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기 MMPI 검사받고 싶은 사람 손?"
아직 수련을 시작도 하지 않은 내게 잠재 고객이 생겼다. 모두 나의 영업에 걸려들었다. 다름 아닌 동호회 사람들. 토요일 밤 9시에 수업이 끝나고 늦었지만 배고픈 우리들은 오래간만에 테라스가 넓은 치킨 집으로 뒤풀이를 갔다. 공부가 힘들 땐, 아니 뭐든 짜증 나는 것이 있다면 땀 빼는 게 최고다. 아닌가. 땀 빼고 먹는 맥주와 치킨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과 즐거운 수다까지 함께라면 이 보다 완벽한 조합이 있을까.
이미 전문가가 된 마냥 심리검사 해주다고 호언장담을 하였더니 아무것도 모르고 치킨을 뜯던 동호회 사람들이 나의 제안에 눈을 반짝이며 손을 들어준다. 나의 수련에 작은 힘이 될 잠재 고객들이다. 심리검사도 시행 후엔 지도교수나 공인된 전문가에게 슈퍼비전을 받아야 한다. 주말이면 춤추러 나오는 동호회 사람들에게 무슨 심리적 문제가 있을까 싶지만(이 사람들은 항상 좋아 보여서) 그럼에도 마음의 문제는 사람을 가리는 법이 아니므로, 여하튼 당신들은 나의 수련여정에 걸려들었어.
아직 배움이 부족하니 일단 기다려보라고 했다.(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심리검사 수업이 이제 두 달째인데 뭘 하긴 무리지. 이제 Mmpi 척도들에 대해 아주 조금 지식을 익혔을 뿐이다. 교수님은 동기들끼리 심리검사 해석 스터디도 해보라고 하시는데.. 과연 시간이 날지... 그래도 나중엔 시간을 내어 시행한 심리검사 결과 분석을 가지고 슈퍼비전을 받아야 하는데, 추후 실력 있는 상담사가 되는 길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 수련실적으로도 인정되므로 상담사 자격취득에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MMPI성격검사는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의 줄임말로 1943년도 미네소타 대학병원에서 정신건강과 관련된 진단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개발되어 1989년에 MMPI-2가 개정되어 출판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병원 등 임상장면이나 비임상장면(상담센터, 학교, 기업, 법정)에서 정신병리의 주요 증상이나 성격특성, 학교나 기업에서는 구성원들의 심리적인 적응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MMPI검사지의 구매나 해석은 정신건강 자격증이나 학위를 포함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자격이 요구된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내담자에 따라서는 심리상담을 하기에 앞서 심리검사를 먼저 받기도 한다. 스스로 심리검사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담과정에서 상담사에 의해 추가로 실시하기도 하는데 내담자의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어 기본적이고도 필요한 검사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MBTI 가 아니면 대화가 어렵다. 아니 MZ세대와도 MBTI 유형만 안다면 어색한 대화도 충분이 아이스 브레이킹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 MBTI의 이론적 기초를 만드신 융 아저씨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8개의 범주에 모든 인간을 범주해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너도 나도 알고 잇다.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는데 나보다 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는 이 세상에 무결점의 심리검사 툴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MMPI는 아직까지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검사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나 스스로도 잘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기에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MMPI 검사와 함께 TCI검사(기질 및 성격검사)와 SCT(문장완성검사) 검사 결과를 함께 사용할 수 있다면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보다 깊이 내담자의 상황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아동이나 청소년이라면 HTP(나무집사람 그림검사) 검사나 KFD(가족화그림 검사) 검사라는 투사 검사도 함께 사용한다면 내담자의 현재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더 잘 알 수 있다. MMPI 결과에서 나오지 않던 다양한 내적 문제들이 이러한 투사 검사를 통해 보다 깊은 내담자의 심리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첫 수업부터 심리검사 수업을 받았다. 이번 학기는 주로 MMPI와 웩슬러 지능검사에 대해 다룰 예정이라고 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다양한 심리검사 툴에 대해서 빨리 배우고 싶어서 아니, 배움이 늦었다는 생각에 1년 과정의 심리검사 수련 특강도 신청하였다. 특강 때 여러 케이스들을 두고 어떤 경우일 거 같냐고 교수님께서 질문을 하셨는데 답하는 족족 다 틀렸다. 하. 이래 가지고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가능할지, 내게 과연 상담사의 자질이 있을 지하는 생각에 기가 죽었다. 머 아직 처음이니까 하고 자위하기엔 마음 한편에 '이런 능력이 수련한다고 나아질까.'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배움의 기능은 놀랍다.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알아가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는 사실에 매료가 되는 것 같다. 이를 잘 사용하려면 나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어서 빨리 동호회 사람들에게 미끼를 던지려면(어설프게 해석해주지 않으려면) 낚싯대를 준비하고 떡밥도 잘 마련해 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