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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선 Jul 08. 2019

목소리를 잃어버린 디자이너의 말하기

아픈 몸을 기꺼이 살아 낸다는 것




차마 글로 적지 못한
'책을 읽는 디자이너만이 손에 넣는 것'


"언니, 괜찮겠어?"

"나 이제 괜찮아. 정말이야."

"사람들 앞에서 자기 얘기를 한다는 거, 나는 너무 무서운데..."


동생이 새삼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고 나는 애써 의연한 척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스피치를 하기 위한 발표 자료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한 달에 한 번 개최하는 대규모 독서 모임이 불과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고작 이런 얘기로는 안 될 거라 생각하고 지원했는데 덜컥 스피커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얼떨떨한 일주일을 보낸 참이었다.


예전에 쓴 칼럼 [ 책을 읽는 디자이너만이 손에 넣는 것]에는 차마 글로 적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첫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 책 속으로 절박하게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용기 내어 다시 디자인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를 담았다. 그렇지만 사실은 솔직하게 글로 쓰지 못하고 등 뒤로 숨긴 절반의 이야기가 더 있었다.


남은 절반에 대해 언젠가는 말해야겠다 다짐하고 있었지만 이 시점에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 앞에서 말하리라 예상하지는 못했다. 속으로만 삼키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낸다는 것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고, 두려웠지만 어쩌면 이번 일을 통해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고장 난 몸, 고장 난 삶


아래는 스피치를 위해 준비한 스크립트를 조금 다듬은 글이다.


저는 디자이너입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하고 싶은 게 없어 고민이라는 사람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분명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언제나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디자이너로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 저에게는 두 번의 커다란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어느 날, 감기에 심하게 걸려 기침과 고열이 심하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감기는 나았지만 이상하게도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리를 크게 낼 수 없고 심하게 떨리면서 소리가 중간중간 뚝뚝 끊겼습니다. 억지로 큰소리를 내려고 하면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쉬기가 힘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큰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연축성 발성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직까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치병이라고 했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첫 번째 전환점입니다.

당시에는 대학 졸업반이었기 때문에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병에 걸린 초기에는 조용한 실내에서 작은 소리로 말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서 다행히 처음 지원한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지만 미술학원을 다닐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 때부터 회사를 다니면서 입시 준비를 해 23살에 대학을 갔습니다. 27살에 졸업해 디자이너가 되었으니 10년 만에 꿈을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는 디자이너였습니다. 디자이너는 동료 디자이너뿐 아니라 클라이언트, 개발자, 기획자 등 여러 사람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합니다. 리더급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너무나 중요한 능력입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큰 병원도 가보고, 한의원도 가보고, 보컬리스트를 위한 발성 학원과 아나운서를 위한 스피치 학원도 가봤습니다. 목에 좋다는 음식들도 이것저것 먹어보고 정말 안 해본 것이 없었지만 목소리는 그대로였습니다.

5년 차로 넘어가면서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하는 시점이 되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습니다. 일을 하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눈물이 나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목소리는 더 안 좋아져서 아예 소리 자체를 낼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저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가족들과도 대화하지 않고 스스로를 방에 가뒀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자존심이 강하고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성격이었는데,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아픈 몸을 기꺼이 살아 낸다는 것


그렇게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커다란 종이에 마인드맵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싶었습니다. 디자인과 책이라는 키워드가 중심이 되었는데 책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럼프에 빠진 나에게 어떤 형태로든 분명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해 가을에 서울 출판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두 번째 전환점입니다.

출판 학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책을 읽는 사람들만 모여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동안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한다는 자체로 신선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출판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제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그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일까. 내 핸디캡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디자이너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책과 함께 진지하게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저는 제 일과 상황에 대해 너무나 막연하고 모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제 일에 대해 나름대로 정의를 해봤습니다. 디자인이란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이자 행위입니다. 협업은 음성/문자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루어지고, 결과물은 사용자와 생산자를 연결해주는 시각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디자인은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해 커뮤니케이션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중에 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은 협업을 위한 음성 커뮤니케이션이었죠.

여러분은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커뮤니케이션이란 단지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잘 듣는 것, 맥락을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내용을 정리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전달하는 것, 메시지의 핵심을 먼저 말하는 것, 표정과 태도에 진정성을 드러내는 것 등 많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기술이자 태도입니다. 저는 제가 부족한 부분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다른 요소'에 더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말하기가 불편해지면서 오히려 저의 '일'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발성장애 진단을 받고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예전처럼 두렵거나 슬프거나 외롭지 않습니다. 핸디캡을 부정하던 시기에는 세상 모든 것이 불행하기만 했는데 핸디캡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니 오히려 목소리가 전보다 좋아졌습니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일하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통과하며 제가 배운 것을 두 가지로 정리해본다면 이렇습니다.

1. 핸디캡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끌어안아 함께 걸어가기
2.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제가 상실로부터 배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해온 '테마가 있는 독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그냥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책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은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읽고 생각하고 체화해서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책은 조금 더 냉정하게 자신의 상황을 둘러보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아나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지금 행복한 디자이너입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제가 지난 10년 동안 배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툰 스피치를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아픔을 드러내는 용기


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힘들다는 내색을 하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약점을 드러내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20대를 다 보낼 때까지도 언제나 강한 척, 덤덤한 척, 무심한 척하며 살았다. 지금처럼 사적인 감정을 글로 써서 온라인에 공개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약점을 드러내는 일은 예전 같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서서히 내면으로부터 나를 변화시켜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8할이 책이었다.


때때로 어떤 책은 '써 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 감히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준 책  <아픈 몸을 살다>가 바로 그런 책이다.



저자 아서 프랭크는 나처럼 '어느 날 갑자기 몸이 고장 난 사람'이다. 39살에 심장마비, 40살에 암에 걸렸다. 학자인 그는 자신의 경험을 목격자의 시선으로 세심하게 진술한다. 아픈 사람들은 저마다의 개개인성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아서 프랭크의 말이 가슴에 꽂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질병은 '위험한 기회'다. 아픔은 위험하지만 한편으로는 아프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기회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질병의 이상적인 결말이란 무엇일까? 만약에 '회복'하는 것만이 해피엔딩으로 여겨진다면 만성 질병을 앓거나 죽음으로 결말나는 사람의 경험에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 질병이 제공하는 기회를 붙잡으려면 질병을 적극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 생각하고 말하고 씀으로써 우리는 개인들이자 한 사회로서 질병을 받아들일 수 있다. 또 그때야 질병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님을 배울 수 있다.

- 나는 내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독자들은 내 이야기에 자기 삶을 더할 수 있으며 각자의 상황에 맞게 내 글을 고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쳐 쓰기'가 모여 우리 사이의 대화가 된다.

<아픈 몸을 살다> p.10, p.12


스피치에 도전한 것은 아서 프랭크의 이야기를 고쳐 쓰며 적극적으로 아픔을 살아내려는 시도였다.


한창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던 시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나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전해 듣는다면 분명 크게 충격을 받고 두려워할 것이다. 아서 프랭크가 '젊은 아서 프랭크'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를 빌려 어린 나에게 담담히 전해주고 싶다.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당신에게는 이제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된 것들을 애도할 자격이 있지만, 슬퍼만 하다가 당신이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느끼는 감각이 흐려져선 안 돼요. 당신은 위험한 기회에 올라탄 겁니다. 운명을 저주하지 말길. 다만 당신 앞에서 열리는 가능성을 보길 바랍니다.

<아픈 몸을 살다> p.17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이 책을 만났다면 지금처럼 용기 낼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픈 사람이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자기 몸과 헤어지기 위해서는 충분히 애도하며 상실을 통과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회를 붙잡으려면 아픔을 완전히 경험한 다음 떠나보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가야 한다."

<아픈 몸을 살다> p.10


나는 그 시간을 통과했고, 지금 시점에 이 책을 만나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믿는다.






참고 도서 : 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연관 영상 : https://youtu.be/v7zOAfiA3Ko


연관 글 : https://brunch.co.kr/@jin-lab/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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