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책갈피_ 쇼코의 미소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고발

by 진실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_쇼코의 미소 9페이지에서


은영 작가의 소설은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대학 동기에게 추천을 받은 동시에 친구가 이 책을 이미 가지고 있어,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읽기 전에 문득 친구가 이 책을 읽다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마침 나도, 서울대입구 한적한 카페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눈물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혼자 있는 손님이 훌쩍이는 걸 어색하게 바라볼 주인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해 슬픈 것을 참았다.



10785953.jpg?type=m3&udate=20191031 쇼코의 미소

책에 대한 감상을 하기 전에 짤막하게 오늘 내가 걸어 온 길에 본 폐업 중인 책방에 대해서 쓰고 싶다.

오랜 시간, 어쩌면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긴 시간을 작은 서점 안에서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좋아하는 카페를 갈 때면 늘 지나가는 작은 서점이었는데, 오늘 폐업 문구가 걸려있었다.

무협 판타지 소설과 만화책이 빼곡히 쌓여 있던 공간에는 이제 빈 선반들만 이가 빠진 늙은이처럼 남겨졌다.

이 서점이 폐업을 하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나는 도서정가제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본다.

도서정가제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시행된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구매해야만 하는 수험서, 잘 팔리는 베스트 셀러, 자본이 있는 대형서점들을 위한 도서정가제. 가격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은 현 시대에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배우지 않았나? 가격은 소비자들이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책 같은 경우는 독점을 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 규제를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격이 일정해지면서 사람들은 더이상 작은 서점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무조건적인 10% 할인율이 박혀있는, 구매하기 편한 대형서점에서 주문하게 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독립 서점들이 문을 닫게 될까.




최은영 작가는 은밀한 작가다.

하고픈 말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을 때 드는 느낌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딱 이렇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

그런데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 보면 물증이 보인다.


저렇게 제멋대로고 충동적이고 마음 여린 이상한 사람. 이상한 나의 할아버지. 저 엉망진창인 사람. 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할아버지가 씌워준 우산을 쓰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쇼코의 미소 40쪽에서


쇼코의 미소에는 두 할아버지가 나온다.

소유의 할아버지와 쇼코의 할아버지. 소유와 쇼코는 교환학생 때 만난 사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본으로 돌아간 쇼코와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 받았다. 특히 쇼코의 편지는 소유의 할아버지에게 단순히 편지 이상의 의미를 주었다.

소유는 쇼코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쇼코의 할아버지는 아픈 쇼코에게 기생하는 듯 보였고,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시골마을에 묶여사는 쇼코보다는 자신이 더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평면적인 모습만 보고서는 우리가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없다. 일면만 보고서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지 우리는 쇼코의 미소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젊어서 내 인생의 장례식은 많지 않았다. 나는 영면에 든 모습을 본 게 외할아버지가 처음이었는데, 지금은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외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상냥하고, 손자 손녀 차별없이 늘 두팔벌려 안아주신 분이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늘 식구들로 북적이던 나의 고향은 텅 빈 마을로 바뀌었다. 그만큼 할아버지의 세상은 컸다. 할아버지는 사고로 기별없이 떠나셨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마지막 날이 할아버지가 나에대한 사랑을 보여주신 동시에 내가 할아버지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날이라는 것이다. 기억에도 흐릿한 그 날은 나와 할아버지가 크게 싸운 날. 새벽에 시위한답시고 그 어두운 시골길 밖으로 나섰던 날. 그 어두운 길을 할아버지가 날 찾아다니느라 정신 없으셨던 날. 온 친척 식구가 다 큰 고등학생을 찾아 나선 날. 할아버지가 난생처음 내 앞에서 우신 날이었다. 그리고 난 일년 넘게 할아버지를 보러가지 않았는데, 그렇게 갑자기 떠나셨다. 단 한 번 꿈에 나오신 후로 다시는 내 꿈에 나오시지도 않고 내 기억속에도 출연하지 않으신다. 내게 남은 할아버지와의 기억은 싸운 날, 그날 뿐이다. 그게 할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인가보다. 외할아버지는 내게 소유의 할아버지이기도, 쇼코의 할아버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셔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쇼코의 미소_ 신짜오, 신짜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본에게 분노한다. 일제강점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한국도 어느 나라에겐 상처를 준 나라이다. 신짜오, 신짜오는 그런 우리에게 다시한 번 보여준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아 분노한다면, 사과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핍박 받은 기억이 너무 커서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어요."(이 책 78쪽)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 마을엔 한국군 증오비가 있다고 한다.


한국군 증오비 관련 자료

늘 상처는 받은 사람만이 간직하고 기억한다.


"네가 나에게 아무리 못되게 해도 난 상관 안 해. 세상 어디에도 널 미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이런 식으로라도 좋으니 너와 같은 공간에서 지내고 싶어. 일주일 뒤에 너를 여기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걷다가도 눈물이 나. 이제 더이상 너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는 없겠지. 한지, 제발 이렇게 내 인생에서 사라지지 마."
#쇼코의 미소_ 한지와 영주


얼마 전에 읽은 『대도시의 사랑법』은 노골적으로 동성 간에 연애를 다루었다. 그러나 최은영은 다르다. 한지와 영주. 마지막에 다다를 때까지 그토록 친했던 한지와 영주가 왜 갑자기 싸우고 말도 하지 않게 되었는지 끝내 작가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다. 혹시 당신도 사랑은 이성 간에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당연하게 체구도 크고 검은 피부를 가지고 사교성이 좋은 의사 한지가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래서 그들이 서로를 갈망하고 있음에도 마음을 표현하지 않음에 답답함을 느끼는지.

언어도 잘 통하지 않지만, 그들은 어느새 서로의 일과를 나누면서 유대감을 형성했다. 먼 타국에서 만난 사이. 언젠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야 되는 관계에서도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사랑은 현실에 굴복하고 말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여자는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 노인은 얼마나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렸을까. 여자는 노인들을 볼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쇼코의 미소_미카엘라


쇼코의 미소에 수록된 「미카엘라」는 세월호 사건을 얘기한다. 세월호 참사는_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전체 탑승자 476명)이 사망·실종된 대형 참사다_ 뉴스에서 아직도 간간히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유명한 일본 만화 원피스에 나온 유명한 대사가 있다.

"사람이 언제 죽는 다고 생각하나."

"심장이 총알에 뚫렸을 때?" "아니"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아니!"

"맹독 버섯스프를 마셨을 때?" "아니!!"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다."

왜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잊지 말자고 외칠까? 일본군 성노예였던 할머니들의 아픔과 고통을 잊지 말자고 외칠까?

누구는 지겨워졌다고 말하는 참사.

감히 우리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옆에서 함께 응원을 매일 할 수 없더라도 기억해주는 것.

문학으로 재탄생해 끊임없이 기억해내는 것.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그것이면 된다.




작가는 은밀하면서도 직설적이다.

우리를 혼내면서도 위로해준다.

또한 인간의 양면성을 잘 표현해서, 독자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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