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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코밀 Dec 19. 2022

자기 연민을 위한 두 번째 조건

보편적인 인간 경험에 대한 인식

야, 남들도 힘들어~


언젠가 지독하게 사춘기를 지나는 딸아이를 공감하지 못한 적이 있어요. 학원 숙제가 많다고 가기 싫다면서 울먹이는 아이에게 그만 다른 애들도 다 마찬가지야~라는 말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말이었어요. 반성합니다.  별거 아닌 일도 나약하게 물러서는 모습이 안타까워 격려는 못할 망정 속으로는 화가 났나 봅니다. 다른 아이들도 똑같이 학원에 다니고 오히려 더 많이 다니는데 왜 너만 힘들다고 하느냐고 남들도 똑같이 힘들다고 얘기해도 아이는 공감하지 못하더라고요. 아이가 그때 저에게 힘든 건 난데 왜 다른 아이들 얘기를 하냐고 반문하더라고요.


이런 얘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남편이 그래요. 제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했을 때(그러니까 14년 전쯤에요) 서울에서 인천으로 출퇴근을 했었는데 그때 업무도 새로웠고 돌 지난 아이와 매일 전쟁을 하면서 출퇴근도 힘들어서 제가 매일 징징거렸거든요. 힘들다고. 왜 나만 힘드냐고. 그때 남편이 제게 그랬답니다. 남들도 힘들다고요. 너만 힘들게 멀리 다니는 거 아니라고요. 저는 그만 실소를 하고 말았어요.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때 저의 마음 상태가 중2였던 걸까요? 청소년기엔 호르몬이나 뇌의 기능상 공감능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해도 저는 왜 그랬던 걸까요?  


힘이 들 때는 나만 힘든 것처럼 느껴 저서 더 외로운 느낌이 들곤 하잖아요. 그 외로운 느낌은 주변 사람들과는 더 단절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해요. 그러니까 힘이 들 때 더 힘든 이유는  '나만 외롭다.'라고 생각 = 단절된 기분, 때문이라는 말이에요. 함께 있어도 우리가 외로운 건 아마 마음이 이해받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일거예요.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특히 수치감과 부적절감을 느낄 때 다른 사람들도 같은 경험을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는 인간 경험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자기 주변 세계에서 소외되고 단절된 느낌을 받기가 훨씬 더 쉽다.


타라 브렉은 자신의 저서 <받아들임>에서 '무가치한 느낌은 다른 사람들과 삶으로부터 분리된 느낌과 함께 온다. 결점이 있는데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악순환처럼 보인다. 부족함을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는 더 분리되고 상처받는 느낌이 든다.'라고 썼다. (from 러브 유어 셀프, 크리스틴 네프 저)


인간은 모두 나약하다는 사실,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각자의 어려움 속에서 발버둥 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저의 딸아이가 말했던 것처럼 남이 힘든 것과 내가 힘든 건 다른데 왜 이해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해요. 남이 힘든 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요.



보편적인 인간 경험에 대한 인식


이제 자기 연민의 두 번째 조건에 대해 얘기해볼게요.

두 번째 근본 요소는 보편적인 인간 경험에 대한 인식이라고 합니다. 말이 어렵게 느껴지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완전하며 누구나 실수를 하며 누구나 후회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힘들 때는 정말이지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힘들 거란 생각을 하기 어려워요. 각자 고통의 종류는 달라도 고통을 겪는 과정은 비슷할 텐데 말이죠.


우리가 인간 경험이 지닌 보편성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모두 불완전함과 실망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기 연민은 모두가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위로를 준다. 내가 힘든 시기에 느낀 고통은 당신이 힘든 시기에 느낀 고통과 똑같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항상 다 얻을 수는 없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 불평하고 어떻게 되어야만 한다는 좁은 시야를 고집한다. 모든 상황이 잘 굴러가야 한다는 믿음의 덫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뭔가 심각하게 일이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from 러브 유어 셀프)


저의 친정아버지는 아프셔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계십니다. 처음엔 왜 이런 일이 하필 내게만? 울 아버지에게만? 일어나는 것인지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처음 3년 동안은 아빠를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났었고 울 아버지 참 불쌍하다는 자기 동정에 헤어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간병을 가서 하루만 병실에 지내보면 알게 됩니다. 이해하고 깨닫는 데에 저도 시간을 걸렸지만, 세상에 아픈 사람은 많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플 수 있다는 것을 곧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연민에는 인간 경험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 내재되어 있어 강력한 치유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자신의 자존감과 소속감을 우리 모두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 두면 누구도 다른 사람들에 의해 거부당하거나 내쳐질 수 없다.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가 인류의 회원증을 소지한 정식 회원이며 자동으로 전 인류와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from 러브 유어 셀프)


작가는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말을 하고 있고(자기 연민이 애초 불교에서 온 개념임을 생각할 때) 말이 어렵게 느껴지지만 결국은 말하고자 하는 개념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나약하며 불완전하다는 사실, 이것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인간이라면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가끔 나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언젠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에 복직을 하던 때의 제 이야기예요. 돌을 지난 아이를 매일 어린이집에 울며불며 떼어놓고 출근을 하던 시기가 있었지요. 워킹맘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한 그리고 경험할 얘기들이겠지만요. 서울에서 인천까지 출퇴근을 했었는데 하루빨리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밖엔 들지 않았던 시기예요.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나 싶었던 시기, 온 세상천지에 나만 힘들고 외롭다는 생각으로 지독한 우울증도 앓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회사 창구에서 업체 사장님들의 서류를 검토하는데 나이 지긋하신 사장님의 굵은 손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참 어린 직원에게 잘 보이겠다면서 아이스크림을 양손 가득 사 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분의 굵어지고 거친 손가락들을 보고 부모님의 두꺼운 손도 겹쳐서 떠올랐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김 사장님은 저 손으로 힘들게 일해서 자식들 키우고 학교 보내고 하셨겠구나.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이 당연한 이치가 깨달음으로 오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때 저는 조금 철이 들었던 걸까요? 역시 자식을 키워봐야 성장을 하는 걸까요?


아마 또 힘든 일이 제게 닥친다면 저는 또 세상천지에 나만 힘들다며 자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조금은 이해하려고 노력은 할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이런 일은 올 수 있는 것이고 누구나 조금씩 힘든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적어도 떠올릴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뱃솟의 아기를 잃은 슬픔으로 힘든 부부에게 산부인과 의사가 위로를 전하면서 하는 말이 생각나네요.

"가끔 나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연민으로 바라본다는 말의 의미


자기 연민은 '함께 아파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자기 동정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함께 아파한다는 무슨 의미일까요? 자식이 넘어져서 아프면 부모들은 함께 아파하기보다는 화를 내죠.(웃음) 자식이 아픈 만큼 엄마도 너무 아픈데, 엄마도 아픈 게 당연한데도 표현은 그렇게 나오지가 않죠. 오히려 화를 내죠.  


얼마 전에 '유퀴즈온더블럭'이라는 프로에서 서울대 소아청소년 정신과 교수님 편을 주의 깊게 시청한 적이 있어요. 제 아이가 사춘기라서 더 공감이 갔을지도 모르겠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하기도 하고 저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갑자기 눈물을 쏟기도 하고 어느 날 아침엔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기도 합니다. 아침마다 늦잠을 자는 아이 깨우기가 왜 이렇게 버거운지요. 이 교수님은 청소년기엔 뇌의 변화로 인해 스스로의 조절 능력이 낮고 불안과 분노 등을 통제하기가 어렵다고 해요. 교수님이 부모님들께 조언하시길 이런 청소년들을 '연민'으로 바라보라고 합니다. '네가 감정의 파도 속에서 많이 힘들구나.' 하는 연민의 마음. 아이가 버릇없이 굴었다고 해도 그 순간 통제하려고 하거나 호통치지 말고 연민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해요. 그러기 위해선 부모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다니요. 저는 이 말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결국은 한 템포 쉬어가라는 말이겠지요. 아이의 상황이 힘들구나를 깊이 공감하는 시간을 가지고 연민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아이를 '귀한 손님'처럼 대할 수 있을 겁니다.


자기 연민(자비)은 가능성이다

- 일러두기: 연민이라는 말이 자비라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어요. 책마다 다르게 번역이 되고 있고, 심리학에서도 같이 혼용해서 사용한다고 해요. 영어로는 compassion.


공감과 자비가 호환되어 사용될 때도 있지만, 사실 같은 말이 아니다. 공감은 남이 느끼는 것을 느끼는 능력이고, 자비는 그 사람을 돕고 싶은 욕구이다.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도록 돕는 반면, 자비는 남을 돕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해 긍정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열어준다.(from 마음챙김) 


저는 결국 자기 연민(자비)이라는 말은 '가능성'이고 좋은 방향으로의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아파하는 마음에 도와주려는 시도가 더해지면 그것이 제대로 된 자기 연민일 거예요. 



참고서적 

- 러브 유어 셀프, 크리스틴 네프, 이너북스, 2019

- 마음 챙김, 샤우나 샤피로, 로크미디어,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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