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팔

by 일상의 탐험가

오른쪽 팔에 처음 불편함을 느낀 것은 3년 전쯤이었다.

처음에는 잠을 잘못 자서 담이 걸린 줄 알았고, 누워서 책을 읽는 자세가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여겼다.

금방 나아질 거라 생각했던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건강염려증이 있는 나는 불안에 등 떠밀리듯 분당에 있는 한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를 찍고 진료를 받고 나서야, 내 오른쪽 어깨에 거대석회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큰 석회도 아니고 거대석회라니. 그 말이 어딘지 모르게 우스워서 실없이 웃음부터 나왔다.

다행히 그때의 통증은 일자목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게 하더니 가동 범위도 괜찮다며 그냥 돌아가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의사는 덧붙였다. 그 석회는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으며, 지금처럼 아무 일 없이 지낼 수도 있다고. 그러나 만약 문제가 된다면, 그 통증은 견딜 수 없을 거라는 말도 함께였다. 예언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그리고 3년 동안, 나는 그 말을 거의 잊고 지냈다. 역시 나는 운이 좋아서 이런 일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동안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늘 습관처럼 스스로에게 말해왔다. 불운이나 고통 같은 것은 늘 나를 비켜간다고, 나에게는 운이 나쁜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잠잠한 거대석회를 두고서도, 그런 믿음이 또 한 번 증명된 셈이라 여겼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아무 일도 없던 평범한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오른팔이 조금 불편했다.

잠버릇 때문이겠거니 하며 스트레칭을 했다. 하지만 옷을 입으려고 팔을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났다. 머리를 빗으려 해도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분당의 그 의사가 했던 예언 같은 말이 이제 현실로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오른손잡이인 내게 오른쪽 팔의 통증은 혼자서 하던 일들을 하나씩 멈추게 만들었다.

옷을 갈아입는 일도, 물건을 들어 올리는 일도, 운전할 때 유턴을 하는 일도, 머리를 빗는 일조차 이전처럼 가볍게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사소한 일들 앞에서 유난히 조심스러워졌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혹시 다시 통증이 찾아오지 않을까 먼저 걱정했고, 일상은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췄다. 지금도 오른팔을 들거나 사용하기 전에 잠시 망설이게 된다.

그렇게 나는, 아픈 오른팔로 불편해진 나를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었다.


통증은 단순히 아픈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일이었다. 나이가 들며, 아무 생각 없이 누려왔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혼자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왔던 시간들, 건강은 늘 내 편일 거라고 생각했던 오만함까지 함께였다. 나는 스스로를 늘 운이 좋은 사람, 쉽게 늙지 않고 쉽게 아프지 않을 사람으로 여겨왔던 것 같다.


그러나 내 삶에는 ‘나는 늘 운이 좋다’는 막연한 확신을 예고 없이 무너뜨리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잠잠했던 거대석회 역시, 아무 일 없을 거라 믿었던 내 태도를 비웃듯 다시 통증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왜 여전히 내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당의 그 의사가 했던 말은 결국 현실이 되었고, 나는 이제 한쪽 팔의 불편함을 감안한 채 하루를 시작한다.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니 급한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예전보다 한 박자 늦게 움직인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느긋해졌다면 좋을 걸까?


오늘도 오른팔을 아끼고, 왼팔을 더 쓰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거대석회가 큰 석회가 되었다가, 다시 작아졌다가, 그러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별다른 근거는 없지만,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며 하루를 넘긴다.
나는 늘, 운이 좋은 편이라고 믿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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