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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공원은 아무나 가나~~~?

더 늦기 전에 여의도 한강공원 피크닉

by 시코밀

멤버 중 셋째 J 언니가 호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분 사업 때문에 얼떨결에 다녀오신 여행이라지만 남은 우리들은 언감생심 코로나 시국의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꾼지라 너무나 부러웠었다.(나만 부러웠던 건가요?) 여행 후기도 들을 겸 J언니가 호주에서 돌아오면 우리들은 얼굴을 보기로 했었다.


늘 그렇듯이 날만 정하고서 어디서 언제 볼지는 만나기 바로 직전에 정해진다. 날씨가 좋아도 너무나 좋은 초여름 날씨, 어디론가 가지 않으면 억울할 날씨가 계속이다. 봄비가 안 와서 정작 농촌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닌데도 날씨가 좋으니 덩달아 우리 마음도 하늘 높이 두둥실 떠오른다.


하여 만나기로 한 그날도 날씨가 하염없이 좋으니 한강이 어떠냐고 J 언니가 제안을 했다. '전부 5시까지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모여!'하고 왕언니께서 맏언니 다운 특명을 내리신다. 듣기만 해도 설레는 한강 공원 피크닉~


내게는 생각만 해도 마음속 여유를 가져다주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상업광고의 역할인지 몰라도 오후에 마시는 커피 한잔이라던가, 퇴근하고 티브이를 보면서 혼자 마시는 캔맥주라던가, 주말 오후엔 한가로운 한강공원 피크닉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의 행위는 행하는 동시에 내게 힐링이나 여유로움을 느끼게 하는 리추얼이다. 시작도 전에 마음이 한없이 여유로워진다고나 할까.




더 멋진 피크닉이 되려면 그늘막과 돗자리, 캠핑의자에 테이블 등 구색을 갖추고 싶어서 미리 텐트 집에 예약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가 설레발을 쳤는데 공원 앞에서 전부 대여하면 되니 그냥 오라고 하신다. 여의나루 역에 서서 나를 기다린 잠깐 사이에 배달음식 전단지를 수십 장을 받은 J언니가 나를 반긴다. J언니와 나는 달랑 돗자리 한 개를 대여하고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더운 날씨라서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배가 고파왔다. 시켜먹자고 그냥 오라고 했던 언니들 말을 무시하고 샌드위치를 포장해가길 잘했다.



다들 오후 몇 시간은 휴가를 내고 여의도 공원으로 모였건만 막상 왕언니가 제일 늦으신다. 왕언니까지 모두 합류를 한 사이 여의도 한강공원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처음에 사람들이 나무 그늘 밑을 사수하려고 자리를 골라 잡았지만 해가 지고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강바람도 불어주니 굳이 그늘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빈틈만 보이면 돗자리를 폈다. 그야말로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갑자기 '우리가 제일 나이 많은 거 아냐?' 하고 J언니가 말하는 바람에 주위를 둘러봤다. 정말 주위를 보니 죄다 젊은 친구들이다. 다들 대학생들처럼 보였다. 아니면 이제 갓 세상에 발을 디딘 사회 초년생들처럼 보였다. 한창 젊은 나이의 친구들의 젊음이 그 자체로 아름답고 멋지게 느껴졌다.


공원에 사람이 하도 많아서 적절한 거리두기? 가 안 되는 탓에 우리가 타인에게 더 눈길은 준 것은 사살이지만 그래도 주눅이 들 아줌마들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을 살고 있다는 것을 나와 언니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다들 모여서 웃느라고 배가 아프니 말이다.


사람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여유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배가 고파왔다. J언니가 사수한 전단지를 보니 하나같이 전부 치킨이다. 지금 시켜도 음식이 오기까지 엄청 오래 걸린다는 둘째 언니의 말에 그럼 그냥 식당으로 가서 먹자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날씨가 더워서 공원에 앉은 지 얼마 안 돼서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냐고 둘째 언니가 말한 예언이 들어맞았다.


앉아있는 동안 자꾸 꼬리뼈가 아프다고 하는 J언니의 의견을 반영해서 다음엔 캠핑의자를 필수도 빌려야 할 것 같다.


여의도에 맛있는 냉동삼겹살집이 있다고 해서 가려고 했지만 이미 만석이란다. 미적거리는 사이 시간이 흐르고 결국 우리는 회사 옆 호프집으로 가서 생맥주에 치킨을 시켰다. 바삭한 후라이드 치킨이 정말 맛있었다. 다들 약간 허기가 졌는지 한 마리를 뚝닥 해치웠다. 둘째 언니가 "야, 우리 다들 배고팠단 거야?" 하고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이 맥주집은 회사 근처라 먹을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이날 특히 치킨이 너무 맛있었다. 술 마시다가 어딘가 낯익은 회사 사람들을 만나는 건 덤이다.


날은 왕언니의 큰 아들이 취업을 했다고 해서 왕언니가 사셨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앞으로 모임이나 여행경비를 목적으로 회비를 걷기로 했다. 앞으로의 일정이 기대가 된다.


가끔 사람들과 술 마시고 늦게까지 놀다가 들어와서는 피곤하게 다음 날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면(멀리까지 갈 것 없다. 나의 남편이다.) 왜 저러나 싶었다. 그런데 가끔은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더구나 만나는 사람들이 마음이 편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금상첨화겠다.


피곤하기만 할 줄 알았던 모임은 웃고 떠드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쌓였던 나의 울분과 분노를 태워준다. 요사이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 있어서 언니들을 만나면 다 일러야지 속으로 생각했었는데 언니들과 웃고 떠드는 사이 내 깊은 마음속 분노들이 어느덧 조금씩 작아지는 것 같았다. 웃으면서 가슴속 깊은 곳 서러운 한숨도 나오고 눈물도 같이 나오는 것을 나는 이제 알겠다. 나의 웃는 시간들이 모여 내 마음속 깊은 분노와 슬픔을 태우는 것을 알겠다.


사람 때문에 받은 상처가 오로지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 때문에 받은 상처를 오롯이 사람으로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내게 좋은 사람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아프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인생이다.

- 드라마 '마이네임' 중에서.


언니들~ 다음번엔 멀어도 잠실 한강공원 어때요? 캠핑의자, 테이블, 돗자리 다 있어요. 몸만 오세요. 내가 잘해드릴게.


우리의 만남은 항상 만나기 전엔 설렘을, 만나고 나서는 긴 여운을 준다. 진정한 행복이란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었나.






Pictures by J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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