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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도 처음이라 Dec 25. 2016

겨울 제주도 여행 (feat. 리코GR)

여유가 있는 그 곳, 종달리

제주도 여행객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단체관광, 맛집 탐방, 그냥 휴식. 공항에서 옷차림만 봐도 구분이 가능하지 않을까. 아웃도어를 입고 모여있는 사람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커플 또는 친구들로 보이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여행을 간다기보다 집에 내려가는 듯한 편안한 복장의 1명 또는 최대 2명의 사람들.


나는 3번째 여행객에 속한다.  이게 여행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빈둥거렸으며 심지어 식사도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만 갔으니까. 그럴 거면 굳이 제주도 갈필요 없이 집에서 쉬면 되지 않느냐고 혹자는 말할 수 있지만, 도시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의 집은 겨울 제주도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여유로움과는 참 거리가 멀다.


사실 제주도는 겨울이 비수기라고 한다. 특히 내가 여행을 간 12월 중순은 방학도, 크리스마스도, 직장인 연말 휴가 시즌도 아니라 더더욱 비수기라고 했다. 공항에 내렸을 때의 느낌은 비수기 맞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단다.  


북적이는 공항을 지나 목적지 종달리로 향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은 종달리는 아무것도 없는 제주도 시골마을이다. 성산일출봉과 우도항에 가깝긴 하지만 아직은 상업화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조용한 마을이라 이번 여행의 목적인 빈둥거리기에 딱인 곳이었다. 깔끔함과 조식으로 유명한 숙소 역시 딱 종달리의 그 평화로움과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


 


숙소에서 멀지 않았던 식당 역시 관광지의 식당처럼 줄을 서고 붐비고 정신없는 그런 곳이라기보다, 제주도 바다를 창문 너머로 보며 조용히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숲 속을 거닐며 누군가와 느긋하게 이야기를 해본 게 얼마만인지.



제주도는 따뜻하다는 편견이 무색하게 산책로 곳곳에 아직 녹지 않은 채 남아있던 깨끗하고 새하얀 눈들이 겨울 여행의 운치를 더 한다.



한 가지 이번 여행에서 놀랬던 점이 있는데, 이제껏 내가 도시에서 먹어왔던 해물찜과 아귀찜이 같은 가격임에도 엄청 부실했었다는 점. 



신선한 해산물이 접시 가득 들어있는 해물찜과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살코기들로 풍성했던 아귀찜은 여행의 행복과 함께 이제껏 도시에서 먹던 음식들에 대한 씁쓸함마저 느끼게 했다. 


이번 여행에서 한건 사실 이게 전부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번 여행의 목적은 '제주도 시골에서 빈둥거리' 였기 때문에 딱히 어딘가를 돌아다니지도 않았고 찾아다니지도 않았다. 여행 내내 봤던 가장 화려한 광경은 숙소 정원에서 은은하게 빛나던 크리스마스 장식과 마을의 가로등 정도랄까.

 


그럼 숙소 방에서만 뒹굴었나? 그건 아니다. 여기 숙소를 선택했던 또 다른 이유인 작은 카페에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며 신선놀음을 했으니까. 이런 제주 시골마을에서 맛있는 핸드 드립과 치즈케익을 맛볼 수 있다니. 비밀이지만, 가끔 이 카페는 밤에 그날 구운 소량의 맛있는 빵을 파는 심야 빵집이 되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의 간섭 없이, 사람들에 치이는 번잡스러움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조용히 여유를 즐길 수 있었던, 밤이 되면 간혹 들리는 시골 동네 개소리와 숙소 정원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던 이번 겨울 제주도 여행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영화 제목처럼 잊고 살았던 여유를 되찾게 해주었다. 



덧.

빈둥거리며 놀다가 잠든 게으른 여행객이 받기에 미안할 정도로 정성스럽게 담겨 나왔던 전복죽 조식은 실제 숙소 소개 홈페이지에 있던 사진 그대로였다. 아침에 비몽사몽 너무 감탄하며 먹기 바빠 사진 찍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아래 사진은 숙소 홈페이지 소개 사진)

사진찍는 것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던 정갈한 조식


방문했던 곳

- 동촌하우스

- 레드선셋

- 각지불

- 절물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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