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상담대학원 1학차를 끝내고 저의 경험과 느낀 점을 위주로 연재를 하고 있어요. 이번 글은 이야기치료에서 얻는 저의 깨달음 위주로 적어봅니다.
1학차의 (23년도) 상담이론 수업이 마무리되고 마지막으로 한 학기 동안 가장 흥미로웠던 이론과 새롭게 알게 된 것에 대해 쓰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1학차만이 쓸 수 있는 과제일 것 같았다. 가장 흥미로운 이론이라니. 어떤 이론이 더 나은지 우리가 감히 저울질할 수 있겠는가. 내게는 일단 제일 익숙하지 않아 생소했던, 학기 중 제일 마지막으로 발표된 포스트모더니즘에 근거한 상담이론 중 하나인 이야기치료를 선택했고 핵심개념 중 꼭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어 지면에 옮기기로 하였다.
사람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관이 다른 것은 어쩌면 포스트모더니즘 관점에서 볼 때 개개인은 개인만의 고유한 관점과 개념을 구성한다고 보는 개념과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해서 어느 개인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쉽사리 그것을 병리화하고 범주화하는 것은 특히나 상담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내담자는 각자 자신만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관계적 맥락 안에서 스스로든 아니면 타인에 의해서든 만들 수밖에 없었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이야기 치료에서는 문제를 외재화한다. 개인의 문제는 비단 개인이 만든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적 구조들은 우리로 하여금 비합리적인 가치관을 갖게 하니 말이다.) 상담사는 내담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성할 수 없었던 이유나 배경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고, 내담자의 문제를 상담자 자신의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편견 없이 바라볼 바른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 치료란,
이야기 치료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호주에서 가족치료사로 활동 중인 마이클 화이트에 의해 개발된 상담이론으로 인간이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과정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야기 치료의 출발은 가족 구성원의 행동방식이 아닌 그들이 의미를 구성하는 방식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본다.
여기 자신을 무능하고 따분한 사람이라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가진 내담자가 있다고 하자. 이런 사람에겐 대인관계 사건의 의미 자체를 좀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자신을 신중하고 진지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로 자신을 무장할 수 있다면 그가 앞으로 경험하는 대인관계에서의 사건의 의미들이 전부 새롭게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 내담자가 자기 패배적인 인지. 즉 자신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하는 이야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물꼬를 튼다면 이에 상응하는 행동 습관을 지니게 될 것이다.(참고 문헌에서 부분 발췌)
활발함과 산만함의 경계는 어디?
여기 다른 아이가 있다.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과잉된 행동들과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심심치 않은 트러블로 인해 적응력이 떨어지는친구이다.(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들어주신 예시인데 자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아 제 스스로 이야기를 구성해 보았어요.) 약간의 따돌림과 부모와의 마찰도 생겨난다. 여기 부모가 아이에 대해 구성한 지배적인 이야기는 이러하다. 아이는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과잉된 행동으로 친구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그러한 마찰은 왕따문제를 일으킬 때도 있고 아이는 아이대로 외로움과 소외감에 더 화를 참지 못하고 분노를 조절하기 어렵다. 이러한 내용이 지배적이다 보니 아이의 문제행동이 계속 악순환되어 일어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가 스스로 만드는 자신의 이야기는 보통 가족이나 또래 등 주변인들에 의해 낙인처럼 지워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배적인 이야기란 개인의 삶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강력한 자료가 되는 내용이다. 이렇게 형성된 지배적인 이야기는 개인의 과거와 현재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더 중요한 것이다. 반면에 대안적인 이야기는 내담자의 강력한 영향력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도 내담자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재해석하고 보다 만족스러운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말한다. (네이버 사전 참조)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이 아이의 지배적인 이야기에 가려버려 보이지 않은 대안적인 이야기는 없는 것일까. 집중력이 약하고 주의가 산만한 것은 단지 다양한 것에 호기심이 많아서 주의력 전환(Attention shifting)이 빠른 아이는 아닐까. 감정적이기보다 감정선이 섬세하고 그래서 대인관계에 대한 관계 맺기를 더욱 원하며, 다른 아이들에 비해 활발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아이는 아닐까. 타인에게 자신의 과업을 보여주기를 좋아하고 아이들을 통솔하는 능력이 오히려 뛰어나거나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해내는 멀티 태스킹 능력이 높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오히려 강점을 끌어내고 도와주기 위해 부모와 교사 등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없을까. 우리는 얼마든지 대안적인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상담사는 내담자나 내담자의 가족관계에서 단순히 지배적인 이야기에 함몰되어 버리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교수님도 그런 의미에서 예시를 들어주셨으리라고 본다.
상담사는 지배적인 이야기에 함몰되기를 거부하고 대안적인 이야기를 찾는 사람
공개사례 발표시간에 교수님들의 슈퍼비전을 듣고 있자면 매번 깨닫는 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어떤 내담자의 힘들어하는 사례를 들으면서 내담자는 피해자, 내담자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는 가해자인 것처럼 이분적 접인 사고를 나도 모르게 하는 것이다. 어쩜, 저 엄마 왜 저래. 세상에 애가 얼마나 힘들었겠어.라는 식으로 내담자의 편을 들게 되고 혹은 누가 봐도 못 미더운 내담자라면 아니,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좀 해보지라는 식으로 섣부른 조언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 역전이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상담자는 그들의 지배적인 이야기에 가린 대인적인 이야기를 찾아내는 눈을 키워야 하는 사람이다. 놀랍게도 교수님들은 기가 막히게 대안적인 이야기들을 찾아내셨다. 나의 편협한 사고의 흐름이 일순간 다른 방향으로 물꼬를 튼다. 매정하고 못된 엄마,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약하고 배우자에게 부모에서 버림받아 비통한 엄마,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자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담자는 매번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자신을 더 깊은 구렁텅이로 내모는 등의 지배적인 이야기 속에서 교수님들은 내담자의 대안적인 이야기를 능숙하게 끌어낸다. 공개사례발표회는 내게 내담자가 지배적인 이야기 속에 숨어버린 그들이 가진 자원과 강점을 찾아내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안내해 주는 사람이 바로 상담사라는 것을 알게 하였다.
스스로 지배적인 이야기에 눈이 가린 내담자는 더 이상 앞을 보기 어렵고 그래서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가 무섭다. 부모에게 버림받는 사람은 또다시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서 친해질 만하면 자신이 먼저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는 등 과거의 생활양식에서 터득한 삶의 패턴을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한다. 눈이 어두워진 내담자를 보호하고 눈앞에 가려진 두껍고(지배적인 이야기는 두껍다) 어두운 찌꺼기를 걷어내어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재검토하게 하고 재작성하게 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비단 꼭 이야기치료가 아니라도 모든 상담의 궁금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사람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재단하고 나와 다르거나 이상하다고 해서 섣부르게 범주화하지 않고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구나 생각했다. 아무리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내담자라도 그들의 가진 강점이 있으며 그들 역시 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방어막을 치며 살았던 많은 방법들이 있었음을 일깨워서 인정해 주며 보다 적응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상담사라면 좋겠다.
많은 상담이론들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고 다른 듯하면서도 겹치는 부분들이 있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아마도 앞서 살았던 상담의 전문가들은 인간을 여전히 스스로 성장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창조적인 존재로 본다는 점도 놀랍다. 인간 결정론을 내세운 프로이트의 초기 정신분석이론을 제외하면 인간은 의식적인 경험을 근거로 주체적인 판단 및 행동을 하는 존재이며 스스로 더 나은 것을 선택하여 판단하고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경향성을 지닌 존재라고 본다는 점 말이다.
인간은 한번 좋은 것을 맛보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도 있다고 하는데 나도 그것을 믿고 싶다. 상담사는 내담자가 지긋지긋한 투사적 동일시의 고리를 끊고 상담자와 새로 구축한 인간관계의 형태에서 재 양육을 경험하고, 이렇게 재구성된 경험으로 인해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살아가길 인도하는 사람이라 믿는다. 나의 가까운 미래엔,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새로 구성할 수 있게 그들을 보다 편견 없이 바라보고 가능성을 기본으로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안내자가 될 수 있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