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1’ 이 ‘하나’ 가 아닌 한 ‘사람’일 때,
숫자가 수로만 읽히지 않는다.
아니, ‘아직은’ 저 수가 나와 무관하다고 믿거나 바라면서
안도의 ‘눈’으로 읽고 지나쳐버리는 건 아닌지 자기 검열도 해본다.
고난과 불행의 당사자가 아닐 때의 섣부른 이성을, 이제는, 조금은 더 조심하게 된다.
준비되지 않은 우연의 순간들에 어찌 됐건 그것들과 맞닥뜨려 끌어안고 버틸 수밖에 없었던
생의 잔인함들로 인한 통증은 여전히 은밀한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 근처를 배회하는 아픔을, 그게 순간이 아닌 생활로
아픔과 공존하며 생계와 자존을 지켜내는 게 얼마나 많은 육신과 영혼의 에너지를 갉아먹는지
당연했던 일상에서의 몸과 마음의 자유의 부재가 생을 얼마나 피폐하고 비참하게 하는지
본인과 곁을 지키던 소중한 누군가에게마저 치명적인 상처와 독을 발산하며
무너지는 걸 겪다 보니
타인의 아픔과 죽음 앞에 ‘함부로’ 이성적일 수 없다.
그래서,
죽어가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숫자’로 거듭 업데이트돼 화면에 띄워진 ‘아직은’
타인의 소식을 듣고 보는 게 ‘감정적’으로 힘들다.
어찌 됐든 이 상황으로 인해 나의 일상에도 조금씩 변수가 생기고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저 숫자들이 수로만 읽히지 않아 마음이 무겁다.
이 재난과 고난마저 자신과 특정 집단의 정치적 경제적인 유리를 계산하고 기획하는 이들이
참기 힘들다.
‘사람’들의 죽음과 아픔들을 백그라운드로 깔아 둔 채
갖은 정치적 온-오프라인 ‘쇼’를 뉴스와 함께 접하는 순간들은
그저 국민의 ‘하나’일뿐인 나에겐 이중삼중의 고통이다.
(이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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