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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Aug 02. 2019

포클레인 팔던 날

아빠의 포클레인


포클레인 팔던 날            


 오늘은 아버지를 모시고 대학 병원으로 진료를 보러 간다. 아버지가 움직이지 못하는 병에 걸렸을 때 이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은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악의 상황은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타난다. 며칠 전 아버지는 앞이 안 보인다고 하셨다. 왼쪽 눈을 실명하고 나서 오른쪽 눈으로만 사신지 이십여 년. 그나마 보이던 한쪽 세상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의사는 대학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보기 위한 소견서를 써주었다.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로 아버지가 운전하고 다녔던 도시가 펼쳐진다. 이 길도 아버지는 여러 번 직접 운전해서 다니셨던 길이다. 그러나 이제는 휠체어에 앉아서 간다. 차도 한복판에 안전모를 쓴 작업복 차림의 인부들을 보인다. 포클레인도 한 대 보였다. 도로 공사 현장이었다. 먼지에 뒤덮여 본래의 색을 가늠키도 어려운 낡은 작업복. 허리에 차고 있는 연장주머니에는 펜치며 드라이버 같은 것들이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아버지도 저런 모습으로 일했었다. 온갖 연장을 휘두르며 일했던 아버지가 가끔은 부끄러웠고 가끔은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뇌질환으로 인한 전신마비 환자가 된 지 7년 차이다.


 포클레인을 팔던 날도 여전히 또렷하게 떠오른다. 항상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아버지가 모처럼 그날은 말쑥한 차림이었다. 하나뿐인 낡은 구두도 신고 있었다. 아버지는 트럭 위에 올라 선 볼보 포클레인을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먼발치였기 때문에 옆으로 돌린 얼굴에서는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집 앞의 저수지 위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4월의 봄날이었다. 포클레인은 아버지가 가진 것 중 가장 큰 것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포클레인을 점검하고 닦았다. 그런 아버지의 포클레인을 파는 날이 그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아버지는 더 이상 토목 공사 현장에서 일할 만큼 건강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오래전 당뇨로 인해 이미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한쪽 눈만으로도 중장비들을 이끌고 일하셨다. 이제야 안 일이지만, 한쪽 눈을 가지고 포클레인 운전을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삽을 정확하게 내려야 하는데 헛방을 집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일을 끝마치는데 다른 사람들 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더러는 점심 식사도 포기하고 일해야 했다고 하셨다. 점심은 포기해도 주렁주렁 어깨에 매달린 오 남매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안전화에는 흙이 마를 날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 안전화가 닳아서 찢어지도록 일하셨다.


아버지가 산일을 마치고 얻어온 제사 음식들도 생각난다. 산일을 하던 날이면 고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들을 종이상자에 담아서 들고 오셨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유과와 부꾸미들만 쏙쏙 골라 먹었다. 알록달록한 옥춘사탕은 맛있었지만 그 밤의 뻐근하게 뒤척이던 아버지의 한숨을 몰랐다. 바짓가랑이가 펄럭일 때마다 떨어지던 마른 진흙과 뗏장의 조각난 이파리들. 그리고 고단한 막걸리 냄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버지의 어깨만큼이나 버거웠을 흙더미를 한 삽 한 삽 떠냈던 시간들이 이제야 가슴에 박힌다.   


요즘도 가끔 포클레인을 운전하는 아버지의 꿈을 꾼다. 그때의 아버지는 아직 걸을 수 있었고 일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포클레인의 운전석에 앉은 아버지는 산처럼 커다랗게 보였는데 이제는 휠체어만 하다. 힘주어 밀어주지 않으면 한 뼘도 움직이지 못한다.      


 예약한 시간보다 한참 늦게 도착한 대학 병원은 도떼기시장이었다. 휠체어 하나가 지나가기에도 비좁은 병원의 복도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아무리 잡아도 축축 늘어지는 몸을 붙들어 간신히 검사를 하고 진료를 받았다. 녹내장이었다. 이미 죽어버린 신경과 세포는 살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치료밖에 방법이 없었다. 안압을 낮추는 안약을 처방받고 돌아오는 길, 어머니는 말없이 한숨을 푹 내쉰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병은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 아버지는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도 잃었다.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을 살며시 잡아 보았다. 어깨에 둘러준 담요 밖으로 나와 있던 손은 차갑게 식었다. 감은 두 눈에는 피로가 내려앉아 있고 기울어진 입술에서는 침이 흐른다. 예전에는 자식들이 매달렸던 어깨가 이제는 휠체어에 매달려 있다. 그나마도 점점 기울어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 잠깐의 외출은 거동할 수 없는 환자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들게 왔는데 수확 없이 돌아간다는 자책감과 무력감이 몰려왔다.      


 

차갑게 식어버린 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리자, 아버지 역시 약하지만 묵직하게 내 손을 살짝 잡는다. 아버지의 뭉툭한 손가락이 꼼지락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아버지의 노란색 포클레인은 멈추었지만, 흙내 나던 묵직한 삽은 아버지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아직 움직이고 있을까.    


그 오랜 병상에서도 여전한 손가락의 굳은살이 마음을 똑똑똑 두드린다. 앞을 볼 수 없지만, 움직일 수 없지만 삶은 계속 이어질 거라고. 마주 잡은 손에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창밖이 물들어간다.


ㅡ포클레인 팔던 날 찍은 오래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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