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과 엄마 생각

by 시코밀

막내 여동생이 아기를 가졌는데 우리 집안에서는 유래가 없는 심한 입덧으로 고생을 하는 중이다. 먹지도 못하고 속이 메스껍고 먹었다 하면 물까지 다 게워내고 급기야 입덧을 진정시키는 약을 산부인과에서 처방을 받아왔다고 한다. 나나 셋째 여동생은 입덧을 거의 하지도 않고 수월하게 넘어갔었다. 입덧도 엄마를 닮는다고 우리들은 입덧 같은 건 하지도 않고 쉽게 태교를 할 줄 알았건만 막내 여동생만큼은 이제 예외가 되었다. 덩치가 산만해서는 딱 봐도 아이 잘 낳게(?) 보이는 녀석이 먹지도 못하고 매일 시름시름 앓다시피 하니 엄마가 근처에 살면서도 음식을 해주지 못해서 답답하신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온 입덧 약을 먹으면 잠시라도 뭔가를 먹을 수는 있지만 종일 몽롱하고 잠이 쏟아져서 하루 종일 잔적도 있다고 하니 우리 가족들은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 하고 막내를 안타까워한다.

먹고 싶은 음식도 없이 무엇을 먹을 때마다 게워낼까 두려워하는 막내를 보고 있자니 나도 나의 임신 시절이 떠올랐다. 남들 다 꺼려한다는 삼복더위에 아이를 출산한 나는 엄마가 해준 반찬들이 너무 그리웠었다. 나는 입덧도 안 하고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도 없었지만 그래도 시래기가 가득 들어가고 얼큰하게 끓여내는 엄마표 추어탕이나 메기탕(입맛이 참.... 토속스럽다.) 같은 음식들이 생각이 나서 주말이면 남편을 끌고 교외로 나가서 메기탕을 먹으러 다녔다.(서울에는 그런 음식을 잘하는 곳을 알지 못했으므로) 엄마가 해준 맛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아쉬움을 달래었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만삭의 몸으로 지하철 출퇴근이 너무 힘들었던 나는 출산을 앞두고 한 달이나 이른 휴직을 하였는데 날이 더워서 입맛도 없고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때는 오히려 더 먹는 게 귀찮아 지기 일쑤다. 그때 엄마가 시골 담양에서 반찬을 보내주셨었다. 스티로폼 박스에 아이스팩으로 중무장을 하고 김치에 여러 가지 나물반찬에 그리고 동치미! 동치미가 들어 있었다. 흰 무를 얇게 썰어 넣은 투명한 국물 맛은 시원하기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식당일로 바쁘실 텐데 동치미와 봉지 봉지에 담긴 나물 반찬들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었다. 아기를 가지면 다 그렇게 감상적이 되는가 싶었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의 동치미는 임신으로 인한 속 울렁거림을 단번에 잡아주는 마법의 음식이었다.

엄마는 입덧하는 막내에게도 이것저것 요리를 해주고 싶어 하시지만 엄마는 예전처럼 마음껏 요리할 시간이 없으시다. 아빠가 병원에 장기 입원하게 되고 엄마가 아빠의 24시간 밀착 케어를 시작한 이래 엄마의 김장 김치도, 엄마의 동치미도, 엄마의 추어탕도 모두 멈추었다. 그래도 지난 설 명절에는 들깨를 갈아 체에 밭쳐 그 국물을 아낌없이 넣은 엄마표 된장국을 보고 나는 환호했다. 시래기도 듬뿍 넣고 멸치랑 다시마를 동시에 넣고(따로 건져내시지도 않고) 끓이는 엄마표 된장국! '이게 얼마만이야~ '하고 소리치니 여수 셋째 동생도 '그렇지! 언니! 정말 오랜만이지' 한다. 우리 집은 아빠가 병원에 입원한 이래로 참 그리운 것이 많은 가족이 되었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가서 객지 생활에 지친 우리들을 달래주는 건 요런 엄마표 된장국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혼을 달래는 음식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엄마는 아빠의 병원 식사 중에 1/3 정도는 갈아서 아빠에게 드리고 나머지로 대충 때우시는 게 다반사다. 당뇨식으로 나오는 아빠 식사의 반찬은 늘 간이 심심한 편이라 엄마가 입맛을 잃을까 봐 걱정이다. 엄마에게도 힐링이 되고, 영혼이 치유받는 그런 음식이 있을까. 조만간 엄마께 홍어무침이라도 배달해 드려야겠다. 임신한 딸에게 반찬을 보냈던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참조; 사진은 전라도 담양 시골집 앞 저수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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