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쓴 이별을 하고 책과 다시 재회하다.
대개 새해가 시작되면 지난 과오를 리셋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이 확고해진다.
적어도 1월 한 달만큼은 그렇게 야심차게 세운 계획을 지키려 애쓰며 보낸다.
하지만 작년의 1월을,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넷플릭스 시리즈와 유튜브 영상을 보며 보냈다. 드라마가 여러 화로 이어지는 구조일수록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중간에 멈추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해가 훌쩍 지고, 어떤 날은 새벽이 지나 있기도 했다.
내 의지로는 도무지 끊을 수가 없어 이런 시간이 자꾸만 반복되었고, 하루의 상당 부분이 침대 위에서 흘러갔다.
누워서 영상을 보다 보면 어느새 밥때가 되었고, 점심을 먹은 뒤 다시 침대에 누워 이어서 보곤 했다. 그 사이 집안일을 잠깐 처리하고 아이들의 저녁을 챙겨주면 자연스럽게 밤이 되었고, 다시 휴대폰을 집어드는 일이 다반사였다.
폐인이 따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들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중독이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지금 멈추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하루를 의미 있게 채우려 애써 왔던 내가, 마치 휴대폰으로 벽돌 쌓기나 테트리스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처럼 변해 있다니.... 이런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뭐, 굳이 이유를 붙여 보자면.. 큰아이의 입시를 치른 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돌아보면 제대로 쉬는 법을 알지 못한 채 멈춰 있었던 것 같다.
잘못 온 길에서 벗어나려면 뒤돌아서 그 반대편 방향으로 가면 된다.
영상 시청의 반대는 무엇인가? 바로 독서이다. 흔히 우리들은 “TV 좀 그만 보고 책 좀 읽어라”라는 말을 하듯, 독서가 그 정반대의 길이었고 나에게도 그 정도의 단순한 전환이 필요해 보였다.
오랜만에 서점에 갔다. 서점 문을 열자 새 책들이 머금고 있는 종이 냄새가 느껴졌다. 천천히 신간과 베스트셀러를 둘러보며 몇 권을 구입했고, 집에 사두기만 하고 읽지 못했던 책들도 다시 꺼냈다. 그렇게 책들을 머리맡에 잔뜩 쌓아놓고 순서 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이 점점 산처럼 쌓이자 쉬고 잠들어야 할 침실의 정체성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정리를 미룰 수 없는 시점이었다. 서재로 가 빈 공간이 없나 한 바퀴 둘러보았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니, 분명 읽은 책들인데 제목을 봐도 내용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기분이었다. 책을 열심히 읽으면 뭐하나, 머리속에 남는게 하나도 없는데....
그래서 독서기록이 필요한 건가 잠시 자문하며 반성하다가, 늘 그렇듯 요즘 내리는 한결같은 결론이자 나의 변명, 바로 '두뇌의 노화' 앞에서 또 한 번 현타를 실감했다.
나는 원래 읽고 쓰는 일을 좋아했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책 전집을 사주었고, 고모는 고전을 낱권으로 골라 건네주었다. 그 덕에 책을 읽으며 상상하는 시간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묘사된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멋대로 바꾸고 결말을 내 식대로 각색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 여름방학마다 열리던 독서교실에 참여해 읽고 쓰는 연습을 계속했고, 학교 운문부에 들어가 시를 쓰기도 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산문보다는 운문에 더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날 운문부 선생님이 우리 반으로 찾아와 나를 부르셨다.
"**야, 이번에 네가 쓴 이 시 말이야. 이거 온전히 네 힘으로 쓴 거 맞지? 대회에 출품하려는데, 확인을 하고 내야 할 것 같아서."
그 순간, 얼마나 기분이 좋고 뿌듯했는지 모른다. 선생님이 나를 찾아오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는데, 내가 쓴 시가 대회에 출품된다니.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그냥 쓰는 일에 대해, 이유 없는 자신감과 조금의 긍지를 갖게 되었다.
대학에 가서는 신문사 기자로 기사를 썼고, 회사에 들어가서는 홍보팀에서 보도자료를 작성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쓰기’는 늘 나와 함께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쌓인 감각은 의외의 곳에서도 쓰였다. 고등학교 시절 합창대회에서 사회를 보는 친구의 멘트를 작성해주기도 했고, 친한 친구의 부탁으로 라디오 사연을 대신 써주다 방송에 채택되기도 했고, 지인의 자기소개서를 도와 입사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 다시 읽고 쓰기 시작한 목적은 사실 학창시절처럼 그리 아름답지 않다. 뭐 따지고 보면 일종의 재활에 가깝다. 영상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뒤처진 문해력과 둔해진 두뇌를 다시 쓰기 위해서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문장에서 멈춰 섰으며 어떤 방식으로 생각을 정리해 왔는지가 떠올랐다. 잊고 지냈던 예전의 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읽고 쓰는 일은 더 똑똑해지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다시, 책을 펼치고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써보기로 했다.
산처럼 쌓인 책들 사이에서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다행히 다시 쓰고 싶다는 마음만은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마음 하나면 다시 시작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쓸 것이 너무나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