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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번개 할까?

돼지 두루치기는 우리 스타일이야~

by 시코밀

2022년 올해 서울 여름은 그야말로 덥고 습하고 말 그대로 습식 사우나 같은 날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더움의 정도가 매년 조금씩 업그레이 된다고나 할까. 어쩐지 더운 여름에는 어디론지 가야 할 거 같고 길게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집을 떠나야만 여행을 가는 것 같고 그래야만 힐링을 하는 것 같고 기분전환이 되는 것만 같다. 막상 나가보면 고생인데도 우리 인간들은 다들 각자 마음속에 가지고 있을, 어느 정도 집을 떠나 있을 시간을 채워야만 마음의 허전함이 가시고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에 다들 얼굴 한번 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셋째 J 언니가 '우리 담주에 번개 할까?'라고 말문을 터주니 다들 '콜~' , 왕언니는' 날 잡아~' 하신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일정은 번개같이 온다. 그래서 번개라고 하나보다. 누가 지었는지 말 참 잘 갖다 붙였다.


우리 상냥하고도 다정한 마녀 군단 멤버들은 서로 가까이에 사는 듯하면서도 바로 근처는 아니라서 그런지 은근히 만나기가 어렵다.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는 사내 메신저나 혹은 카톡으로 출근 전 이른 아침이나 주말에도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아니면 사회 이슈나 공유하고 싶은 정보들을 나누는데 요게 참, 뭐랄까 만나서 말로 해야 하는 이야기는 다들 따로 있는 법이다.

역시 우리에겐 중요한? 수다 떨기 좋은 카페가 먼저 소개되고 그다음으로 밥집이 추천된다. 경기도 쪽에서 보기로 해서 카페는 괜찮은 곳이 많은데 밥집이 살짝 아쉽다면서도 하남 사는 언니가 돼지고기 김치 두루치기 맛집을 소개했다. J언니가 '와, 우리 스타일이다~' 해서 다들 메신저 창에서 웃었다. 언니들 차에 타서 따라가기만 해서 몰랐는데 두루치기 집 상호가 '오늘도 웃자'이다. 식당의 음식 메뉴와 상호가 그다지 어울리는 느낌이 아니라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출발을 하는데 갑자기 왕언니가 너네 오늘 드레스코드 뭐냐고 물어온다. 왕언니와 J언니는 같은 사옥이라 함께 출발하시는데 두 분 다 하필 검은색 옷이라 상갓집 분위기라고. 하남 언니가 '그럼 우리 엄숙하게 만납시다.'이런다. 그래 우린 늘 처음엔 엄숙한 편이긴 하지. 혼자 속으로 웃었다.


이날은 날씨가 너무나도 더웠는데 음식 열기로 인해 식당 안도 더웠다. 한 여름에 가스레인지를 가운데 두고 두루치기라니. 식당 내 에어컨에서는 냉기가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우리 스타일인 김치 두루치기에 밥을 야무지게 챙겨 먹고 카페로 출발이다.


빵이 얼마나 맛있기에 카페 이름이 '르빵드비(Le pain de vie)'이다. 인생 빵이라니. 3층 규모의 대규모 베이커리 카페였는데 전망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우리는 늘 수다스럽기에 조용하고 외진 구석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다소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려고 우리는 그렇게 더운 날 꾸역꾸역 만났나? 맞다. 다소 쓸데없지만 우리는 만나서 얘기해야 풀린다. 우리 서로 안보는 사이 저마다 가슴속에 쌓였던 작은 울분이나 만나서 반가운 그런 흥분 같은 것들이 한데 섞여서. 무슨 얘기들을 했는지 어쩐기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 회사 이야기, 상사 이야기, 그리고 풀어도 풀어지지 않는 가족들 이야기 그리고 건강이야기들을 했을 것이다. 늘 우리 이야기의 주요 테마가 그렇듯이. 우리 인생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모인 날은 하필 또 한주의 시작, 월요일이었는데 다들 오전은 근무를 하고 오후부터는 휴가를 내고 만나기로 했었다. 그날은 들떠서 몰랐는데 더워서 땀도 많이 흘리고 말도 많이 해서 그런지 저녁에 집에 왔을 땐 무척이나 다들 피곤했다고 한다. 다음엔 그냥 하루 휴가를 내야 지하고 나는 혼자 다짐을 했더랬다.(이런 저질 체력이라니)


글쎄, 내게는 언니들이 나누는 작은 말들, 서로 농담을 받아치는 센스, 이런 것들만 모아도 한 편의 글이 될 것만 같다. 별거 아니지만 기억하고 있으면 언제든 피식하고 혼자 웃게 되는 나만의 인생 양념이라고나 할까. 요런 것들은 가족 중에 아이가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유머러스한 아빠가 한 말이 될 수 있다. 누군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은 해야 한다.


더운 날 꾸역꾸역 만나서 얘기를 나눌 사람들이 있어 행복한 여름이다. 매년 더 더워진다면? 그래도 만날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왕언니가 가을엔 강원도 고성으로 여행을 가자고 해서 이번 당일치기 바람 쐬기는 짧았지만 다음 여행을 기대하기로 한다.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날 우리 더 알차게 꾸역꾸역 만나기로 해요.




에필로그

; 짧았던 바람쐬기라 할말이 많이 없을 줄 알고 후기 쓰는 것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래도 쓰고나니 기억할만한 것들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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