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생각
큰 애는 정기공연 준비로 자취방으로 갔고,
작은 애는 학교 해외체험학습으로 오늘 싱가포르로 떠났다.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집 안이 유난히 넓었다.
소리가 빠져나간 공간처럼, 벽과 바닥이 헛헛했다.
혼자 덩그러니 집에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또
가슴 저편에서 찬바람 같은 것이 스며 올라왔다.
춥다기보다는, 시리다는 말이 더 맞다.
아이들 방 두 개는 불이 꺼진 채 그대로였다.
침대 위에 흐트러진 이불, 책상 위에 남은 연필 자국,
어제까지 숨 쉬던 것들이!오늘은 조용히 멈춰 서 있었다.
이제 저 방들이 이렇게 비어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 거라는 생각이 문득 현실처럼 다가왔다.
어스름해질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
혼자 불을 켜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하루를 접는 날들이 앞으로 늘어나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아빠가 떠올랐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늘 전화로 물으시던 말.
“이번엔 대구 내려오니?”
그 질문이 이상하게도 늘 귀찮게 느껴졌다.
나는 애써 바쁘다는 말을 골라 시큰둥하다 못해 차갑게 대답했다.
“주말에 바쁜 일 있어요.”
전화를 끊고 나면 왜 다 큰 자식을 자꾸 찾으시나
속으로 투덜대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질문이 안부가 아니라 외로움의 다른 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오늘 집을 나서는 큰 애에게 무심한 척 물었다.
“오늘 집에 들어오니?”
아이의 대답은 짧고 퉁명스러웠다.
“아, 왜 자꾸 물어봐. 내가 알아서 해.”
그 말에 순간 마음이 움찔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아빠의 전화 너머에서
비슷한 말투로 대답하던 나 자신이 겹쳐 보였다.
아…그때 우리 아빠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늘 복작복작하던 집에서 아이들 발소리가 하나둘 사라지고, "아빠, 아빠” 부르던 시간이 추억으로만 남아버렸을 때...
괜히 전화를 걸어 별것 아닌 질문을 던지며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슬며시 내비치신 거구나...
불이 꺼진 아이들 방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아빠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