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대학원 1학차에서는 상담이론, 이상심리, 발달이론, 그리고 심리검사에 대한 과목을 배웁니다. 저의 매거진 연재를 통해 나만의 심리상담이론 해석과 대학원 적응기를 쓰고 공유하고 있습니다.
상담대학원은 과제와 발표의 연속이다. 매주 나에 대해 생각해 보기 과제는 말 그대로 상담이론을 내게 적용해 보고 작성해야 해서 비록 1장짜리라 해도 여간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다. 나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든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어색하다. 가장 친한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색한 사이. 나와의 사이.
펄스의 게슈탈트 상담이론을 배우는 시간에 앞서 자신의 미해결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써보는 과제가 주어졌다. 게슈탈트 상담이론에서 미해결과제란 과거의 일어난 일이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아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제로 그 문제가 매듭지어질 때까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말한다. 그것은 분노나 미움. 두려움 혹은 죄책감일 수도 있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은 내게 남아서 내 마음을 빼앗아가서나 불가항력적인 충동의 모습으로, 신중함이나 혹은 에너지 소모로 나아가 패배적인 양식으로 나를 괴롭힐 수도 있다. 분노의 마음들은 언제든지 그 모습일 바꾸어 가면서 우리를 괴롭히게 마련이다.
과제로 제출된 나의 미해결과제는 한 번씩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옷이나 구두, 가방 등과 같이 외적인 치장과 관련된 물품에 대한 과잉된 구매욕구이다. 비슷한 물건이 있는데도 또 산다든가, 한 가지만 있어도 되는 옷을 색상별로 구입한다든가, 고가의 옷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구매한다거나, 구두를 사러 갔다가 한 켤레만 사지 않고 여러 종류를 사 오거나 하는 일인데 물론 수입과 지출을 잘 생각해서 결정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가끔은 필요 없는 물건을 사는 자신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 정도 소비는 남들이 보기에 과하다고 생각이 안 될지도 모르고 소비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를 테지만, 문제는 나 스스로가 과소비를 한다고 생각해서 괴롭다는 것이다. 결제했다가 한 시간도 안 되어 바로 취소하고 가끔은 물건을 샀다가 반품하는 행위를 반복하기도 한다. (구매 후 찾아오는 내 죄책감의 근원에 대해서도 한 번은 고민을 해봐야 하긴 하다.)
미해결과제의 생성 배경
아이를 출산하고 아이가 돌 때 즈음 친정에서 며칠을 보내러 간 적이 있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내용인데 아빠가 나 없을 때 ‘왜 큰 애는 늘어진 티셔츠만 입느냐고’ 엄마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내가 입고 걸치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아했나 보다. 그 당시 아빠의 말이 내심 서운하게 들렸던 것 같다. 그 말 자체는 누가 들어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부모님에 대한 여러 가지 서운함들이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이후로는 옷을 많이 사게 된 것 같다.
(내 분석에 의하면) 집안에서 나는 장녀이고 첫 손주를 낳았는데도 부모님은 내가 출산한 후에 올라오셔서 몇 시간 만에 바로 내려가셨다. 남들은 다들 친정의 도움을 받아 몸을 푼다는데 생업으로 바쁘셨던 부모님은 내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그때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나중엔 친정도움을 받으면서 회사를 다니고 승진 시험도 준비하는 부러운 직장동료들을 보면서 혼자 서운했던 것 같다.(몸이 회복이 안 되어 입주 도우미를 쓰며 산후우울증을 호되게 경험함) 그러나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서운할 겨를도 없이 억제된 감정들이 나의 경우엔 소비로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야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서운한 생각은 안 하지만 나의 소비 습관은 여전히 남아서(여전히 진행 중이라서) 가끔은 나의 재정 상태에도 문제를 주기도 했었다. 지금은 조절 중이다.
반복회귀 게슈탈트, 해결되지 않아 반복되는 나의 문제
펄스에 의하면 미해결과제는 늘 의식의 주변을 서성이면서 신체적 불편감으로 남음으로써 해결을 요구하려고 떠오른다고 하였다. 나의 구매행위도 처음에는 자중해야지 했다가 습관적으로 물건을 구매(클릭)하게 되는데 이는 의식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던 것이 차츰 ‘습관화’되어 의식에서 잊힌 채 반복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내 행동이 습관화되면 알아차리기 힘들어진다. 나의 소비욕구(미해결욕구 혹은 미해결과제)는 해결되지 못해서 자꾸 나를 따라다니면서 주된 동기가 된다.
미해결과제를 완결시키려는 경향성은 그 대상이 주양육자에서 다른 중요한 대상들에게도 전이된다고 하였다. 과거 힘들었던 출산시기에 부모님께 온전히 도움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관심과 인정의 욕구가 나를 치장함으로써(아버지의 서운한 말과 더해져서) 배우자나 친구, 동료 등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애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애석하게도 펄스에 의하면 내가 미해결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사용하는 현재의 방법들이 유연성이 부족하고 비효율적이며 나의 현실과도 맞지 않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구매를 하는 순간에는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겉모습만으로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거란 기대를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대신 나의 깊은 내면을 알아차리는 것이야 말로(지금-여기 here and now를 알아차리는 것) 미해결 욕구를 해소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반복회귀 게슈탈트들이 자동화된 행동방식들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니 이를 ‘탈자동화’ 하도록 알아차림을 통해 새로운 행동가능성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나도 알아차렸으니 머지않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인간은 알아차릴 수는 있지만 고질적인 습관들을 바로 끊어내지는 못하는 동물이다. 한번 변화했다고 쭈욱 변화된 모습으로 살기 어렵다. 하지만 알아차렸고 반성하고 그리고 매번 노력하다 보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많은 심리학자들은 인간을 변화가능한, 스스로 창조적인 삶을 개척가능 한 존재로 보지 않았던가. 나도 찬성한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그러려면 나 자신과 친해지고 더 얼르고 달래고 때론 혼도 내면서 잘 데리고 가봐야 하겠다.
여러분들의 미해결과제는 무엇인지. 그것들이 계속해서 나쁜 쪽으로 내 삶에 불쑥불쑥 매번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가면을 쓰고 나타나 나를 괴롭히게 두지 말자.
내일은 당신의 영역이므로. 당신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