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시대에 살게 되면서 우리의 시간은 손가락 사이에 흐르는 물처럼 어쩐지 알게 모르게 더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 같다. 요사이 외식도 거의 하지 않고 배달음식도 어쩌다 가끔이고 주로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겨우 저녁 산책을 나가는 정도이다. 요새는 다들 생활이 비슷해져 가는 것 같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더 재미나게 지내볼까 혼자 궁리하는 것도 사실이다.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사춘기 딸아이의 분주한 시간들을 애써 모른척하면서, 엄마라도 재미나게 살아야겠다면서 엄마가 살아야 식구들도 평안하지 않겠냐는 합리화를 장착하고.
때론 성질 급하고 그러면서도 다정한 왕언니는 시골에 들렀다가 계란을 한판씩 사 와서 돌리고 셋째 언니는 예쁘고 아담한 손가방을 택배로 보내왔다. 남편이 알이 꽤 큰 계란 한 판을 보더니 그런다. '너네 회사 사람들은 뭘 자꾸 사서 보내냐?' 그러게. 부러워서 그러는 거 다 안다.
사실 계란을 수령하기 위해(왕언니는 계란이 차 트렁크에서 부화할지도 모른다고 하도 성화여서) 일부러 언니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잠깐 만났는데 그렇게 시간이 내기 어렵다가도 순식간에 만나지는 것도 신기했다.(결국 계란 때문에 만났지만.) 단톡방에 계란 잘 먹겠다고 고맙다고 한바탕 감사의 이모티콘을(오버하는) 왕창 쏟아냈더니 제발 계란 얘기 좀 그만하라고 셋째 언니가 버럭 한다. 별거 아닌 작은 선물에도 깨가 쏟아지고 기분이 녹아든다.
얼마 전에 우리 멤버는 월요일에 다들 휴가를 내고 영종도엘 다녀왔다. 역시 순식간에 장소와 날짜가 정해진다. 점심으로 조개구이를 먹었는데 하필 날씨가 끝내주게 더운 날씨. 금방이라도 바닷가로 풍덩해야 할 것 같은 날씨였다. 땀을 오지게 흘리면서 칼국수까지 먹고 역시나 빠질 수 없는 카페 순례. 디저트 한상 앞에 두고 수다를 떠니 두세 시간이 순삭이다.
서둘러 서울로 출발하려니 다음엔 글램핑이라도 가자고. 서로 1박 2일 안 되는 사람 있냐면서 불멍이라도 때려야 하지 않겠냐고 다음 일정들이 쏟아진다. 물론 정해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때 가면 또 순식간에 정해질 게 분명하다. 갑자기 캠핑의자에 앉아 불멍을 때리거나 해먹에 누워서 푸른 하늘을 보면서 가을 느끼는 나를 상상했다.
아줌마들이라 1박 2일은 다들 부담스러우면서도 막상 가게 되면 처음부터 계획했던 사람들처럼 잘 놀게 뻔하다. 얼마 전 남편이 1박 2일로 골프를 다녀오면 안 되겠냐고 그래서 쿨하게 승낙했다. 왜냐면 나도 1박 2일로 놀러 가야 하니까. 다음 달에는 딸내미도 친구 생일이라 친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겠단다. 늘 엄마라는 역할 때문에 시간 내어 여유 부리는 것에 대해 혼자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자 속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특별히 하는 것도 없이 놀다 집에 와서 다음날 출근한 언니들이 피곤하다고 하면서도 놀아도 피곤하고 안 놀아도 피곤하니 그럼 놀고서 피곤한 게 낫겠다고 한다. 열심히 더 놀자는 의미.
요즘 같은 시기에는 특히 더 조바심이 난다. 나만 덜 재미있게 살고 있을까 봐서.
얼마 전에 회사 사람들과 티타임을 하는데 중견 관리자께서 이런 말을 하신다. 사연인즉슨 이 분 부부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어느 아주머니가 자신의 아내에게 말을 붙이고 인사를 하고 정보를 주고받고 하더란다. 별로 이상하지도 않은 우리 동네 사람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자신은 나이가 드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귀찮기만 하더란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말을 잘 붙이고 금방 친해지는 타인이 이해가 되질 않더란다.
가끔 나이가 들어가니 우리는 모든 것이 가끔 힘에 부치고 누군가를 만나서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진다. 사람을 만나서 서로를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젊은 세대들은 만남에도 가성비를 따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군가를 만나는 데 있어 시간 대비 효율성을 따진다고 하니 뭐든 경쟁이 심해지고 바빠진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들이 십분 이해되기도 한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의 유대관계를 유지하거나 친한 친구들이 있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행복하다고 한다. 내향적인 내 성격으로는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것도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도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우리의 하루는 쳇바퀴 돌 듯 평범해서 가끔은 지루하기도 하고 반면에 너무 바빠서 주변에 신경 쓸 여력도 없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시간이 남아돌든 학교 과제로 빠듯하든 간에 흐르는 시간을 어찌하지 못해 지루해 죽겠는 사춘기 딸아이와 달리 나는 내게 주어지는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아까워서 어쩔 줄 모르는 나이가 되었다. 평생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내게 갑자기 운동이 소중해졌고 시시각각 변하는 집 앞 공원의 모습조차 매일 봐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러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늙어버리는 것이 아닌지 조바심도 났다.
어쩌면 시간이란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달라진 것은 나의 생각일 것이다. 수년씩 병상에 누워계시는 아빠에게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역시 수년째 아빠의 옆을 지키는 엄마의 나이 듦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모두에게 일정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가족에게 그리고 친구에게 조금 덜 후회가 되도록, 서로에겐 좀 더 힘이 되고 응원이 되도록. 기쁜 일은 서로 기뻐해 주고 행복한 기억은 더 오래 기억하려고 애쓰면서. 서로 할 말은 하면서 외로움도 털어내고, 열심히 들어주고 그 자리에 위로를 얹혀주면서 그렇게 시간을 살아가면 좋겠다. 새로운 사람 사귀는 데 익숙하지 못해도, 불판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조개들처럼 뜨겁게 살지는 못해도 옆에 있는 사람들과 따순 사랑을 가지고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