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도 아닌 끄적,

아닌 밤 중에 벌컥.

by 김잡가

아닌 밤 중에 문득, 마실 액체류가 없단 걸 깨달았다.

생수도 17차도 이런저런 밍밍한 마실거리를 늦은 오후쯤 다 해치운 터라

밤 귀가 시 사 온다는 걸 깜빡한 채,

밤 11시가 다 돼, 굳이 카페에 들러 카푸치노라 적힌 곳을 간절히 바라보다

자몽 허니 블랙티를 사들고 나왔을 뿐, 생수는 잊었다.

(커피가 간절했으나 조금은 성실한(?) 밤을 간구하며)


무튼, 몇 시간쯤 마실 식수 대용으로 물을 끓여 티백이라도 우려 둘까 하여 전기포트에 물을 가득 채우다 뜬금,

어릴 적 노란 양은 주전자 가득 옥수수차나 보리차를 끓여놓고 마셨던 기억이 났다.


항상 일을 하셨던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학창 시절 내내 거의 해지기 전에는 쉽게 볼 수 없는 비싼 엄마였다. 엄마에 대한 갈증과 그리움, 애증은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홀로 끙끙 앓던 짙은 감정들의 굵은 줄기 중 하나였다. 그런 엄마, 항상 바쁘고 고픈 엄마가 한가득 끓여 놓고 나가신 옥수수차와 보리차를 혼나더라도 주전자 째로 들고 마시는 그 순간이, 어찌나 맛나던지.

충족되지 않던 애정과 당시의 욕구에 대한 나름의 욕망을 해소라도 하듯 조그만 아이가 버겁게 두 손으로 붙들고서 벌컥벌컥 마셔대던 찬라의 충만함,

그 야릇한 감정이 아닌 밤 중에 벌컥, 생각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