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먼저 상냥하게
억압으로 나를 옥죄지 말아요
최근에 불편한 인간관계로 인한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일이 있었어요. 나이 마흔이 넘어도 이런 일이 내게 생기는 구나하고 무척이나 상심했었어요. 살다 보면 모든 사람들을 이해할 필요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또한 그 모든 사람들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길 바라진 않는다고 평소에 생각해 왔는데도 막상 이런 일이 생기니 마음이 심하게 아프더라고요. 상처가 되더라고요. 적어도 저는 상처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살면서 나를 괴롭히는 일들을 만났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가끔은 잠들기 전 이불속 니킥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그런 상실감과 분노 같은 것들이 우리들을 덮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우리가 분노 다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회피나 부정인 것 같아요. 억지로 그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씁니다. 강렬한 슬픔이나 분노 같은 것을 너무나 견디기가 힘이 들면 억지로 잊어버리려고 한다거나 떨치려고 하는데 이런 것을 심리학에서는 억압(Repression)이라고 한다고 해요. 문제는 이러한 억압이 결코 좋지 않다는 거예요. 억압된 감정은 우리의 잠재의식에 남아 어떻게든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애를 쓴다고 합니다. 다른 출구를 통해 불현듯이 떠오르거나 트라우마로 남기도 하겠죠. 그래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려고 하면 우리는 시작도 전에 지레 겁을 먹을지도 몰라요.
저도 이번에 생긴 힘든 일이 다시 생각이 날 때면 저도 모르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생각이 떨쳐버리려고 애를 썼답니다. 바보처럼 머리를 흔들면 제 머릿속에서 그 일이 튕겨져서 나갈 거라고 상상을 하면서요. 하지만 점점 더 저를 옭아매는 것 같았어요.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 더 생각나는 흰 곰이나 코끼리처럼요. 이렇게 억눌린 감정은 자주 우리 몸을 병들게 합니다. 두통이나 우울증, 신경증, 위장병 혹은 스트레스로 인한 암까지도요.
최근에 읽게 된 '마음의 법칙'이란 책에서 이 억압에 대해서 다루는 부분이 있어요. 억압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두려움을 직면해야 한다고 해요. 저자는 마음 청소란 단어를 사용했더군요. 억눌린 감정을 가두지 말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존중해 줘야 한다고 해요. 받아들임, 이것은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요.
저자가 말하는 마음 청소라는 것은 일단 깊이 그 감정을 수용하고 그 감정을 속내를 진지하게 관찰하는 것이에요. 대체 어찌 생겨먹은 감정인지 자세히 보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처음엔 이렇게 마음의 눈으로 제 감정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답니다. 생각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생각하는 괴로움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생각에 이 과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그 감정을 잘 쓰다듬고 인정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 그리고 그 감정이 무엇인지 표현해보는 거예요. 분노인지 슬픔인지 서글픔인지요. 그다음은 그 감정을 느낀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거예요. 불편한 분노를 느꼈던 나를 인정해주고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 어떤 감정 )을 느낄 권리가 있다."
"나는 ( 어떤 감정 )은 내 인격의 자연스럽고도 소중한 부분이다."
- 마음의 법칙 중에서-
분노라는 감정이 내게 온 것이 저는 못마땅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지? 어떻게 그 사람들은 나를 이런 식으로 평가할 수 있지? 어쩌면 내게 이렇게 하찮은 대우를 할 수가 있었을까? 감히 내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저는 뭐든 부정하고 부인하려고 했었어요. 분노 위에 쌓이는 것은 눈물뿐이었답니다.
마지막으로 나만의 감정의 동영상을 만들어보고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두었다가 언제든지 꺼내서 볼 수 있게 하라고 합니다. 그 마음속 동영상을 재생하던지 끄던지 전적으로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신념이 필요해요. 제가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면 거의 해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해요. 왜냐면 대게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힘든 거잖아요. 억압을 통제해서 무해한 상태로 만드는 작업은 트라우마 극복에도 효과적이라고 하네요. 억압된 감정을 무해한 상태로 만든다, 참으로 근사한 말인 것 같아요. 정우열 님의 책에서 감정엔 우열이 없다고 했어요. 그 말은 맞지만 우리가 억압한 감정은 가끔 독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일을 겪었으니 그런 감정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야.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어. 너라서가 아니야. 당연히 화가 나고 힘들지. 이런 일이 너에게 일어났다고 해서 네가 더 하찮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야. 넌 여전히 너고 존재로서 가치 있어. 저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당사자인 나보다 내 감정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 이제라도 내가 먼저 내게 인자해지고 다정해집시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계속 살지 않게 하자고요. 나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토닥여주기로 해요.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스스로를 훨씬 더 잘 위로할 수 있을거에요.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갈 곳은 많으며 해 볼 재미난 일들이 많으니까요. 휘둘리지 맙시다. 여전히, 나는 나이므로.
참고문헌
- 폴커 키츠, 마누엘 투쉬, <마음의 법칙>, (2022, 포레스트 북스)
- 정우열, <힘들어도 사람한테 너무 기대지 마세요>, (2022, 동양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