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뇌에 이상이 생겨 몸에 마비가 오기 훨씬 전에 아빠는 간이식 수술을 하셨었고 간이식 수술 전에는 간경화 말기 환자로 수십 년을 살았었다. 간경화의 흔한 증상은 복수가 차고 혈관이 터져 119의 신세를 자주 진다는 것 정도.
아빠의 간경화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119의 신세를 조금 더 자주 지게 될 때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낙관적이 있다. 아빠의 간이식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이 나고 그 후로 3년간은 말 그대로 새 생명이 온 것처럼 아빠는 건강을 회복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빠의 뇌는 점점 굳어서 몸에 마비에 왔을 때 그때 나는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나의 아빠인가. 왜 하필 우리 가족인가 그런 원망이나 분노 같은 것을 항상 가지고 살았다. 전생에 무엇을 그리 잘못을 했었나. 이런 불행이 왜 하필 우리에게 왔을까. 우리만 힘든 건가. 앞으로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런 우울한 생각들은 덤으로 따라왔었다.
하지만 아빠의 병실에 하루만 있어보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세상엔 참 아픈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아픈 동생을 위해서 수 십 년씩 병원에서 먹고 자는 나이 지긋한 형도 있었고 치매에 걸려 아내인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는 아픈 남편을 위해 역시 수 십 년씩 병시중을 하는 할머니도 계시다는 것을. 나에게만 아픈 아빠가 계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아빠의 병실 식구들은 이렇게 매일 서로가 서로의 힘든 모습을 지켜보고 또 힘든 하루를 이겨내는 모습도 함께 지켜본다는 것을. 간병인이 자리를 비울 때는 대신 간호사도 불러주며 상대방 환자의 가래도 가끔은 뽑아주면서 그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육아휴직을 끝내고 사업소로 복직을 했을 때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출퇴근을 해야 했는데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인천으로 가는 급행 전철을 타러 가야 할 때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나 싶었다. 그 당시 내 일은 창구 업무라 업체 사장님들의 서류를 접수하는 게 내 업무였는데 하루 종일 서류 접수하고 걸려오는 전화까지 받고 있자면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9시에 업무를 시작하면 언제 시간이 흐르는지 모르게 6시가 되었었다. 택시나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다시 갈아타고 서울로 퇴근을 해서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는 늘 꼴찌로 어린이집에 그리고 유치원에 남아 있었다. 한 번은 정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했고 후임자가 정해질 때까지만 자리를 봐달라고 해서 그때까지만 더 다니겠다고 했었다.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핑계를 대었지만 사회 초년생이나 다름없던 나는 아이를 핑계 삼아 어쩌면 당장 힘든 일은 하기 싫고 피해 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대책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 일이 힘들어서 게다가 내가 원하는 일은 결코 아니라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노량진에서 혹독한 취업준비생 생활을 하면서 그토록 원했던 '직장인'이 된 기쁨은 이미 잊었다는 듯이.
사무실에서 고객응대에 빠삭한 선배님도 결코 원해서 좋아해서 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고객을 능수능란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선배님~ 정말 이 일이 적성에 맞으신가 봐요~.'라고 했다가 너는 내가 적성에 맞아서 하는 일처럼 보니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종군 기자였고 CNN 앵커였던 앤더슨 쿠퍼의 예전의 그의 책(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일의 연장선상에 있었고 끊임없이 일에 대해 생각했고 그로 인해 자아성장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일로 이루는 자아실현이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상엔 처음부터 그렇게 일과 잘 맞는 사람은 드물다고 깨닫게 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힘든 일은 하기 싫었던 철부지였던 나는 왜 일해야 하는지 꽤 오래 방황을 했었다. 관련 서적도 찾아 읽어보고 행복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던 시기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사춘기 여고생처럼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나만 힘든 일을 하는 줄 알았던 나는 나의 시선이 어쩌면 내게로만 향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류를 접수하려고 오시는 업체 사장님들은 내가 뭐라고 아이스크림도 사다 주시며 일 좀 잘 봐달라고 하셨는데 난 그때 보고야 말았다. 서류를 든 업체 사장님들의 굵은 손과 손가락들을. 저 손으로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주고 자식들을 키우고 하셨겠지 생각했다. 누구나 가정을 책임지겠다고 힘들게 일을 하고 있겠지 생각했다. 저마다 이유와 사정은 다르겠지만 다들 일을 하면서 자기 상황을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다고. 나만 그런 게 아니고.
가끔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플 때, 돈벌이가 힘들 때, 직장에서 대인관계가 어려울 때, 자녀와 피 터지게 싸울 때, 시댁일이 짜증 날 때, 일이 자꾸 꼬일 때도... 한 번쯤 가볍게 생각해보자. 나만 그런 거 아닐 거야 하고. 나도 나를 위로할 수 있다. 다른 사람만 위로하지 말고 나를 위로할 시간도 내어보자. 나만 그런 거 아니라고. 불확실한 자기 합리화라도 괜찮다. 그리고 나면 조금이나마 다시 툭툭 바지를 털고 나아갈 힘이 생긴다고. 그럴 거라고 믿어보자.
우리는 모두 조금씩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고 위로도 필요한 존재라는 걸. 나만 그런 거 아니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