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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코밀 Dec 21. 2021

그냥 말을 해! 외롭다고.

 우리가 말이 많아질 때는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선배는 주말부부라 과묵한 아들하고 둘이 살아요. 말이 주말부부이지 남편분은 지방에서 근무하시는 탓에 2주 만에도 혹은 일이 생기거나 자연재해로 교통이 위험해지면 3주 만에도 집에 오시는 듯했습니다. 아들은 아들이기도 하고 대학생이다 보니 엄마와 아들 사이에 대화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늘 제게 아들하고의 대화는 식사 메뉴 정할 때뿐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곤 하지요.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선배는 가끔 많은 말들을 쉬지않고 쏟아내실 때가 있어요.  한 번은 뒷자리 과장님이 아침부터 무슨 하고 싶은 말이 그리  많냐고 농담을 하셨죠. 그때는 정말 몰랐어요. 우리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해지거나 말할 수없이 외로울 때, 쓸쓸하다 못해서 자신도 그 쓸쓸함을 눈치채지 못할 때 그럴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 많아진다는 것을요.


얼마 전에 여름휴가를 제대로 다녀오지 못해서 겨울 바다라도 보고 오자고 남편을 꼬드겨서 강원도로 향했어요.  날씨는 형편없이 흐렸지만 우리는 늘 여행 가기 전에 더 설레는 편이잖아요. 운전하는 남편에게 저는 쉴 새 없이 종알거렸어요. 회사에서 있었던 힘들었던 일,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았던 일들이 옛일들과 버무려져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어요.  제가 생각해도 평소보다 말이 많은 걸 느꼈지만 왠지 말들이 멈추지 않고 스스로 나오는 것 같았죠. 남편이 제게 그러더군요. '너 말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니?'




거동이 불편한 아빠의 오랜 병간호로 지친 엄마를 보러 갈 때면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들어요.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를 종일 간호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엄마를 위해 무엇인가 해드린 게 없다는 죄책감 같은 것이 한데 엉켜 마음이 심란해지곤 합니다. 아빠를 오랫동안 간호 중이신 엄마는 엄마도 모르는 사이게 건강이 나빠지셨다가 좋아지셨다를 반복하시는데 가끔 오랜만에 찾아오는 딸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때가 있었지요.


언제 한 번은 쉬지 않고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놓으셔서 우리 자매들은 정말 우울증이 아니냐고 의심스럽다고 걱정한 적이 있습니다. 엄마의 우울증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떠나 그러한 상황에 다다른 현실이 싫었고 우리 자매들은 자식 된 도리를 못한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더 괴롭고 그랬겠지요.


결국 과로에 장염이 겹쳐서 아빠를 간호하던 엄마는 쓰러지셔서 응급실을 거쳐 아빠는 5층에 엄마는 같은 보훈병원 7층 병실에 나란히 입원을 한 적이 있었어요. 아빠를 간병하시던 엄마가 환자복을 입은 채로 아빠가 누워계신 5층으로 내려와 계셨던 모습이 아직도 아련하고 마음이 쓰립니다. 힘들다고 충분히 말하지 못해서 끙끙 앓다가 결국 몸이 아프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해 가을, 저의 집에 다녀간 막내 여동생의 끝없이 말을 늘어놓았던 모습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막내는 지금 힘이 든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막내는 해항사인 남편이 일 년의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에서 보내는 덕에 이제 5개월 된 아들을 혼자 키우느라고 아마 많이 힘이 들었을 거예요. 잠투정이 심한데 아들이라 그런지 몸무게도 많이 나가는 녀석을 밤새 안고 달래느라고 손목은 늘 파스가 떠나질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우리 모두 힘이 들 때, 그 외로움이 쌓였다가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거나 마음이 편한 사람 앞에서는 한꺼번에 터지면서 말이 많아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던 밤이었어요. 그나마 이렇게라도 우리는 자신의 외로움을 말로 털어낼 수 있다면 다행일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대게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게 영 힘이 듭니다. 별거 아닌 걸로 괜히 동점심 유발하는 거 아닐까. 나의 속사정을 듣는 걸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시답지 않은 이야기인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작은 일을 크게 생각한다고 핀잔을 듣지는 않을까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요. 그렇게 마음에 한두 개씩 쌓여서 결국엔 화산처럼 펑하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거겠죠. 어쩌면 나의 시시한 얘기들도 시시하지 않게 들어줄 진정한 내 편만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관계 전문가인 김지윤은 그녀의 저서*에서 피터 드러커의 말을 빌려 이렇게 얘기합니다. 인생이야말로 중요한 경영이라서 자기표현과 의사결정이 인생의 퀄리티를 좌우한다고요. 그리고 소통은 진심만으로는 부족하다고요. 기술과 연습이 필요하다고요.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이제야 말하기 아니 말로 표현하기 연습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가끔 말이 많아지는 사람을 보면 불안합니다. 어딘가 마음이 외로운 건 아닐까. 마음 한 구석이 병이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 좀 알아달라고, 나 지금 고생하고 있다고, 수고했다고 인정해달라고, 외롭다고 그리고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다고 말이죠. 그런 마음으로 우리는 시시한 말들을 마구 쏟아내면서 속마음을 에둘러 표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터지기 전에 그 마음을 좀 표현하고 살기로 해요.




아, 아래 사진은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문제집을 풀고 틀린 문제인데 오답(속마음)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으로 남겨둔 거예요. 편지글의 형식에 대한 문제인데 3번의 정답은 '전하는 말'이랍니다. 진짜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속마음'이 아닐까요? 우리도 속마음 좀 표현하고 살기로 해요. 그리고 더 울고 더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요. 우리.





참고문헌 : 김지윤, '일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라', 소담 출판사, 2018

표지 사진 :S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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