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이탈리아 아말피 해변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안젤리나 졸리의 별장도 그 해안가에 있다나 뭐라나. 운 좋게 해안을 끼고 유람선도 탈 수 있었는데 가이드가 틀어주는 음악 한곡까지 더해져서 해안의 완벽한 절경을 보고 있자니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이 나게 아름다운 건 이런 거구나 혼자 생각했다.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운 그런 풍경이었다. 어딜 여행을 가더라도 생전 생각나지 않던 부모님이 떠오르면서 같이 보지 못해 어쩐지 미안해지는 그런 풍경이었다.
그날도 번개처럼 우리의 만남이 왔다.
화요일에 연락해서 그 주 목요일에 보자고 하는,
그럼에도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던 만남처럼 갑자기 신이 나고 설레는,
추석 전엔 한번 봐야지? 왕언니 한마디를 다들 잊지 않고
마음속에 은근히 기다렸던 우리들만의 나들이.
장소보다 일단 메뉴 앞에서 마음이 약해진 건 나만 그랬나?
그럼에도 끝내주게 아름다웠던 북한강의 경치.
몰래 혼자 좋은 구경하는 내가 식구들에게 살짝 미안해지는 그런 풍경이 여기 또 있었다.
J언니가 화요일에 톡 해서는 목요일에 보자면서 '영종도 아님 남양주?'중에서 골라보라고 하는데 가고 싶은 식당도 링크를 걸어왔다. 한정식 대 갈비였다. 장소도 정반대고 메뉴도 그렇고 한참 망설일 뻔도 한데 하남 언니가 '갈비 묵자'한마디에 만장일치. 메뉴 때문에 남양주로 선택한 거 같은데 어쩐지 우리 여행이 경치 비중이 높아진다는 J 언니 말에 아무렴 어떠냐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어디든 무엇을 먹든 함께라면 말이다. 밥 먹는 거랑 여행은 누구랑 함께 하느냐가 제일로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주엔 월요일부터 비가 자주 오고 날도 흐렸는데 그날만 해가 반짝하고 일어났다. 비 온 뒤라 세상이 맑고 깨끗했다. 갈비를 먹으로 온 식당은 오픈한 지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는데 북한강 뷰를 반찬으로 삼을 만큼 식당에서 내다보는 경치가 끝내줬다. 우리 계획은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는 거였는데 마땅히 걸을 만한 산책로가 없었다. 그래서 근처 예쁜 카페로 옮겼다. 여기저기 유명세를 탄 카페는 화가의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카페 내 전시가 되어 있어 약간의 갤러리 같기도 했다. 인스타용으로 사진 몇 장 찍어주고 커피에 와플까지 주문했다. 커피 가격이 1만 원 이거 실화냐 하면서도 창가에 자리 잡는 우리. 안에서 수다를 떨다가 강을 바라보는 야외 테라스로 자리를 옮겼다. 진심 아말피 해변이 부럽지 않았다.
비가 와서 강물이 가득하고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희었다. 다들 오전 근무를 하고 부랴 부랴 만난 거라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싶을 지경이다. 이제 슬슬 말하느라 고생한 나의 턱이 아파오고 떨어진 주식 얘기에 하나 둘 주식차트를 보다가 고즈넉한 강가 저편의 아름다은 집들을 바라본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카페 하면서 매일을 살면 어떨까 생각했다가 금세 잡념에서 나와야 한다. 서울 가는 길이 막힌다고 출발해야 한다는 언니들. 그러면서 아무도 안 일어난다. 돌아가서 아이들 저녁을 차려야 하고 누구는 고등학생 자녀 학원 픽업을 가야 하고, 또 누군가는 아프신 엄마의 식사도 챙겨야 한다. 어쩌겠는가.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있어도 여전히 우린 국회의원보다 바쁜 아줌마인걸.
좋은 시간을 좋은 곳에서 보내는 거 좋은데 늘 이렇게 시간에 쫓기니 아쉬움을 남기고 일어선다. 예쁜 풍경을 가슴에 담고 또 다음 만남까지 약발이 가시지 않게 잘 봉인해야 한다.
어느 방송에서 심리학자*가 말했다. 술이나 커피, 식욕, 일 관련해서는 아무 생각 없이 돈을 쓴다. 하지만 우리는 여가에 돈을 쓰는 데는 인색하다고 한다. 현대인들 중에는 여가에 돈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부자들도 재화를 사는 것보다는 경험을 사는 데 더 돈을 쓴다고 했다. 좋은 곳에 가서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에 더 치중하는 사람은 외롭지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여가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경험은 우리에게 만족감을 가져오고 우리 인생이 더 행복하다고 느낄 확률이 크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은 빈도라 했다. 한꺼번에 행복하다 쭈욱 불행한 사람은 행복하지 않지만 소소하게 매일이 행복한 사람은 쭈욱 행복하다. 행복의 빈도가 많아야 건강하고 오래 산다. 당연한 말이지 않겠나. 행복한 사람은 자주 웃을 것이고 덜 스트레스받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도 금방 털고 일어날 자원을 가지고 있다. 늘 금고 한편에 비상금이 있는 사람처럼 든든할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 자주 가는 것만큼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있을까. 나는 생각해본다. 자주 좋은 곳으로 가자고. 자주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자주 좋은 사람을 만나자고.
오늘 끝내주게 아름다운 뷰를(그게 어디든, 날씨가 흐리든 맑든 간에) 같이 가서 감탄할 누군가가 생각났나요? 함께 가서 웃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