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6번 칸>을 보고
가슴 저릿한 영화였다. 영화 속엔 위태로움과 아름다움이 공존했다. 시대와 배경은 내가 살아가는 그것과 다르지만 감정은 비슷했다. 자신보다 멋진 연인이었던 이리나의 삶의 일부가 되고 싶었던 라우라. 하지만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옅어진다. 함께 떠나기로 했던 여행이었으나 결국 그녀는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열차 안에서 낯선 남자인 료하를 만난다.
원래 인생은 외롭잖아요.
삶에 있어 사랑을 기대하지 않으면 외로움도 견딜 수 있게 되는걸까? 사람이 사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연적인 외로움을 잠시나마 잊어보고자일까? 이리나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함께 했던 추억이 담긴 비디오마저 잃어버리면서 함께했던 그 시간이 송두리째 날아간다. 연락이 닿지 않던 공중전화 안에서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며, 잘려져 나간 가슴 한 켠을 다시 꿰매기 위해 지금 당장 자신을 위해주는 료하와의 시간을 허락한다.
내가 본 걸로만 판단할 수 없죠. “뭘 봤는데요?”
그녀는 그를 점점 알아가고, 그도 그녀를 점점 알아간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이란 과연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일까? 다만 중요한 것은 내가 본 것만으로 그 사람을 단정짓지 않는 것일테다. 내가 본 것 너머의 의외성과 가능성을 인지하면서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
암각화를 위하여!
라우라는 암각화 하나를 보기 위하여 핀란드에서 기나긴 여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가능하다고 알고 있었던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같이 오기로 했던 이리나가 있었더라면 가능할지도 모르던 여행이었겠지만. 그런데 암각화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료하는 자신보다도 더 끈질기게 그 여행을 가능하게 만든다. 누구에게는 고작 돌멩이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소중한 것임을 알기에. “저게 다에요?”라고 묻지만, 그것이 전부다. 자신이 들인 노력에 비해 그 암각화가 료하 자신에게 별볼일없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라우라에겐 소중한 것임을 알기에 그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잠자코 기다린다.
하이스타 비투!
암각화 여행을 마치고, 료하는 라우라에게 “사랑해”라는 쪽지를 남긴다. 사랑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그였다. 사실 그 단어의 의미는 사랑이 아닌 욕이었기에 그 쪽지가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와 그녀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시작의 설렘은 어느 새 그치고 라우라와 이리나가 그랬던 것처럼 멀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로는 서로를 향해 다가갔고, 마음에 새길 소중한 시간들을 함께 했다. 후의 모습이 어떠하든, 그 시간만으로 사랑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결국, 언젠가 죽게될지라도, 서로가 서로만을 바라보고 서로를 위했던 시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서로가 기억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