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 아직 쌀쌀했던 지난 속초여행. 서울은 이미 벚꽃이 지고 없었지만 속초 길가엔 수줍은 아가씨처럼 아직 떠나기 싫다는 듯이 치맛자락을 하늘거리며 우리를 맞이하던 그때. 덜고 말고 더도 말고 딱 기분 좋게 싸늘하던 바람과 설레게 따사롭던 봄기운으로 가득하던 그때. 그때의 여행은 우리 넷 중 한 명의 멤버가 빠져서 서운하긴 했었다. 더구나 어머니 대장암 수술로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았을 멤버 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쓰였었다. 그리하여 한 달 만에 바로 당일치기 캠핑이라도 가자고 얘기가 나왔다.
지난번 모임에서 빠졌던 둘째 언니의 작년 사업소 평가가 좋게 나와서 올해 보너스는 많이 받겠다면서 다들 둘째 언니더러 고기를 사라고 난리다. 아니 그건 그거고 여행경비는 별 개지 하고 생각했지만 둘째 언니 쿨하시다. 소고기 먹자고 하신다. 요사이 여행경비도 제대로 N분의 1로 나누지도 않고, 운전도 늘 언니들이 하는 바람에 막내 입장인 나는 죄송스러운 마음이라 그러지 말고 여행경비 나누자고 했더니... 왕 언니 말씀이, "그럼 네가 술 사라~." 바로 내게 배당이 떨어진다. 셋째 언니가 "우리 너무 훈훈한 거 아니니?"라고 말해줘서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뿐해진다. 기분이 좋다. 이런 대화조차도.
적당한 캠핑장을 찾아보자고 해놓고선 날짜만 정하고 대화를 마무리했었는데 그럼 그렇지, 인생은 늘 우리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날에 비가 온단다. 자연과 함께 캠핑의자에 널브러져서 하루 종일 언니들과 수다를 떨 그날을 상상했었는데.
우린 금요일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 주 내내 일기예보를 주시하던 나는 낙담했다. 일기예보를 매일 확인할 때마다 금요일만큼은 예상 강수확률 80% 숫자가 그대로다. 아니 일기예보는 틀리는 게 '국룰'인데 왜 이럴 땐 정확한 거지. 언니들은 비가 와서 당일 캠핑이 어렵겠다고 하니 계획 수정이 불가피했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같이 갈 사람 그리고 날씨와 계절이다. 비행기 값이 싸다고 추운 겨울에만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살짝 아쉬운 생각이다. 어쩌다 큰 맘먹고 가는 여행이니 최대한 좋은 계절에 여행을 간다면 여행의 묘미가 몇 배가 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예전에 이탈리아 여행을 초여름에 다녀왔는데 날씨가 완벽했다. 아이들 방학이라고 한여름에 이탈리아를 간다면 이탈리아는 더운 나라라는 생각만 하고 귀국한다고 하니 계절과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어찌 되었든 우리의 당일치기 캠핑은 일단 미뤄지고 서울 근교 예쁜 카페에 들러 브런치를 먹고 서울 쪽으로 일찍 와서 맥주 한잔 하자는 쪽으로 결론지어졌다. 뭘 하든 어딜 가든 우리는 늘 신이 난다. 여행이란 원래 가기 전의 설렘의 거의 절반 이상이지 않을까.
인터넷으로 '비 오는 날 카페'하고 검색했더니 많은 곳들이 나왔지만 결국 서울 토박이 사촌언니에게 SOS를 보냈다. 예전에 포천 어딘가 예쁜 카페에 다녀왔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비 오는 금요일에 갈만한 예쁜 카페를 어서 알려달라고 했더니 포천의 그곳보다 더 좋은 곳을 발견했다면서 북한강 근처의 카페를 알려준다. 사진으로 보아도 그럴싸하다. 까다로운 언니들이 금방 결정해줘서 내가 소개한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제야 막내의 면이 좀 서는군.
나의 집 근처 역에서 모이기로 한 금요일 새벽에 천둥과 번개가 쳤다. 어스름한 새벽 번개가 번쩍하고 사방을 순간 밝게 했다. 잠결에 깨서는 아오~ 이러다 여행 가겠나 싶었다. 우리 집에서 다들 모여야 하는 건 아닐까. 딸은 학교에 가니 괜찮지 않을까 순간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갔다. 나중에 들어보니 셋째 언니도 우리 집에 모여서 낮술 하는 거 아닌가 했다고.
아침 9시에 집 근처 역에서 둘째 언니와 나를 왕언니와 셋째 언니가 픽업하러 왔다. 오늘 드라이버는 셋째 언니다. 넷이서 비 오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와이퍼는 연신 왔다 갔다 하는데 날씨 걱정도 잠시 그동안 못했던 얘기들이 끝이 없다. 한 시간도 안돼서 목적지에 도착했고 카페는 기대보다 예뻤다. 비가 오는 흐린 날이지만 우린 2층에 북한강이 가득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브런치 메뉴로 샌드위치 같은 걸 상상했지만 빵 종류뿐이라서 아쉬운 대로 커피와 함께 주문을 했다. 카페 가서 브런치 먹으면 된다고 내게 한사코 김밥은 준비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침 김밥을 사 오길 잘했다. 외부음식 반입금지라며 우리에게 눈치를 주던 청소 아줌마를 달랜 건 덤이다.
창밖은 비가 오고 아름다운 풍경도 잠시 우리들의 화제는 어느새 집안에 아프신 어르신들이다. 대장암 수술로 회복 중이신 멤버 둘째 언니 친정어머님의 항암 투병기에 이어 왕언니는 시어머니께서 이름도 생소한 담관암 말기라서 중환자실에 계시다고. 그래서 집안 전체가 걱정이 많으셨다. 다음 여행지를 고르기도 전에 정읍부터 가야 할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셋째 언니가 지나가듯이 말했다.
사는 것이 참 그렇다. 우리는지금을 사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우리에게 찾아올 죽음을 미리 생각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먼저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조금씩 힌트를 주려는 것 같다. 더 재미나게 살라고. 인생 뭐 있나고 말이다.
예전에는 한번 좋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날뛰다가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지구가 멸망이라도 할 것처럼 절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도 마음으로 와닿지 않던 시절. 언젠가 인생선배가 그런 말을 한다. 좋다고 한없이 계속 좋을 수 없고 나쁘다고 한없이 계속 나쁜 것은 아니라고. 그래서 인생은 나쁠 때도 좋을 때도 그 순간이 영원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그러니 잘 나간다고 잘난 척할 것도 아니고 어렵다고 종일 죽을 상을 하고 있을 것도 아니다.
나의 아버지도 오랜 기간 투병 중이라 멤버 언니들에게는 이제 말하기도 입 아플 정도지만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프다면 그건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아버지가 삼 일간 열이 떨어지지 않아 사경을 헤매셨을 때 주치의가 전 가족을 소집했었다. 울며불며 달려가서는 막상 아버지 앞에 서면 그렇게나 누구나 외롭고 서러운 법이다. 그럴 때에는 그 어느 누구의 위로도 힘이 되지 않았기에 누군가가 가족이 아프다고 할 때는 섣불리 위로의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헤아려 보려고 잠시 말이 없어진다. 누구 하나 섣불리 말은 못 하더라도 옆에 있어주는 마음으로 위로를 건넨다.
하~ 신나게 웃고 떠들었더니 벌써 오후 1시다. 그런데! 갑자기 흐린 하늘이 맑게 개이고 해가 떴다. 나가려던 길을 바로 잡아 사진이나 찍고 가자고 야외 테라스로 나왔는데 웬걸~ 카페 안보다 더 예쁘다. 갑자기 개인 날씨에 달뜬 언니들이 다들 외쿡! 온 것 같다면서 속내를 감추질 못하고 돌아가면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야외 테라스 바로 앞은 발만 뻗으면 바로 북한강이었는데 갑자기 개인 날씨에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3층 카페 건물 전체에 예쁜 담쟁이가 가득 덮고 있었고 예쁜 꽃들 하며 푸른 나무들 덕에 어디를 찍어도 화보 같다. 한날한시에 흐린 뷰와 맑은 뷰를 모두 경험하게 되다니 역시 인생은 늘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두물머리가 근처라 들러서 잠시 산책을 했다. 넷이서 단체 사진도 찍었는데 이날 역시 아무도 셀카봉은 가지고 오지 않았다. 진짜로 다음번엔 챙기겠다고 다들 한 마디씩 하면서. 말이나 말지.
금요일이라 막힐지도 모르니(늘 시간에 쫓기는 우리들) 서울로 들어가서 한잔하자고 두물머리 편의점 앞에서 넷이서 머리를 맞대고메뉴와 장소를 고민했다. 뭐하나 계획이 미리 서지 않는 우리들이다. 소고기를 사기로 했던 둘째 언니가 맛있는 횟집을 소개했고 캠핑 날도 아니고 소고기도 아니었지만 이름마저 맛있는 어창이라는 횟집엘 갔다.(생선 창고! 라니. 너무 멋있는 이름이 아닌지!)
사전 디쉬도 전부 해산물로 주는 클라쓰라니~ 해삼과 산 낙지 탕탕이는 기본에 백합 탕이랑 도다리회가 메인인 광어가 나오기 전에 우리를 황홀하게 했다. 때깔이 곱게 구워진 고등어구이만으로도 밥 한 그릇은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소맥이 빠질 순 없겠다. 좋은 사람들과 있으니 상에 올라온 보통 깻잎마저 향긋한 것이 모든 것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다들 배가 불러 매운탕은 패스했는데 어쩐지 집에 와서도 못 먹은 매운탕이 아쉬웠고 쫄깃한 도다리회가 계속 생각났다. 요사이 늘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되어 먹은 음식을 토하곤 하는데 이날만큼은 제발이지 맛있었던 광어회와 좋은 추억들이 함께 잘 소화되길 바랐다.
사는 방향이 달라서 멤버 언니 두 분은 대리기사를 부르고 나와 둘째 언니는 지하철로 서둘러 해산을 했다. 세상의 워킹맘들은 이렇듯 늘 자유로운 시간이 고프다. 오랜 시간 마음 놓고 여유롭게 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1박 2일 여행도 갈 수 있겠지 하고 헤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기대를 해본다.
헤어지고 단체 채팅방에서 그날 찍은 사진들을 공유하다가 말고 대뜸 셋째 언니가 나보고 그런다. 우리랑 놀아줘서 고맙다고. 고생 많다고. 상냥한 마녀들의 매직 파워를 나눠 갖는 건 나인데 그걸 모르나 보다. 무슨 소리냐고 나는 좋다고 했더니 그럼 계속 놀잔다. 칭찬에도 어쩔 줄 몰라하고 마음속 말도 어색하게 끄집어내는 서툰 우리들이다. 마녀들이 마음이 여리디 여리다.
나만의 극복 프로젝트 연재 글들을 이제야 멤버 언니들에게도 공개하게 되었다. 이 글들의 독보적인 메가 스타급의 주인공들이기도 해서 지분이 상당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부정적인 비평과 비판은 금물이고 오직 호평만이 허락된다고 미리 못을 박았다. 나중에 책이 나오면 인세도 줄 거냐고 왕언니가 벌써부터 김칫국을 사발째로 내미신다.
셋째 언니가 대체 우리의 셀카봉은 글 몇 번째 편에 등장할까 하고 궁금해했다. 다음 편을 궁금해하는 고정적이면서도 호의적은 독자들이 생겨서 든든해지는 밤이다.
글쓰기는 기록이다. 글쓰기는 나의 시간을 나누어 쓴 사람들과의 일들을 기억하겠다는 다짐이다. 글쓰기는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도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 줄 나의 계획이다.그래서 나는 쓰고 쓰면서 위로받는다.
쓰던 글이 마무리가 안되어서 한참이나 미적거리는데 이 글을 쓰는 중에 왕언니의 시어머니께서는 결국 더는 버티시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금요일 오후 휴가를 내고 다 같이(우리들의 예상대로) 정읍으로 문상을 다녀왔다. 하루 종일 비가 온다던 그날은 갑자기 맑게 개여서 먼길에 앞서 각오를 단단히 했던 나는 오히려 어리둥절했다. 역시 인생은 내 마음 같지 않고 일단 겪어봐야 안다.
매일이 모여 나의 인생이 되니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좀 더 잘 살고 좀 더 사람답게 살자고 괜히 엉뚱한 다짐을 해본다. 늘 다음이 기다려지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