%인 3588만 명이 노인인구이고, 이 비율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계속된 경제 침체와 물가 상승 등으로 서민들의 생활여건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아이를 낳는 것을 포기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는데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계속 나이를 먹어가니 나라에서 책임져야 할(돈을 들여야 하는) 노인의 수는 계속 불어 가는 것이다. 초고령화 사회가 빚어내는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는 생산인구의 부족으로 인한 경제의 침체이다. 경제 침체와 저출산, 고령화가 끊임없는 악순환을 이뤄내는 것이다. 이로 인한 경제력의 감소는 부동산을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의 감소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잃는 데에 한몫을 했다.
2. 1인 가구의 번성
이러한 경제 침체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젊은 사람들은 야망 대신 안정을 선택했다. 힘들게 공부하고 스펙을 쌓아서 취업해봤자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는 결혼도 집도 택도 없으니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퇴근 후에는 게임 등의 여가생활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는 삶을 택한 것이다. 연애와 결혼, 자동차, 사치품 등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들을 모두 포기한 1인 가구 젊은이들에게 굳이 아파트가 필요할 이유가 없다. 그들의 몸뚱이 하나만 들어갈 정도의 원룸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인구 감소
경제 침체→결혼포기→고령화로 이어지는 서순의 마지막은 인구의 감소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9년 연속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인구 1억 2천의 일본은 1000년 뒤에 자연 소멸할 것으로 예측이 된다. 전쟁, 전염병으로 인한 국가의 멸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지구 상에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데 부동산 가격이 멀쩡할 수가 없다. 시장의 논리는 단순한데,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공급가가 오르고 찾는 사람이 없으면 공급가는 내려간다. 일본은 지방을 필두로 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그 여파로 지방에 빈 집들이 속출하고 있다.
위 세 가지 특성을 보면 무언가 남 일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사실 저 목록의 주체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다. 모두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전남, 경북, 강원 등의 농촌들을 보면 인구의 연령별 분포도가 심각하기 그지없다. 대부분이 노인인구이며 젊은이들은 군인 혹은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을 온 외국인 여성들이다. 이러한 추세라면 전국 시군구 중 46%는 인구의 감소로 자연 소멸한다. 그리고 그중 92%는 비수도권인 지방 도시들이 될 것이다.
각 지방의 중심 도시 격인 광역시들의 여건도 밝지만은 않다. 소멸이 되지 않을 뿐, 지속적인 인구 유출과 출산율의 감소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부산을 '노인과 바다'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전부 서울로 상경해버리니, 남은 것은 노인들과 바다밖에 없다는 뜻에서 나온 일종의 자학 개그이다. 한국 제2의 도시라는 타이틀은 이제 부산이 아닌 서울과 가까운 인천이나 경기 남부의 대도시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만약 한국이 저출산과 지방 기피현상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부동산의 가격은 어떻게 될까? 아마 일본처럼 서울과 경기, 인천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지방 부동산은 폭락에 폭락을 거듭할 것이다. 지금 비정상적으로 오르고 있는 지방의 부동산 가격은 사실상 '패닉 바잉'이다. 즉, 이성적 판단을 거치지 않고 경제 침체의 불안과 공포 속에 내린 비이성적 판단이 일으킨 단기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당장은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부동산의 가격은 특정 분기점을 시작으로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부동산에 몰려 있는 자산을 다른 곳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최근의 불고 있는 주식 열풍도 투기성이 짙기 때문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기는 하지만 자산의 분배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는 바람직하다. 주식뿐만 아니라 사업과 저작권 등 투자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이 지속된다면 다가올 부동산 폭락 사태에서도 개인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