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코밀 Jan 11. 2024

엄마의 명품백과  나의 방어기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내면을 투사하다

엄마가 23년도 12월에 칠순을 맞으셨다. 오랜 아버지의 간병으로 힘드실 엄마를 위해 짧게라도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으나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가 갑자기 위독하기라도 하면 빨리 달려오기 힘드니 국내로 가자고 하셨다. 진도에 새로 생긴 고급 리조트에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했지만 결국 엄마를 모시고 갈 수 없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위독해졌기 때문이다. 여하튼 물거품이 된 여행 때문에 낙심해 있는데, 여행 대신 엄마가 그동안 원하셨던 명품백은 어떠냐고 둘째 동생이 제안을 했다. 다른 동생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보니 다들 좋다고 하고 엄마 자신도 평소 원하셨던 품목이라 마음에 들어 하셨다.


다행히 여행을 위해서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아둔 경비가 있었다. 막내 남동생까지 총 5명이 각자 50만 원씩 모아져 있었다. 그래서 조금만 더 보태면 사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여행을 가더라도 목돈이 들어가니 그것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한 텐데 어쩐지 나는 그리 마음이 편하질 못했다.


엄마가 자꾸만 비싼 명품백을 원하시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물론 엄마가 비록 24시간 병원에서 아빠를 하루 종일 밀착 케어를 한다 해도 주말엔 친구 모임도 있으시고, 경조사로 간간히 외출을 할 일이 있으시긴 하다. 모임에서는 친구분들이 그렇게나 자식들이 사줬다면서 명품백을 들고 나와 자랑을 하기도 한다고 동생에게 전해 들었다.


본인도 분명 직접 살 형편은 되셨지만 이왕이면 자식들이 사주면 더 자랑할 가치가 있다 생각하신 것 같다. 자식 자랑이면 어디 가도 안 빠지실 엄마는 그것이 늘 갖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그래도 굳이 그렇게 비싼 가방이 나이 드신 분이, 왜 필요한지를 이해를 못 하겠다며 내심 속으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가방하나 얼마나 한다고, 그간 고생하신 엄마를 위해 그거 하나 못 해 드리나 싶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게도 죄책감이 밀려왔다.


대체 왜 이렇게 명품백을 원하는 엄마가 싫은지 나는 또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속이 시끄러운지 자꾸만 무엇인가가 속에서 올라왔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길에 앞에 놓인 많은 계단을 올라가다 갑자기, 정말로 갑자기 알게 되었다. 싫은 내 모습을 그만 엄마에게 투사를 했던 것이라고.  


작년에 나는 금액이 만만치 않았지만 하나 번듯한 게 있으면 다른 것들은 눈에 안 보일 거야 하고 명품백을 하나 장만했었다. 가격만큼이나 크고 그럴싸한 이유가 필요했었다. 이제 나이도 있으니 이런 게 있어야지, 고생한 나를 위해서 내가 이런 거 하나 못 사나, 앞으로 더 열심히 회사를 다니면 되지, 온갖 합리화와 핑계가 필요했다. 처음 몇 달은 좋았다.


하지만 대학원 학비가 늘 마음 한편에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다가오는 새해의 4월엔 막내 남동생 결혼식이 있어 큰 누나로서 하다못해 침대나 냉장고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욕심이 생겼다. 지출해야 할 목돈을 생각하니 갑자기 쪼들리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구석의 가방을 보며 저걸 중고매장에 가지고 가서 팔아야 하나 심한 고민이 되기 시작했고, 이내 비싸서 장롱에 모셔만 두고 자주 매지도 않을 걸 왜 샀나 하고 후회가 밀려왔다. 이 돈이면 남들은 며칠 국내 여행도 다녀올 텐데, 다음 한 학기 대학원 등록금에 보태면 안 쪼들리고 좋을 텐데, 우리 집 노묘 병원비에 녀석들 몇 년 간식과 사료는 살 수 있을텐데 하며 매몰된 기회비용을 생각하니 나 자신이 한심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물욕에 찌든 마음이 가득 차 있는 자신을 보는 것도 영 힘이 들었다. 나는 내가 싫었던 것이다. 내가 싫은 나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투사를 해버린 것이다.


정신분석 상담이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마 방어기제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투사(projection)는 말 그대로 던지는 것이다. 내가 나의 내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이나 생각을 외부 세계로 옮겨놓는 무의식적 과정이며 방어기제의 한 형태이다.(네이버 사전) 방어기제란 또 무엇인가. 간단히 언급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불안을 경험하게 되는데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정신적인 책략이다. 높은 가지의 포도를 먹을 수 없었던 여우는 저렇게 신걸 누가 먹겠냐며 자신이 편할 대로 합리화를 해버리는 이야기인데, 이는 '합리화'라는 가장 널리 알려진 방어기제의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나 스스로 받아들이 수 없는 내 안의 허영심을 그만 엄마가 마치 허영심에 가득 찬 사람처럼 (엄마에게) 투사를 해버린 것이다. 한번씩 남편은 내게 지름신이 강림하여 명품백을 원하는 나를 보고도 이해하지는 못해비난은 하지 않았었는데, 마음속으로 나는 엄마를 비난했다. 솔직히 명품백이라는 품목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여행을 갔더라면 그보단 더 비용을 지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나는 우리가 여행지에서 함께 보냈어야 할 시간과 그 가방의 가치를 엄마가 동일시하는 것 같아서 혼자 더 오버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제 알았으니 나를 포함해서 모두에게 비난은 하지 말자고 나를 토닥여본다. 돈의 가치보단 엄마의 마음이 더 중요한 거니까. 그거면 된 거라고 나도 다시 한번 합리화를 해본다.

나란 여자, 심리학 배운 여자니까.



Picture by Sweet Eunmi.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과 염려의 한 끗 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