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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에서 올라오는 길

by 시코밀

왕언니의 시어머니 장례식장에 정읍을 내려갔다가 다 같이 올라오는 길에 셋째 언니가 그런다. 정읍에 세 번은 못 가겠다고. 그랬더니 다른 언니들도 맞장구를 치면서 얘기 좀 하라고, 미리 못이라도 좀 박으라고. 시아버지 장례식까지 정읍으로 내려갈 수는 없다고 서로에게 얘기 좀 하라고 다들 한 마디씩 거든다. 첫 번째 정읍행은 왕언니의 결혼식이었다고 한다. 언니들에겐 이번이 두 번째이니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시아버지 장례식까지 정읍을 내려오기는 힘들다며 장난기 많은 투정을 부렸다.


언니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새삼 세 언니들의 그간의 보내온 시간이 참 길었구나 생각되었다. 서로가 결혼하기 전부터 만나서 서로가 결혼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군대를 다녀오고 하는 사이 세 분도 서로의 시간을 공유했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공유하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서로는 서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나중에 어찌어찌 중간에 끼게(?) 된 나와 함께 한 시간은 더 적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 분의 이야기에 이따금씩 자연스럽게 나만 모르는 이야기가 나와서 대화에 낄 수 없을 때는 어쩐지 언니들이 서로가 공유한 그 긴 시간만큼이나 나와는 멀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입사부터 인천에서 근무하다가 서울 사업소로 중간에 옮겨왔기 때문에 당연한 이치이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남편에게 세 분의 오랜 우정의 시간에 대해 얘기했더니 대뜸 그런다. "그분들의 카르텔에 널 끼워준 거네!", "응? 뭔 텔?"

뭐 유럽연합이나 OPEC 같은 거대한 연합은 아닐지라도 어쩐지 마녀들의 연합에 내가 들어가게 된 것 같아 내심 신분상승이라도 한 것 같다. 언니들의 단단한 동맹 속에 내 발 한 짝 들여놓은 것 같은 든든한 생각이 드니 사람 마음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인생의 의미를 알기엔 아직 멀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과 그것에서 나오는 감정들을 받아들이긴엔 서툴고 가끔은 이유도 없이 늘 화가 나므로.


나이가 드니 사람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생각이 바뀐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아깝다. 나의 시간을 좀 더 의미 있는 사람들과 나눠 쓰고 싶다. 그러려면 불필요하고 내가 좋아하지도 않거나 아니 어쩌면 내게 상처만 주는 사람들과는 슬슬 멀리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쏟을 시간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좀 더 내 시간을 알차고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어 진다. 내게 상처 주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아끼는 사람들과 더 재미난 시간을 보낼 궁리를 해야 한다.


어느 글에서 본 적이 있는데 행복한 중년의 삶을 가진 사람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유쾌한 모임을 자주 갖는 사람이라고 한다. 가족의 사랑도 소중하지만 가끔 가족이 채워주기 어려운 아니 어쩌면 돌아서서 내 가족의 소중함을 더 일깨워 줄 우리들의 연합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상냥한 마녀들의 연합은 참으로 시기적절하다고 하겠다. 흠. 나만 그런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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