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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코밀 Jun 24. 2022

상호존중을 전제로

배려하는 마음도 give & take

어느 날 일이 있어 보험사에 전화를 걸 일이 있었는데 전화멘트가 남다르더라고요. 어느 유명한 배우의 목소리가 나오더니 곧 제 아내가 친절한 응답을 해드리겠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뒤이어 전화 내용이 녹음된다는 말도 있었고요. 요즘은 워낙 당연한 얘기지만 제가 고객 접점부서 근무했던 1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많은 노동자들을 보호하고자 많은 기업에서 노력 중이지만 아직 우리의 의식이 선진국 수준이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개인차일 수도 있겠고요. 어쩌면 극단적 개인주의적 성향(프랑코 베라르디, 이탈리아 철학자)이 강한 우리나라 국민성 때문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예전에 부서에서 회식할 일이 있었는데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소고기 집이었고 우리 부서 사람들만 따로 마련된 방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 식당에서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많았는데요.  고기를 구울 때 연기가 빠져나가는 연기통에서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져서 굽던 고기 위로 떨어진 거예요. 하필 우리 처 최고 윗분도 오신 자리였는데 아마 장소를 섭외하시느라고 애쓴 차장님은 속으로 엄청 진땀 꽤나 흘렸을 거예요. 하지만 최고 윗분이셨던 그분은 매니저를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연기통을 지금 당장 교체하기는 어려우니 고기를 바꿔달라고 하시면서 서비스로 조금 더 달라고 웃으면서 마무리를 하셨어요.



여기 차원이 다른 대응이 하나 더 있어요. 여전히 같은 장소고요. 우리 부서 사람들만으로 꽉 찬 그 방에 종업원들이 음식을 들고나가기 바빴는데 한 번은 여자 종업원이 옆자리에 앉은 타 파트장님 바지에 국물을 쏟는 일이 생겼어요. 그게 물김치의 국물이었는지 물냉면의 국물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 분이 나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계셨었는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치시는 거예요. '아니 이게 얼마 짜린데!' 하시면서 바지에 묻은 국물을 마구 털어내시는 거예요. 등산복인데 엄청 비싸게 주고 사셨다면서 한참 흥분을 하시더니 직원분이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를 했지만 한참이나 그 비싼 등산복에 대한 탄식을 들어야만 했지요. 그 정도 등산복이면 방수처리가 잘 되어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잠깐 저의 뇌리를 스쳤더랬죠.


음식을 나르는 사람 앞이라서 그런지 괜스레 더 의기양양해지고 본인에게 아무리 큰일이라 해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그런 모습이셔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었죠.  사람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라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해 어쩔 줄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에요. 세상은 정말로 나와 다른 사람이 많다지만, 아니 나 말고는 전부 다 생각도 다른 사람이겠지만, 대체 아무렇게나 상대방의 자존심을 깍아내려도 된다는 저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를 한참을 생각한 밤이었요.


살면서 모든 사람들을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가끔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나만 저 사람을 이해 못 하는 건가. 그래서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면 나만 제정신인 건가, 대체 이 지구에서 제정신으로 살기는 힘든 건가 뭐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잖아요.  식당에서 근무하는 많은 직원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표정을 어느 정도 스스로 통제해야만 하는 감정노동자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서비스에 대한 기대가 높은 편이잖아요. 그렇다 하더라도 무의식 중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의 발언은 아마도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누군가의 아내였을 그 직원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겁니다.  


내가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이라고 해서 제공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할 권리는 없는 법이지요. 결국 최고의 고객응대는 최고의 고객이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서비스를 제공받을 때의 우리의 태도는 과연 적당한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일입니다. 뭐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긴 있을 거예요. 명품 매장에 들어선 수수한 옷차림의 고객을 점원이 대놓고 무시한다거나 상품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거나 다른 고객과 차별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요. 결국은 서로의 인격적인 대우가 정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여기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김찬호 님의 '모멸감'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결국 소비자의 태도가 문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양식이 요구된다. 예절과 공손함은 상호존중을 전제로 한다. 서로에 대한 경외가 오가면서 인격은 고양된다. 그렇지 않고 그 흐름이 일방적일 때, 권력과 화폐를 매개로 갑과 을의 비대칭적인 관계가 형성될 때, 미덕은 악덕으로 돌변한다. 서비스는 봉사와 섬김이 아니라 하인의 굴종으로 전락한다. 친절과 미소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화기(和氣)가 아니라 영리를 위한 술책으로 수단화되는 것이 감정노동의 비애다. 온갖 몰상식한 요구들을 고스란히 떠안고 울분과 치욕을 꾹꾹 삼키면서 두려움을 상냥함으로 감취야 하는 종사자들은 병든 사회의 말단이다.






예절과 공손함은 상호존중을 전제로 한다는 말은 참 아름답습니다. 가끔 티브이에서 훈훈한 이야기가 들려오면 아직 살기 좋은 세상이구나 생각할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에 일본 여행을 갈 수 없게 된 김민섭 씨가(일명 김민섭 후쿠오카 보내기 프로젝트) 자신의 비행기 티켓을 양도하기 위해 항공사가 내건 조건의 남성을 찾게 된 이야기 말이에요. 비행기 티켓을 양도하기 위해선 대한민국 남성이면서 이름이 같고 영문 스펠링이 같아야 하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는데 제2의 김민섭 씨를 찾게 된 과정을 알게 된 많은 이름 모르는 타인들이 건넨 후원 이야기는 꽤나 신선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순수한 마음에서 건네는 사람들의 많은 후원이 실제로 실현되었다죠. 누군가는 숙소를, 누군가는 무료 교통권을, 누군가는 무료 와이파이를, 누군가는 여행경비를, 누군가는 여행 후에 제2의 김민섭 씨의 졸업전시 비용을 후원하겠다고 한 이야기는 말 그대로 영화 같기도 하였어요.


막상 여행을 가게 된 작은 김민섭 씨는 공항에서 물었다고 해요. 나는 특별한 것이 없는 사람인데 왜 당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주냐고요. 정말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요? 저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그 순수하고 예쁜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지요.


세상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인간의 정을 느끼게 할 만한 후원을 받은 1번 김민섭 씨도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저를 왜 도와주냐고 물었었다고 해요. 그 사람들은 '당신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답니다. 자신이 먼저 물었던 질문을 작은 김민섭 씨가 물어왔죠. 왜 절 도와주느냐고요.


 작은 김민섭 씨는 여행을 위해 공항에 오는 길에 마주친 사람들을 보면서 혹시 나를 도와준 사람이 저 사람일까? 하고 관심이 가더랍니다. 그리고 1번 김민섭 씨에게 여행을 다녀와서 꼭 잘 살겠다. 후에 3번 김민섭 씨에게도 조건 없는 여행을 보내주고 싶다고 했답니다.


작은 기부의 대물림, 선한 행동의 순환,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회는 얼마나 건강하고 살맛이 날까 생각해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나중에 살 게 될 사회잖아요. 누군가에게 악행을 받은 사람은 악을 행할 확률이 높아지고 누군가에게 선한 행위를 받은 사람은 다시 선함으로 돌려줄 가능성이 크겠지요.


내가 받아야 비로소 건네지 말고 먼저 주면 어떨까 싶어요. 한 번은 타인에게 먼저 다정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참고

- 김찬호, < 모멸감(p. 98)>, (2014, 문학과 지성사)

- 차이 나는 클래스(유튜브), 김누리 강연 중 프랑코 베라르디(이탈리아 철학자)의 한국 사회 특징 참조

- 유퀴즈(유튜브), 김민섭 찾기 이야기 중 참조

- 사진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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