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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코밀 Sep 28. 2023

상담이라는 배에 올라타다

동기라는 이름으로 함께 출렁이며 나아가기

떨렸던 대학원 입학 면접은 어느새 기억의 저편으로 갔다. 줌으로 진행된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수님들 및 선배들의 환영 인사에 잠시 '신입생'임을 실감했다. 새로운 길에 대한 막연한 설렘과 더불어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함께 밀려오는 것 같았다.


나보다 먼저 같은 대학원을 입학하고 올해 초에 졸업한 사촌언니가 내가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 그랬다. 힘들어서 토할 때까지 공부시키는 곳이니까 각오하라고. 넌 체력이 저질이니 미리 홍삼이라도 먹어두는 게 좋겠다고, 했었다. 그때만 해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교수님들이 회의방에서 나가시고 선배들 하고만 남았을 때 선배들 중에 누가 그런다. 여기 공부하러 오셨으니 열심히 해야 한다고. 놀기만 하면 안 되는 곳이라고. 신입생 중 누군가가 선배들에게 졸업하고 바로 심리상담사 2급 자격증을 딸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다. 아마 신입생이라면 누구나 궁금할 얘기. 하나 돌아온 대답은 그게 가능한 일이지만 일단 그런 사람들은 드물다는 거었다. 게다가 대학원을 졸업해도 대학원 연구소에서 인턴쉽 과정을 2년 정도 거쳐야 상담사가 되기 위한 수련시간을 다 채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연구소 인턴쉽이 아니라면 스스로 발로 뛰면서 각자 개인 수련 시간을 채워야 할 것이다. 역시 이 길은 시작해 보니 생각보다 훨씬 험난한 길이었어!


그래도 나만 힘든 건 아닐 거야. 나를 포함해 동기들은 각자 직업이 있거나 혹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저마다 역할들이 하나 이상은 있는 사람들로 오로지 공부에 전념하기 힘든 사람들이 태반이 아닌가.


회사에서 업무 중에도 중간중간 과제며 발표 생각에 아, 공부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봤다. 게다가 힘들 때마다 과연 이 길이 맞을까? 늦은 탓에 남들보다 자주 불안해할 것이고 더 자주 혼자 출렁이겠지. 22명의 동기 중에 3분의 2는 나보다 어려 보였는데 몇 배는 더 열심히 살고자 하는 젊은 친구들의 열정 앞에 솔직히 주눅도 들었다. 나보다  연세가 있으신 동기 선생님들의 몇 배 더 값진 도전에 나의 용기는 보잘것없이 보였다


그래도 상담공부가 어쩌면 내게 퇴직 후 제2의 커리어를 만들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험난한 학문의 깊이에 대한 부담감 범벅으로 동기들과의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직업군에서 근무하는 우리들은 이제 '동기'라는 이름으로 상담이라는 배에 올라탔다. 배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아마 함께 출렁이면서 아직 보이지 않는 이정표를 향해 함께 파도에 맞서겠지. 파도는 때로 과제나 발제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논문작성과 공개사례 발표나 콘퍼런스 참석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괴롭게 그리고 더 강하게 만들겠지.


상황이 힘들 때 더 금방 친해지듯이 대학원 수업이 진행될 때마다 과제 쓰나미에 우리는 자꾸 가까워지고 끈끈해지려고 하고 있다. 누군가는 과자를 돌리고, 누군가는 참고도서 파일을 공유해 주고, 또 누군가는 심리검사 MMPI 척도 암기가 쉬워지는 방법을 기꺼이 공유해 준다.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배의 돛대를 세우려고 한다. 앞으로 더 큰 파도가 우리 앞에 선다 해도 함께라면 거뜬히 버틸 수 있으리라.


상담이론 교수님은 첫 수업에서 가장 먼저 우리가 직면해야 할 문제에 대해 과제를 내주셨다.


 '당신, 왜 상담사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서 참고 서적을 읽고 자신의 동기를 생각해서 작성해야 한다. 그러게 내가 왜 이걸 하고 싶고, 되려고 하는 것이지? 이렇게 어려운 일을? 먹고살 수는 있을까? 여러 혼란스러움이 내 앞에 있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위에 불안하게 서 있는데 안개마저 자욱한 느낌이랄까. 앞으로 잘 헤쳐나가길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낸다. 이 어려운 걸 해내는 자신에게 칭찬도 해주면서.


누가 그러더라. 멘털이 강한 사람은 처음부터 강한 게 아니고 더 자주 멘털을 붙잡고 있어서라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하고 흔들리는 나의 멘털은 다 나이 때문이라고 나이 탓을 하고 싶어 하는 마흔 중반 어딘가에 와 있는 나, 하지만 흔들리는 나를 더 자주 붙잡는 삶이 되길. 유연하게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는 삶이길. 너무 급하게만 달리지 않기를. 열정을 나눠 쓰며 쉬이 지치지 않기를. 느리게 출렁이더라도 조금씩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다 함께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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