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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Aug 02. 2019

시문학파

-강진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여러분, 이 곳을 보세요.”

갈색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해설사 할아버지가 손짓을 하며 소리쳤다. 함께 기념관을 관람 중이던 수필 반 회원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전시실 가장 안쪽에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다란 책을 펼쳐 놓은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시를 살로 새기고 피로 쓰듯 쓰고야 만다. 우리의 시는 우리 살과 피의 매침이다.’ 시문학파의 창간사의 첫 구절입니다. 아름다운 시는 그저 쉽게 쓰인 시가 아닙니다. 시인들이 피가 맺히도록 쓰고, 또 고쳐 쓰며 만들어 낸 시입니다.”

해설사 할아버지의 설명에 수필반 선생님께서도 ‘바로 여러분들의 역할’이라고 덧붙이셨다.     


1920년대는 일제 치하 중에서도 헌병 경찰의 가혹한 통치로 유명한 시대였다. 자비라고는 찾을 수 없는 가장 암울한 시대에 시문학파의 시는 한 떨기 꽃처럼 피어났다. 시문학파는 사회주의 경향의 카프 문학의 유행에 반발하며 시는 언어 예술임을 강조했다. 특히 언어의 조탁에 힘썼고 김영랑, 박용철과 정지용이 대표적인 시인이다. 시문학파의 시와 철학이 ‘강진 시문학파 기념관’에 소담하게 펼쳐져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처럼 전시된 시인들의 자필 원고에도 여러 번 수정한 흔적이 역력했다. 시문학파 기념관을 나와서 점심을 먹고 가우도로 향하는 내내 시문학파 창간호의 첫 구절이 마음에 맴돌았다.      


포근한 봄날을 기대했지만 날씨는 생각보다 쌀쌀하고 흐렸다. 비바람을 맞아가며 문학기행을 마치고 광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오천 년의 우리 역사 중 표현 자유가 이토록 분방했던 시대는 없었다. 게다가 컴퓨터의 발달로 힘들게 종이에 쓰고 지울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떠한가. 거룩한 사명도, 필사적인 노력도 없이 쉽고 가볍게 글을 쓴다. 지금 누리고 있는 ‘쉽게 쓸 자유’는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살에 새기듯, 피가 맺히듯 쓸 수밖에 없었던 선조들 덕분이 아닐까. 역사에 부끄럽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써야 할 일이다. 강진이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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