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상담대학원 1학차를 끝내고 저의 경험과 느낀 점을 위주로 연재를 하고 있어요. 1학차 연재가 거의 끝나가고 있어요.
상담공부에 더 매진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서 안정적인 공기업을 덜컥 그만두고 계약직에 입사를 했다. 하지만 3일 만에 잘렸다. 그리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예전 직장에 돌아가 난 회사를 그만둔 게 아니라고 그러니 다시 다니게 해달라고 애원하듯이 떼를 썼다.
이것은 내가 최근에 꾼 꿈이다.
나는 프로이트 할아버지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꿈은 때로 정말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분명하게 알도록 도와준다는 점은 인정하겠다. 최근에 정신분석 강의를 화상으로 들었는데 상담심리사 1급을 가지고 있어도 오라는 데 별로 없다는 강사님의 말씀을 듣고 꽤나 심각했었나 보다. 대학원 수업 때 교수님들의 현장 상담사례들을 들으면서 마치 내가 곧 전문가가 된 것 마냥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었는데 현실의 직업 구하기는 영 딴판인가 싶었다. 과연 내가 지금의 안정적인 카드를 버리고(현재 나의 직장) 새 분야에 도전할 만큼 이 분야에 마음을 다해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막연한 나의 꿈에 대한 비전이 불확실하고 그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지금의 자리보존이 더 급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배는 이미 출발했다는 사실)
아래는 내가 미래에 실현시킬 꿈이다.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나는 지금의 직장은 보란 듯이 그만두고 개인 상담센터를 연다.
1층엔 심리학 카페를 차려서 상담 오는 사람들이나 지인들에게 커피도 제공하고, 사람들에게 쉼과 상담공부가 있는 열린 공간으로 제공한다. 내가 좋아는 도서들을 한쪽 벽에 쫘악 두르고 서점 같은 분위기면 좋겠다. 그림을 그리는 딸아이가 벽에 걸 그림 몇 점은 그려주겠지. 여건이 된다면 인테리어도 신경을 쓰고 직원을 두어 커피도 팔아야겠다.
2층엔 나만의 상담실은 여는 거다. 주말엔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집단상담을 실시해야지. 정기적으로 독서모임을 개최해도 좋을 것 같다. 간간히 학교나 기업체에 강의를 나가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겠지. 3층엔 놀이치료실이나 운동실을 꾸며서 초등학생 등 어린 내담자의 운동치료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면 좋을 것 같다. 4층엔 그림을 그리는 딸을 위해서 공방이나 화실을 만들어주어야겠다. 남편이 골프 연습장도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센터 청소를 책임지면 지하에 만들어줄까나. 누가 들으면 물주인 줄 알겠지만, 뭐 생각은 자유고 상상의 규모엔 한계는 없으니까. 음, 이 글을 쓰면서도 생각 뿐인데도 과연 내가 할 수 있겠어하는 의심과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앞 일은 모르는 거니까. 내가 이렇게 야먕에 찬 여자인지도 몰랐으니까. 그러려면 열심히 해야겠다.
직장생활과 주 2회 학교수업까지 동시에 해내느라고 정말인지 23년도 하반기를 쉴 틈이 없이 달렸다. 나의 꿈은 아직 안갯속처럼 아리송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심리학 공부는 가끔 내게 숨 쉴 틈을 마련해 준다. 입학 당시 오리엔테이션에서 남을 돕기 위해 시작한 상담공부로 인해 되려 위로를 받았다는 어느 선배의 인사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공부에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은 어떤 것인가. 알 것 같으면서 모호했지만 그 의미를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매주 2회 학교 가는 길이 멀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막상 지하철에서 내리고 학교에 도착하면 나도 모르게 휴~하고 숨이 쉬어졌다. 회사를 뒤로하고 지금 나는 학교에 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한 학기 동안 공부는 내게 세상의 어지러운 일들로부터 나를 더 굳건히 지키는 일이 되어 주었다. 어쩐지 작년 한 해 나는 많이 외롭고 지쳤었다. 23년도 초에는 근무지를 이동했고 업무도 바뀌어서 새 환경과 업무에 적응하느라고 에너지를 많이 써야 했었다. 그럴수록 나 자신을 더 바쁘게 몰아치고 싶었다. 그것이 회피라 할지라도 기꺼이 나는 공부 속으로 던져지길 원했다. 제출해야 할 과제들은 내게 직장 동료들의 상사 험담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수단이 되어 주었고, 발표준비로 바쁜 마음은 때로 타인들의 업무요청이나 기타 자잘한 성가심에서 나의 정신을 오롯이 한 곳으로 모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동기 선생님들과의 톡 단체방은 내게 쳇바퀴 같은 생활 속에 신선한 바람을 주었다. 불안하고 불확실할지라도 미래에 대한 상상은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내 어깨에 내려앉는 허무함으로부터 고요히 나를 지킬 수 있었다.
많은 상담이론들이 인간인 나를 들여다 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차치하고도, 신경 쓸 것이 있다는 기쁨,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충만함, 새로운 공부가 나를 성장시키리라는 믿음은 학기 내내 나와 함께 했다. 이 마음들은 불현듯 올라오는 일상에서의 외로운 마음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과의 괴로운 관계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힘이 되는 걸 느꼈다. 필요 없는 에너지를 아끼게 되고 덜 생산적인 생각은 하지 않고, 보다 나를 위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앞에 흐르는 시간들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흐를 것이라는 확실하고도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단조로운 업무의 일상 속에 그동안 오래도록 안전한 게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내가 이제는 뭔가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일이든 공부는 혹은 다른 어떤 것이든, 부재의 고통보다 기꺼이 받아들임의 고통은 말 그대로 고통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공부는 이토록 내게 많은 위로를 주고 있었다.
배운다는 것 자체도 좋지만 동기 선생님들의 따듯한 인사와 격려들도 좋았다. 시험과 발표 때마다 서로 아낌없이 자료를 내어주고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나도 도울 것이 없나 생각해 보게 되고, 이 집단에서 도움이 되고자 한다면 결국 나 스스로도 역량을 키워야겠구나 하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동기 선생님들과의 연말 송년회는 치킨집에서 열렸는데 황송하게도 동기 선생님 한분은 전체 멤버에게 손 편지를 쓰셨다. 그리고는 우리 너무 친해질 새도 없이 한 학기가 너무 빨리 지나갔으며 나머지 세 학기도 너무 빨리 지나갈까 봐 조바심이 난다고 하였다.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이 아닐까 해서 더 조바심이 난다.
우리는 각자 너무 다르고, 일하는 분야도 각양각색이며 연령대나 생각들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하는 상냥하고도 친절한 집단이라니. 내가 다름 아닌 상담이라는 학문을 선택했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이들과의 인연으로 나의 인간관계의 스펙트럼이 한 차원 더 넓어졌다고 생각된다. 우리 만남과 연대에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남은 세 학기도 여전히 이들과 함께 꿈꾸면서 나아갈 수 있겠지. 그 길은 당연히 어렵고 험난하겠지만 함께라서 조금 덜 외로울 것이다. 몇 년 안에 달라질 나의 모습과(물론 교수님은 대학원 졸업으로 당장 전문가가 되는 일은 없을 거라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조금은 변화될 나의 정신과 더 전문가적인 역량으로 미래의 센터장?이 될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음... 꿈은 크게 가지는 게 좋으니까) 조금 더 상담이라는 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보고자 한다. 체력이라는 엔진이 나를 버텨줄 수 있게 운동은 더 해야겠다. 나빠지는 시력을 위해 영양제도 챙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