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불안함과 모호함에 맞서는 일
어서 와, 공개사례 발표회는 처음이지?
오늘은 학교에서 상담사례에 대해 공개 사례발표회가 있는 날이다. 수업은 오후 6시인데 사례발표회는 4시라서 2시간 시간휴가를 올리고 학교로 향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사례발표대회에 참관자로 참석을 했다. 입구에서 물과 김밥을 받고 강당으로 들어섰다. 대학원 입학 이래로 늘 배가 고파오는 건 나만 그러는 건 아니겠지. 특별할 거 없는 그냥 기본 김밥인데 세상에, 저 세상 맛이다.
상담사가 되려면 상담 수련을 하는 와중에 자신이 상담을 직접 실시하고 필요하다면 상담 초기에도 교수님들께 수퍼비전을 받아야 한다. 공개사례 발표는(아직 내가 파악한 바로는) 상담을 끝낸 후 상담과정과 결과에 대해 분석하고 그 진행과정을 발표하는 것이다.
4학차이면서 논문까지 준비 중인 선배님의 상담 사례 발표가 끝나고 다른 선배들의 따갑고도 섬세한 질문들이 한참이나 오가고 나면 학우들의 날카로운 질문보다 몇 배는 더 아픈 세 분 교수님들의 자칭 순한 맛, 중간 맛, 매운 맛 순으로 사랑의 매질이 기다리고 있었다. 뭐랄까. 공사례(공개사례발표회)는 공개적으로 자아비판을 하는 자리라고 해야 할까. 다른 점은 교수님들의 애정 어리면서도 그만큼 매운 지적과 조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픈 만큼 성숙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았다. 진정 몸소 깨져야만 상담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 그래서 수련이라는 말은 참으로 묵직하다.
성장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아픈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뼈아프게 느끼는 자리였다. 언젠가 나도 저 자리에 있겠지 하는 아직은 막연한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아직은 생소하고 겁이 나고 두려워지는 모든 것들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 먼 여정을 시작했지만 두려움으로 나가는 한 발 한 발이 떨린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미 앞서 간 길이라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된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가끔 힘들어 넘어질 때마다 나를 한번 더 일어서게 할 것이다.
강당에 들어선 많은 학우들과 선배님들 그리고 교수님들은 귀한 시간을 내었고, 누군가는 물과 간식을 준비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일정을 카페에 올리고 수련 실적을 위해서 출석체크를 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강당을 섭외하고 빔 프로젝트와 책상들을 세팅해야 한다. 내가 만약 사례자로 나선다면 이 시간을 함께 공유한 사람들에게 헛된 시간이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느낌만은 확실하게 들었다.
발표회 내용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결국은 몸이 아픈 이유는 마음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여기저기 아프지만 몸에는 이상이 없는, 그래서 상담은 아픈 마음에 대해 더 잘 알고자 할 때 더 필요 한 것 같다. 많은 경우에 내담자들은 스스로도 잘 모르는 문제를 가지고 상담사에게 올 것이다. 상담에 온 내담자가 콕 집어서 내 문제는 바로 이거야라고 말해주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내담자가 얼마나 있을까. 설사 그렇다 해도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점점 다른 본질적인 원인들이 튀어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상담사가 되는 일은 우리 인생이 그러하듯이 끝없는 모호함과 불안함에 맞서는 일이다. 상담자가 내담자가 힘들어하는 불편함에 대해 집중하도록 노력한다 해도 내담자들은 끈질기게 문제 속에서 허우적거릴지도 모른다. 상담은 내담자도 모르는 문제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더 실체에 다가가려고 애쓰는 일일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모호함에 맞서야 할까. 그 끝이 있기나 할까. 상담이론 시간에 교수님이 그러신다. 여러분이 2년 공부하고 갑자기 전문상담사가 될 거 같으냐고. 그런 일은 없을 거지만 뭔가 달라져 있을 건 분명하다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 아직은 안갯속에서 보일 듯 말듯한 이정표를 향해 조금씩 불안하게 흔들리며 나아가고 있다. 나도 잘 모르는 나의 미래에 대한 모호함과 이룰 수 있을지 두려운 나의 꿈에 대한 불안함에도 이제는 함께 맞서야겠다. 흔들리더라도 언젠가는 다다르겠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