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골에서 만나는 나의 봄날

by 시코밀

갑자기, 아주 갑자기 친정에 가겠다고 남편에게 얘기한 건 꼭 입원 중인 아빠 때문만은 아니었다. 웬일인지 남편에게는 나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시골집 앞마당에 피는 꽃들과 꽃핀 화단에 오는 길냥이들과 그리고 그것들을 다 보고 있을 저수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을 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특히 이 봄날에.


코로나 19가 한국에서는 이제 거의 수그러들고 있는 분위기지만 아직도 대충교통을 이용해서 서울에서 지방까지 가긴 뭔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2시간이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긴 했지만 남편을 이기고 기어이 SRT기차표를 끊었다. 2시간 동안 마스크를 쓰는 일은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말 간병인을 고용한 덕에 주말은 그나마 여유가 생긴 엄마를 대동하고 시골집엘 갔다. 엄마가 30년 넘게 장사를 하던 식당은 이젠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장사를 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쌓인 우편물을 챙기고, 안채에 들러 화단에 풀을 뽑고 마당으로 마실을 나오는 길냥이들에게 사료를 내어주는 일뿐이다.


일단 시골집 근처 추어탕으로 점심을 해결하러 갔다. 묵은 김치가 일품인 그 집은 돌솥밥과 자연산 우렁이 추어탕이 메인 음식이다. 소고기를 사주겠다던 엄마는 겨우 추어탕으로 잘 먹었다고 하니 가성비가 좋다고 하셨다. 고향에 오니 무청이 제대로 들어간 추어탕도 맛을 본다. 서울에서는 무청 시래기가 들어간 추어탕을 만나기가 어렵다.


안채 화단에는 꽃잔디와 패랭이가 예쁘게 자리를 잡고 봄이면 해마다 그 매혹적인 붉은 빛깔들을 보여준다. 내가 한발 늦었는지 보랏빛 로즈메리 꽃은 이제 들어갈 채비를 하는 중이다. 엄마는 쇠뜨기 때문에 꽃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면서 꽃들 사이로 멀대처럼 키가 큰 쇠뜨기를 다 뽑아내자고 했다. 붉은 꽃과 초록색 쇠뜨기는 내 눈엔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았지만 일단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시골집 화단


평일엔 하루 종일 병실에서 아빠의 눈과 손과 발이 되어주다가 주말이면 이렇게 잠깐이라도 바람을 쏘이는 엄마가 안쓰럽다. 직장인인 나만큼이나 주말이 소중한 엄마다. 따사로운 봄 오후 햇살을 등으로 받으면서 대충 쐬뜨기를 몰아내고 마실 나온 길냥이들에게 안부인사를 건넨다. 동생은 준비해온 사료를 그릇에 채워준다. 녀석들은 우리가 안 보면 얼른 나와서 밥을 먹고 돌아보면 도망갈 채비를 한다. 겁 많은 점박이와 달리 노랑이는 대놓고 내 앞에서 식빵을 굽는다. 평화로운 시골집이 완성된다.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객지에 나가 사는 동안 나의 시골 마을도 많이 변했다. 저수지 풍경이 예뻐서 그런지 카페와 식당이 생겨나고(예전엔 우리 엄마 식당뿐이었는데!! 우리가 원조인데!) 저수지 둑방엔 정자도 생기고 마을이 많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그래서 가끔은 낯설 때도 있다. 그래도 내겐 때때로 한없이 그리운 나의 시골 동네이다.


병풍산 밑에 자리 잡은 우리 동네는 한재골이다. 우리 집은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도 터가 좋다고 했었다. 아리따운 여자가 한복을 곱게 입고 앉아있는 형상이라나.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터라고 했다. 정면으로 내다보이는 저수지 풍경은 또 어떤가. 누구에게라도 붙잡고 나는 이곳을 소개하고 싶다. 저수지 둑에서 어린 시절에는 비료포대(비료 봉지)를 깔고 썰매를 탔다. 봄엔 풀 위서, 겨울엔 눈 위에서. 마을 친구들과 했던 쥐불놀이는 또 어떠했나. 어릴 적 친구들은 이제 마을을 떠나고 없지만 나의 추억은 마을에 있건 없건 내 기억 속에 있다.


시골집은 찾아갈 때마다 언제나 그리운 얼굴을 하고 나를 반겨준다. 비가 오는 날엔 구름모자와 스카프를 둘러맨 병풍산과 저수지에 낀 안개를 원 없이 볼 수 있고 맑은 날은 햇살에 반짝거리는 물 위로 물수제비를 뜰 수 있다.


집에 가는 길엔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저수지 둑방길 초입에 차를 댔다. 매번 시골에 올 때마다 오가는 길인데 제대로 보기는 처음이라고 동생이 한마디 거든다. 정자에서 사진도 찍고 푸르른 저수지도 눈에 담고 동화책 같은 마을 풍경도 사진에 담는다. 영원히 기억 속에 담으려는 듯이. 누구나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내게 마음으로 늘 그리운 시골집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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