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일상 2

by 시코밀

어쩌다 아빠가 계신 병실에서 혼자 당번이 되어 아빠를 지킬 때가 있다. 이 말은 아빠의 세 끼 식사를 갈아서 뱃줄로 넣어 드려야 하고, 약도 녹여서 물과 함께 넣어드려야 한다는 말이다. 병원에서 나오는 식사 중 3분의 1을 모두 믹서에 넣고 갈아 배에 연결된 줄에 주사기를 이용해서 밀어 넣어드린다. 그리고 나면 나는 입안으로 음식을 넣어 내 이로 씹어먹는 것조차 죄송스러워서 '아빠. 이제 나도 밥 먹을게.'하고 말도 못 하고 아빠 얼굴을 등지고 보조 침대에 걸터앉아 급하게 밥을 먹었었다.

아빠를 보러 오는 서울에서 광주까지 KTX를 타고 가는 날이면 어딘가 모르게 내 가슴께는 얹힌 것 같은 심정이 되곤 했다. 병상에 무심하게 누워계신 아빠를 볼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눈물이 나곤 했다. 누가 막을 새도 없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느라고 아빠를 보자마자 나는 화장실로 냅다 도망을 갔었다. 아빠가 병상에 누워계신지 3년쯤 되었을 때 그때 어느 날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딸들의 심정이 오죽한데 매일 아빠 옆을 지키는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하면 우리 다섯 명의 형제, 자매들은 엄마 앞에서 모두 속 타는 마음을 숨길 줄 안다.

아빠의 병원 생활은 이제 엄마나 우리 자매들에게 이제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아무리 슬퍼도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현실이 되었다. 아빠 병실은 여기 광주 보훈병원에서도 이른바 '똥방'이다. 아빠 병실 환자들 모두 보호자나 간병인이 대소변을 받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아빠의 병상 대각선으로 건너편 병상의 할머니는 요양병원에서 욕창에 걸려 이곳으로 치료차 왔다고 했다. 치매가 오신 할머니는 남편은 못 알아보고 간병하는 아들에게 자꾸 남편이라고 했다. 엄마는 남편 얼굴도 못 알아보는 할머니가 안쓰러우신지 어쩌면 남편 얼굴도 잊어버리냐고 하셨다. 할머니는 욕창 때문인지 하루에서도 몇 번씩 아프다고 곡소리를 하셨다. 병실에 어느 누구도 시끄럽다고 타박하는 이가 없었다. 이 곳 아빠의 병실에서는 오로지 사느냐, 아니면 좀 더 사느냐 하는 문제만이 있다. 다른 것은 어쩐지 덤이거나 아니면 부담이다. 세상에 이런 삶도 있구나싶다.

그래도 담담하게 하루를 버티고 시간을 이겨내는 여기 사람들과 아버지,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엄마가 계시기에 나와 우리 자매들도 하루 아무탈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매일 시간을 이기며 사는 법을 배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